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고문 사례를 언급하며 테러방지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 반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10시간 20분째 이어가고 있다. 김용남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은 의원을 향해 “의제와 상관없다”, “그런다고 공천 못 받는다”고 막말을 해 한때 본회의장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은 의원은 24일 오전 2시30분께 시작한 필리버스터를 오전 12시 50분 현재마쳤다. 은 의원은“이런 행동이 당에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은 의원은 연설하는 620여분 동안 간간히 목을 축이고 무릎을 굽혔다 펴거나 한 발로만 서 있는 등 다리를 풀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가끔 머리를 쓸어 올리고 안경을 치켜 쓰며 모습을 다잡기도 했다. 

▲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10시간20여분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때로는 한숨을 몰아쉬고 가끔 발음이 꼬이는 등 지친 모습이지만 차분한 모습으로 테러방지법 반대 연설을 이어갔다. 이날 오전 11시36분 “힘내라”는 같은 당 의원들을 향해 은 의원은 오히려 “제가 체력이 되는 한 하고 도저히 안 되겠으면 내려가겠다”고 안심시키는 여유를 보였다.

발언석 뒤에 위치한 의장석 주인은 세 차례 바뀌었다. 은 의원 발언 시작 당시 사회권을 쥐었던 이석현 부의장은 이날 11시간을 넘긴 오전 10시10분 정갑윤 부의장과 교체됐다. 정의화 의장은 이날 12시에 정갑윤 부의장과 자리를 바꿔 의장석에 착석했다.

은 의원은 이날 해외 테러방지법의 오남용 사례와 프라이버시 보호, 언론 자유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해 테러방지법 제정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가량 현재 논쟁 중인 애플과 FBI 간의 보안 암호 우회장치 마련 논란을 거론하며 은 의원은 “테러방지법의 효시인 애국자법을 만든 미국도 여전히 개인 프라이버시를 유지하기 위해 논쟁 중”이라며 “다른 나라도 테러방지법이 있지만 대한민국 여당이 통과시키려는 법은 그것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은 의원은 국정원에 대테러수사권 부여와 인권보호 규제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서는 “과거에는 고문으로, 최근에는 사이버 테러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국정원에 대테러 수사권을 줄 수없고 인권 침해 가능성 또한 높다”는 점을 들어 테러방지법 통과를 반대했다.

은 의원은 또 언론 자유의 위축도 우려했다. 그는 미중앙정보국(CI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영국의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불법적인 부분이 폭로됐던 당시를 설명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가디언 사무실을 찾아가 하드디스크 파기를 요구하고 인터뷰한 기자를 구금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은 의원은 그러면서 “언론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도 언론인 다수가 체포되거나 기소됐는데 그 법적 근거가 영국의 반테러법”이라고 지적했다. 은 의원은 이어 이미 테러방지법을 제정한 해외 국가에서의 오용 사례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10시간20여분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정부여당이 테러방지법과 함께 통과시키려고 하는 사이버테러방지법에 대해서도 은 의원은 “기업에 사이버테러방지법은 사이버안전법, 사이버관제법”이라고 지적한 기사를 소개하며 생각지 못했던 영역도 테러법을 적용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은 의원은 과거 고문 후유증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1983년 서울대 사회학과 2학년이던 당시 시위에 가담했다가 제적된 후 구로공단에서 미싱사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1992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검거돼 6년간 복역했다.

당시 은 의원은 현재 국가정보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분실에서 고문당해 밀실공포증 등 후유증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은 의원은 “위협 협박도 실제 고민”이라며 “이런 고문조차도 가능한 대규모 권력기관을 만들려는 게 아니냐”며 여당을 질타했다.

은 의원은 또 금속노조 유성기업 산하 노조가 당한 폭력적인 부당노동행위를 언급하며 “정부가 테러방지법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실제 폭력에 노출된 사람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느냐”고 질타하고 나섰다.

그러자 김용남 원내대변인이 본회의 단상 쪽으로 걸어 나와 은 의원에게 삿대질을 하며 “안건과 관련 없는 발언이면 의장이 끊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야당 의원석에서는 “조용히 해달라”, “들어보라”, “새누리당 의원들은 다 어디 갔느냐” 등 김 의원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김 대변인은 “말 같은 이야기를 해야 듣고 앉아 있을 거 아니냐”, “노조가 이 법과 무슨 상관이냐”, “(은 의원을 향해) 그런다고 공천 못 받아요” 등 막말을 쏟아냈다. 장내는 야당 의원들과 김 대변인의 고성으로 소란해졌다.

은 의원은 발언 취지를 설명하며 “김 의원은 공천 때문에 움직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며 “동료 의원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공천을 못 받는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명예훼손이다.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질타했다.

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사과할 일 없다”고 반박했다. 정갑윤 부의장이 “김 대변인은 조용히 하고 은 의원은 의제와 관련된 이야기만 해 달라”고 진정시켰다.

은 의원은 “의제 관련성에 대해 양측의 의견이 굉장히 다른데 그 다름 때문에 생겨나는 충돌을 대화로 풀어보자는 것이 이 자리”라며 “의장이 한 쪽 의견만 들어 말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일침을 가했다.

필리버스터 중에는 20~30여명 남짓 국회의원이 자리를 지켰으며 그 중 새누리당 의원은 2~3명 남짓 의원이 교대로 본회의에 참석했다. 새누리당은 이날 최고중진연석회의와 대변인 등의 현안브리핑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두고 “국민생명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서거 운동”이라고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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