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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100m 밖이 안전하다면 101m 앞에 살아보실래요?
사드 100m 밖이 안전하다면 101m 앞에 살아보실래요?
[미디어 현장] 미군 교범 3.6km까지 출입금지라는데… 국방부 기자회견에서 거짓말 들통

지난 2월7일 오후 2시 반쯤 국방부는 출입기자들에게 “오후 3시에 북 미사일 발사 관련 군사적 대책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문자 공지를 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그날 오전 9시 반부터 쉴 새 없이 기사를 쓰느라 녹초가 된 기자들은 국방부의 공지에 시큰둥했다.

거의 정확히 오후 3시에 국방부 브리핑룸에 류제승 정책실장과 토마스 밴덜 미 8군 사령관이 나타나서 거침없이 공동발표문을 읽기 시작했다. “한미가 고고도 요격시스템 사드(THAAD)의 주한미군 배치 가능성을 협의하기로 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는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로 이어질 것이라고 익히 예상했었고, 그런 내용의 기사를 쓴 적도 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귀를 의심할 정도로 놀랐다. 더 이상 전격적일 수 없을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발표가 끝나고 류제승 정책실장은 국방부 기자실에서 “사드 1개 포대가 남한의 2분의 1에서 3분의 2까지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의아했지만 당장 확인할 곳도 확인할 시간도 없어서 대부분 기자들은 대표적인 국방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입 다물고 받아썼다.

국방부 정책실장은 어떤 근거로 ‘3분의 2까지 방어’ 주장을 펼쳤을까? “북한이 모든 미사일 가운데 노동과 스커드 미사일을 현 위치에서 발사했을 때”라는 전제를 고의로 빼버린, 의도가 의심스러운 주장으로 드러났다.

국방부에 자료를 제공한 한국국방연구원 KIDA는 사드의 요격고도 밑으로 비행하는 북한 단거리 미사일 KN-02는 사드 성능 계산에서 제외했다. KN-02는 북한이 가장 시험발사를 많이 하는 주력 미사일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KIDA는 이동식 발사차량 TEL에 탑재돼 이곳저곳 옮겨 다닐 수 있는 노동과 스커드 미사일을 고정된 위치에서 발사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사드 1개 포대가 남한의 3분의 2까지 방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사드의 성능을 부풀린, 엄밀히 말하면 거짓말이었다.

국방부의 이상한 행태는 또 드러났다. 사드의 레이더 AN/TPY-2의 전자파로부터 안전한 구역에 대한 국방부의 설명이 비상식적인 방향으로 돌변한 것이다. 류제승 정책실장은 애초 “레이더로부터 100m까지는 상당히 위험하고, 3.6km까지는 통제되지 않는 사람은 출입할 수 없도록 규정됐다”고 말했다.

작년에 작성된 미 육군의 괌 환경영향평가보고서에 근거한 말이었다. 2012년 발간된 미 육군 교범도 “AN/TPY-2로부터 3.6km는 통제되지 않는 사람들은 출입할 수 없다”고 규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지난 15일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AN/TPY-2로부터 100m까지는 위험하고 그 밖은 안전하다”고 발언했다. 같은 날 오전까지 기자들에게 3.6km까지 위험하다고 설명하던 국방부가 말을 바꾼 것이다. 입장 변화의 근거는 2009년판 미 육군 자료라고 국방부는 밝혔다.

국방부는 2009년, 2012년, 2015년 미 육군 자료 가운데 AN/TPY-2 전자파 위험을 가장 낮게 평가한 2009년 자료를 자신있게 택했다. 2009년 자료를 고른 이유는 “설명이 가장 상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국방부의 설명이다.

건강과 관련된 사안은 가장 보수적이고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마땅하다. 하나의 자료라도 3.6km까지 위험하다고 나왔다면 5~6km 반경을 차단하겠다고 나서는 편이 뒤탈이 없다. 결국엔 미국으로부터 AN/TPY-2의 최고 출력과 전자파 주파수 자료를 받아 국제안전기준에 맞는 기지를 설치해야 하는데 국방부는 의욕이 없다.

AN/TPY-2가 가장 강력한 전자파를 방출하는 군용 레이더도 아니다. 패트리엇 레이더의 안전 최소 거리는 AN/TPY-2보다 20m 긴 120m이다. AN/TPY-2는 국방부가 주장하는 대로 안전한 레이더도 아니지만 가장 위험한 레이더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안전한 배치를 강구해야 마땅한데도 국방부는 막무가내다.

▲ 김태훈 SBS 기자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는 이제 기정사실이 됐다. 이제는 사드의 성능을 부풀릴 필요도 없고 유해성을 축소할 필요도 없어졌는데 국방부가 수상한 행동만 골라서 하고 있다. “국산 장거리 요격 미사일 L-SAM을 개발하고 있으니 사드는 필요 없다”던 국방부가 요즘은 사드에 푹 빠졌다. L-SAM 개발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업체를 선정하고도 쉬쉬하고, 사드를 위해서는 ‘없는 성능 만들어내고’ ‘있는 위험 숨기는’ 친절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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