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유명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는 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5시간19분이다.

김 전 대통령은 제6대 국회 제41회 19차 본회의가 열린 1964년 4월20일 국회 본회의 발언에 나서 야당인 자유민주당 김준연 대표의 구속동의안 상정을 지연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 대표는 한일협정 비밀회담 때 박정희 정권이 “일본 정부로부터 1억3000만 달러를 미리 정치자금으로 받았다”고 폭로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 지시를 받은 공화당은 김 대표 구속동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구속시킬 참이었다.

▲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1988년 10월25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회의록 시스템에 따르면 당시 국회는 본회의 시간 연장 두 차례와 의사일정 변경을 두 차례 진행했다. 김 전 대통령은 필리버스터에 대해 “야당으로서의 최후의 발악, 생존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우리가 구속 동의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 무덤을 파는 것이고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형무소에 가두는 것과 같다”고 김 대표의 구속동의안 상정을 반대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국회 조사가 진행 중인데 여당이 구속동의안을 낸 것에 대한 잘못과 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가 없는데도 구속하려는 것이 부당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당과 이효상 국회의장은 의사진행 취지에서 벗어난 발언을 막고 구속동의안을 상정하려고 했으나 틈을 찾지 못했다.

결국 이효상 의장은 이날 오후 8시가 넘어가면서 국회 본회의를 일방적으로 폐회시켰다. 당시 ‘동아방송’은 국회 단상 밑에 신문지로 감싸 숨겨둔 마이크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발언 육성을 세상에 전달했다.

이날 발언은 차후 기네스북 국회 최장 발언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이희호 여사는 당시 “국회 발언을 앞둔 남편(김 전 대통령)은 밤늦도록 자료를 준비했다”며 “이 일로 주목받는 국회의원으로 떠올랐고 그만큼 견제도 심해졌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여당과 이효상 의장은 이튿날인 21일 구속동의안을 재상정하려고 시도했다. 당시 국회 속기록에는 “장내 소란”과 “‘이게 뭐요 뭐요’하는 이 있음”, “장관 내려와요”, “법을 어기고 어떻게 국회를 운영할 수 있어요” 등 발언이 다수 등장한다.

결국 야당 의원들이 김 대표 구속동의안을 몸으로 막아 선 것이다. 여당과 의장은 구속동의안 상정에 실패했고 다음 회기로 넘어갔다. 하지만 김 의원은 결국 폐회 중인 같은 달 26일 검찰에 구속된다.

이후 필리버스터는 1969년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에 반대하며 국회 본회의에서 10시간5분 발언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박 정권은 아랑곳 않고 3선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필리버스터로 두 차례 국회 운영에 ‘제동’이 걸린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유신헌법을 통과시킨 이듬해 국회법을 개정한다. 1973년 12월20일 개정된 국회법은 본회의에서 국회의원의 발언 시간을 45분으로 제한하고 15분 안에서 추가 1회 발언 연장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같은 의제에 대해 각 교섭단체별로 소속 의원수의 비율에 따라 각 2인 이내 범위안에서 본회의 발언 의원 총수를 제한하도록 하는 조항도 추가했다. 신상 발언은 20분을 초과할 수 없도록 엄밀히 규정한 것도 박정희 유신 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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