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온라인 여론통제’가 의심되는 정책이 나왔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정을 추진 중인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을 통해 법적 문제가 없는 게시물까지 통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상반기 중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예정이다. ‘잊힐 권리’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자신의 정보에 대한 검색결과 노출을 차단하는 등 유통을 막는 것을 말한다. ‘잊힐 권리’는 2014년 스페인의 마리오 곤살레스 변호사가 16년 전 자신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집을 경매에 넘겼다는 기사가 구글에 뜨자 이를 검색결과에서 없애 달라며 소송을 냈고, 재판부가 받아들이면서 공론화됐다.

방통위는 합법적인 정보 중 당사자가 지우고 싶거나 내용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게시물의 경우 ‘잊힐 권리’를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상은 언론이 아닌 일반 게시물에 한정할 가능성이 크고 공인은 제외하는 것을 전제로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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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이용자정책국 관계자는 “지난해 ‘잊힐 권리 연구반’을 만들어 추진해오던 것”이라며 “상반기 제정이 목표지만 다소 늦춰질 수도 있고 아직 초안도 나오지 않았다. 결정된 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표현의 자유 위축에 대한 우려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여론을 수렴하는 등 노력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가이드라인은 그 자체로 구속력은 없지만 규제기관이 제정하면 포털 등 사업자들이 협조할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는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법적 규제가 들어설 가능성도 있다. 이 관계자는 “법제화는 확정되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성급히 가이드라인 제정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잊힐 권리’ 그 자체는 지지하는데, 이명박 정부 이후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위축시키는 방식으로 임시조치를 활용한 예가 많다”면서 “누리꾼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보통신망법 44조에 따르면 자신에 관한 글에 대해 명예훼손을 이유로 삭제해달라고 요청하면 포털은 이를 임시적으로 차단(임시조치)할 수 있다. 게시물 복원기준이 따로 없어 사실상 영구차단이 되고 있다.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이 인터넷 여론통제라는 비판을 받는 정책들의 사각지대를 채워주기 때문에 전방위적 여론통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언론중재위원회가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따르면 명예훼손 등 문제가 된 기사와 블로그나 카페에 퍼 나른 기사도 삭제할 수 있게 된다. 지난해 12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개정한 제3자 명예훼손 심의규정에 따르면 제3자의 신고만으로도 명예훼손성 게시글에 대한 삭제가 가능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잊힐 권리’가 폭 넓게 적용되면 방통심의위나 언론중재위가 통제할 수 없는 법적 문제가 없는 게시물과 원본은 지워졌더라도 검색 결과에 남은 자료들까지 차단이 가능한 것이다.

‘누구를 위한 잊힐 권리인가’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특히, 성폭행 피해자 등 약자의 경우 프라이버시 침해를 이유로 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잊힐권리 가이드라인이 결국 권력자의 평판관리도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사안에 대해 말바꾸기를 하거나 막말을 한 정치인이 자신의 발언이 담긴 게시글의 검색 결과를 차단할 수 있게 된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임시조치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 상황에서 합법적인 정보의 유통까지 제어하겠다고 하는 것이 문제”라며 “온라인 공간 곳곳에 있는 자신에 불리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정보력과 인력이 있는 사람은 세세한 것까지 평판을 관리할 수 있게 돼 그렇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과 불균형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공인’의 범주가 추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의 주장처럼 “공인을 제외한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공인의 범주가 모호할뿐더러 빈틈도 많다. 예를 들어 ‘김무성 마약사위 논란’의 경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공인으로 보더라도, 마약을 했던 김무성 사위를 공인으로 보기 힘들기 때문에 사위가 ‘잊힐 권리’를 요구해 김무성 대표의 평판을 대신 관리할 수도 있다. 

공인을 정의하는 데 있어 시기적인 맹점도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병언 회장의 경우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공인이 아닌 사인으로 볼 수 있는데 이를 이유로 세월호 과적문제에 대한 자료를 지워달라고 요구하면 지워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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