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경영진의 ‘증거 없는’ 부당해고와 편성개입 의혹 등이 드러난 ‘백종문 녹취록’ 진상규명 요구를 정부·여당과 MBC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모두 묵살했다. 

이에 대해 지난 2012년 MBC 파업 이후 국회 상임위원회 청문회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이 약속을 어기면서 비롯된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8일 열린 방문진 정기이사회에선 ‘백종문 본부장 녹취록에 기재된 사실관계에 대한 진상규명 및 향후 방문진 조치에 관한 건’이 결의사항으로 올라왔지만, 여당추천 이사들이 논의 자체를 반대하면서 방문진 차원의 아무런 조치와 대응도 결정하지 못했다. 필요하면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지만 사실상 문제의 녹취록을 ‘사적인 대화’로 치부해 조사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방송통신위원회(최성준 위원장) 역시 ‘백종문 녹취록’으로 불거진 방송법 위반 의혹을 조사하지 않을 방침이다. 최성준 위원장은 지난 4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야당 위원들이 제출한 ‘MBC 노조원 불법해고 및 방송의 공적책임 저해 등에 대한 방송문화진흥회 자료제출 요구안’에 대한 정식 논의를 거부했다.

최 위원장은 지난 18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MBC 녹취록 관련 대정부질의에서도 “방통위에서 논의를 했는데 방송법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지금 구체적으로 할 것이 없다”며 “방통위 입장에서 (MBC 내부 상황을) 면밀히 살피는 것은 방송사의 자유와 독립을 해할 수 있다”고 답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2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종문 녹취록’ 사태 관련 국회 상임위원회 개최를 거부한 새누리당을 규탄하고 ‘MBC 청문회’ 실시를 촉구했다. 사진=언론노조 제공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여당 의원들도 MBC ‘백종문 녹취록’ 청문회를 위한 상임위 개최를 거부했다. 미방위 새누리당 간사인 박민식 의원 측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야당이 임시국회에서) MBC 녹취록 현안보고를 받겠다는 것인데 (해고무효소송 관련)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사안을 국회에서 다루는 건 부적절해 보인다”고 밝혔다. 상임위는 전체 위원 구성원의 4분의 1의 요구로 소집될 수 있어 여당이 거부하면 야당 단독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김환균 위원장)은 22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MBC 청문회’ 실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오로지 권력을 향한 충성 경쟁에 매달린 MBC 경영진은 법원의 판결도 무시한 채 각종 불법·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고 방송 제작편성에도 노골적으로 개입했다”며 “이번에 공개된 녹취록은 MBC 경영진이 자신들의 불법 행위, 부당 거래를 자백한 것으로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언론노조는 “사적인 자리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법인카드 사용내역 조차 요구하지 못 하는 규제기관과 관리감독기구, 정치권이 공모해 이 문제를 덮으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며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약속 불이행이 초래한 사태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로 최소한 미방위 회의 개최에 응해 책임자와 당사자, 규제기관장 및 관리감독기구의 장을 불러 진위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2년 6월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 시절 MBC의 공정방송 파업 중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가 ‘소송에서 질 것을 알면서도 증거 없이 해고’된 후 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을 통해 “노조 주장에 공감하는 점이 있다”며 “노조가 파업에서 복귀하고 나면 모든 문제는 순리대로 풀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또 7월10일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도 “MBC 파업에 대해 국회 상임위에서 청문회를 할 수 있다고 얘기가 됐다. 방송과 언론의 공정성은 확보 돼야 하고 독립성과 자율성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역시 19대 국회 개원 협상 때 야당과 ‘새로 구성될 방문진 이사회가 방송의 공적 책임과 노사관계에 대한 신속한 정상화를 위해 노사 양측 요구를 합리적 경영판단 및 상식과 순리에 따라 조정, 처리하도록 협조하며 이를 위해 언론 관련 청문회가 문방위에서 개최되도록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앞서 MBC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국회 미방위 소속 의원 22명에게 지난달 27일 보낸 ‘MBC 현안 긴급 공개 질의서’에서 응답한 11명 의원 모두 국회 차원의 청문회 실시에 찬성한다며 안광한 사장 등이 이번 사태에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홍문종 미방위 위원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여당 의원 11명은 모두 답변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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