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들불처럼 번지냐고 하는지 아느냐. 봄 햇빛 아래 들에서 붙은 불은 안 보인다. 불이 지펴져도 그때는 모른다. 불이 거세게 솟고 나서야 아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들불을 지피러 가자고 말하는 거다.”

전주에 사는 농민 장종혁씨는 백남기 농민을 둘러싼 정부에 대한 분노가 들불과 같을 것이라 말했다. 장씨는 지난 16일 첫 도보순례에 참여한 후 시간이 날 때마다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바라고 국가폭력을 규탄하는 도보순례단에 합류하고 있다. 순례는 폭력진압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대통령의 사과를 주장하며 16박 17일 일정으로 서울에 도착하는 행진이다. 장씨는 20일부터 순례단을 다시 찾아 21일까지 걸었다. 순례 12일째인 21일은 백남기 농민이 병상에 누운 지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지난해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폭력진압에 의해 백남기 농민이 사경을 헤맨 지 100일이 지났다. 도보순례단은 전남 보성에서 서울까지 천 리를 걷는다. 21일 순례단 70여 명은 대전에서 출발해 공주 우금티에 도착했다. 27일 서울 민중총궐기에 합류하기까지 이들에겐 6일과 140여 km가 남았다.

“사람이 죽었는데 사과조차 없는 대통령은 인간의 도리도 못하는 것”

출발지점은 대전시청이었다.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대책위)는 출발 전 시청 정문 앞에서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 100일’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가톨릭농민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 농민 연대 단체뿐만 아니라 유경근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도 자리에 참석해 정부를 향한 규탄 발언을 이어갔다.

▲ 백도라지씨가 21일 대전시청 앞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 100일’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집회 참가자를 테러리스트에 비유하고 시위진압 경찰 책임자를 대거 승진시키고 1000명이 넘는 집회 참가자를 수사하는데 열을 올린 반면 백남기 농민의 가족과 농민단체가 고발한 건에 대해서는 고발인 조사 외에 아무런 조치도 없다”면서 “최소한의 인간적 사과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 그야말로 비상식, 비정상, 몰염치한 정부”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순례단은 “민중이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고 이 땅의 주인이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국민임을 선언할 것”이라 강조했다.

지난 1년 10개월 동안 대통령의 사과,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 등 마찬가지의 요구를 걸고 싸우고 있는 세월호 가족협의회의 유경근 대변인은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정부는 대한민국이 민주 공화국이 되길 거부하고 있고, 솔직하게 입헌군주제를 하거나 왕정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이라면서 “설령 잘못이 있어도 공권력에 의해 국민들이 혼수상태에 빠졌으면 도의적으로라도 와서 들여다보는 게 인지상정이다. (박근혜 정부의 행동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고 있는 백도라지 씨도 발언에 나서 “저들이 과연 언제 사과를 할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감옥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지, 수사가 제대로나 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시스템이 그렇게까지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진 않다”면서 “박 대통령은 사과하고 경찰청장이 파면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도보순례단, “도보순례는 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을 위한 아름다운 선택”

“철로 된 방패, 곤봉…. 경찰은 고무패킹을 빼버린 방패를 바닥에 그으면서 불꽃을 냈고 도망가는 사람의 목과 가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농민 집회에 처음 나가서 나는 벌벌 떨었고 죽음 힘을 다해 도망쳤다. 5·18 같았다.”

▲ 기자회견 후 도보순례단이 충남대학교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도보순례단 ‘깃돌이’를 맡고 있는 한명철씨(35)는 기자회견 후 중간기착지인 충남대학교를 향하는 길에서 2005년 농민 대회를 떠올리며 “농민을 죽인 국가폭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2005년 농민 대회 때 전영철, 홍덕표 농민은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심각한 부상을 당한 후 목숨을 잃었다. 한씨는 당시 무서워서 도망갔었던 기억에 부채감이 있어 그 이후로 농민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한씨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며 “10년이 지났지만 농민들의 요구는 똑같지만 상황은 다르다”면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고 경찰청장은 사임했다. 진상규명 노력도 시도됐다. 그러나 지금 그런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25살 때부터 농사를 지은 한씨는 지난 15일 자신이 농사를 짓고 있는 정읍에서부터 순례에 참여했다. 개인자격으로 참여해 서울까지 완주하는 사람은 도보순례단에 두 명이 있는데 한씨는 그중 한 명이다. 한씨는 “지하철에서 부딪혀도 서로 미안하다고 하는 데 시민, 농민을 두드려 팼으면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면서 “농민들은 (정부에게서) 버려져서 사는 거 자체가 괴롭고 어렵다. 그래서 전세버스 타고 올라가 ‘이게 무슨 짓이냐’ 외친 건데 물대포, 캡사이신으로 죽여버리겠다는 태도로 진압했다”고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사안에 대한 관심이 점점 멀어지는 가운데 도보순례가 관심을 얻을 수 있겠냐는 질문에 한씨는 “오히려 순례가 느리고 넓게 움직여 사람들과 접촉할 면적이 훨씬 넓다”고 답했다. 그는 도보순례가 백남기 농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선택’이라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이 평화를 지향했던 농부였고 ‘타도’, ‘결사반대’ 등의 항전 의지를 터뜨리는 방식보다 힘들지만 한 걸음씩 묵묵히 전국을 걸어 서울까지 가는 의미가 훨씬 크다는 뜻에서다.

매일 저녁 일정은 지역 농민회와의 뒤풀이다. 해당 지역 농민들이 잠잘 곳과 저녁거리, 뒤풀이를 위한 막걸리와 안주를 매일 준비해준다. 21일은 공주농민회와 보령농민회가 이 역할을 맡았다. 한씨는 “힘들어도 이렇게 저녁마다 사람들을 만나면 에너지를 얻는다”면서 “보통 농민들도 집회에 가야된다고 하면 ‘아, 그려, 가야지’하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이번 순례에서는 모두가 ‘꼭 27일 총궐기 때 봅시다’라고 힘주어 말한다”고 말했다.

국가폭력, 반성과 수습 노력 있어야 반복 안 해… “백남기 농민 살인진압도 반성 필요”

도보순례단이 점심을 먹고 찾은 곳은 ‘살구쟁이골’이었다. ‘왕촌학살터’라 알려진 공주의 3대 민간인 학살터 중 한 곳이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가 시작되면서 한국전쟁 당시 공주형무소의 경범죄 수감자들과 보도연맹에 가입했던 민간인 500여 명의 유골이 발견됐다. 공주농민회는 21일 오후 순례를 힘없는 민간인들과 농민들이 희생을 당한 살구쟁이골과 우금티 전적지를 향한 행진으로 준비했다.

▲ 이원호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이 '살구쟁이골' 학살터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보순례단이 서 있는 곳이 유골이 발견된 현장이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원호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은 “제2 민간인 학살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기념사업을 한다든지 사과와 단죄를 철저히 하는 사후 노력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한국은 국가폭력에 대한 반성이 제대로 된 적이 없다. 이 학살터도 유골 발굴만 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 운영위원장은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추가 발굴 등을 위한 예산이 지급되지 않아 추가적인 수습은 멈춘 상태라고 말했다.

이 운영위원장은 “백남기 농민 또한 국가권력에 의한 학살이다. 사후 노력이 있어야 다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도보순례단을 이끄는 김영호 전농 의장은 “사람을 죽이면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데 정부는 백남기 농민 일을 과연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며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폭력시위라 해도 사람을 죽이면 되느냐. 더 할 말이 없다. 대책위는 끝까지 가서 정부를 이길 것”이라 말했다.

도보 순례단은 살구쟁이골을 나와 우금티로 향하는 길에 순례를 응원하는 공주 시민들을 만났다. 한 중년 남성은 4차선 도로의 한 차선을 행진해가던 순례단에 연신 박수를 쳤다. 한 운전자는 차를 멈추고 순례 참가자가 들고 있던 유인물을 직접 받아갔다.

이날 순례는 해가 진 오후 5시 30분경 동학 농민군이 일본군과 연합한 관군과 전투를 치른 공주 우금티 전적지에서 끝이 났다. 장장 15km를 걸어 공주를 들어간 이들은 22일 천안을 향해 갈 것이다.

“정부와 언론은 농민에 대해서 이야기하라”

도보순례단엔 매일 다양한 연대 단체와 시민들이 함께한다. 21일 순례길엔 진주, 합천, 거창 등에서 모인 경남여성농민회 10여 명, 부산의 시민사회단체 모임에서 온 20여 명, 공주·보령농민회 20여 명이 함께 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엄마부터 딸, 아들을 함께 데리고 나온 부모님, 개인 자격으로 수일 동안 순례를 결심한 시민까지 다양했다.

▲ 도보순례단이 21일 공주 우금티 전적지로 행진하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거창에서 가공업에 종사하는 원순애(44)씨는 “자식들이 어려 이런 자리에 잘 나오지 못했다가 지난 11월14일 민중총궐기를 처음 가보고 그런 모습을 피부로 느꼈다”며 “오늘은 여력이 돼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마음으로 순례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농부들은 한목소리로 “한국 사회엔 농업 정책이 없다”며 거센 분노를 표현했다. 한씨는 이를 두고 “농부는 버리는 패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보다 쇠락해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다”고 지적했다.

박남식 보성농민회 회장은 순례길에서 “농민들이 민중총궐기 1, 2, 3차에 모두 참여했지만, 언론 어디에도 농업 문제가 잘 보도되지 않았다”며 언론을 비판했다. 이어 그는 “국가수매제, 수입 쌀 문제, 농산물최저가격보상제 등 농업 문제는 산적해 있다. 노동문제도 중요하지만, 농부들이 죽어가는 문제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합천에서 마늘 농사를 하는 강선희(47)씨도 “정부도, 언론도 농업 정책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군사주권, 경제주권 등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권을 받치는 것은 실상 먹거리주권”이라면서 “농민이 참여하는 농업정책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은 정치인과 책상에 앉은 교수들만 정책을 짜고 있다. 그들이 한 번이라고 모심기를 해봤을까”라 반문했다.

한씨도 “노동자들에겐 최저임금, 사회보험 등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농민에겐 그런 가이드라인이 없다”며 “농사짓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소득이 보장되는 대책이 필요하다. 세금 면제 등 보조 제도가 있지만 기본적인 소득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농민들이 민중총궐기에 간 이유도 다 이를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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