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곧 전쟁이라도 터질 듯이 오싹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일차적 원인은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제4차 핵실험을 하는가 하면 ‘광명성 4호’라는 인공위성(미국과 한국은 ‘장거리 미사일’이라고 주장)을 쏘아올린 데 있다. 그런데 거기 대응하는 박근혜 정권과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움직임은 1950년대의 ‘냉전 시대’가 되살아난 듯한 살기를 풍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서는 주요한 선거철만 되면 ‘북풍’이라는 용어가 활개를 치곤했다. 주로 집권세력이 북한의 도발이나 전쟁 위협 따위를 빌미로 대중의 공포심을 일으킴으로써 야당은 ‘안보’에 태만하거나 무능하고 권력을 잡고 있는 세력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싸울 수 있음을 과시하는 수단이 바로 ‘북풍’이었다. 북풍은 ‘효과’를 거두는 경우도 있었지만, 역풍을 일으킨 적도 적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익히 알고 있을 박근혜 정권은 왜 지금 초대형 쓰나미처럼 공포 분위기를 자아내는 ‘북풍’을 일으키기에 ‘다 걸기(올인)’를 하다시피 하고 있을까?

여러 언론이나 SNS에는 박근혜 정권이 오는 4월 13일의 20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어 개헌을 통한 영구집권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북풍’을 일으키는 선풍기를 마구 돌리고 있다는 요지의 글들이 많이 오르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해 가장 날카롭게 핵심을 파고든 이재봉(원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글(‘박 대통령 대북강경책과 영구집권의 꿈’, <한겨레> 2월 19일자)을 먼저 보는 것이 좋겠다.

“(···)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독선과 불통 그리고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어도 무모하고 모순투성이인 초강경 대북강경책을 그냥 밀어붙이겠느냐는 것이다.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4월 총선에서 압승해 영구집권의 길을 닦기 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북한 붕괴와 흡수통일을 통한 ‘통일 대박’의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다.

▲ 한미연합사 독수리연습 자료사진. 이치열 기자 truth710@
총선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핵실험과 위성 발사를 구실로 ‘테러방지법’을 밀어붙이는 것도 수상하다. (···) 3월엔 사상 최대 규모로 미국과 합동군사훈련을 벌이겠다고 한다. 김정은의 목을 베는 작전까지 포함한다고 공개한 터다. 북한을 자극해 도발을 유도하는 걸까. 북한의 도발을 구실로 공안정국을 조성해 반대 세력을 무력화하고 저항 세력을 탄압하는 것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전형적 수법이다. 이 과정에서 보수 세력은 ‘애국’을 앞세우며 북한에 대한 원한이나 김정은에 대한 적개심으로 똘똘 뭉치게 되고, 진보세력은 ‘종북 몰이’에 몸을 사리며 더 분열되기 마련이다.”

박근혜가 이런 목적으로 ‘북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해도, 그 ‘소재’나 ‘작전’을 보면 너무나 많은 허점이 드러나고, 민족공동체의 화합과 재결합을 항구적으로 파탄에 빠뜨릴 가능성이 뚜렷이 보인다. 무엇보다도 먼저, 박근혜가 지난 16일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읽은 ‘국정에 관한 국회연설’에서 그런 문제들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북풍 의혹 같은 각종 음모론’은 ‘바로 북한이 바라는 일’이라며, “정부는 북한 정권이 핵개발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보다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60년이 넘도록 미국이 주도해온 정치·외교·경제·군사·문화적 봉쇄정치에 막혀 지내온 북한이 국제적으로 강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구책’으로 핵개발을 강행해온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93년 핵무기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한 북한은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지배하던 때인 2006년 10월 9일 처음으로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아버지의 귄력을 세습한 김정은은 ‘봉쇄’를 풀지 않은 채 북한을 가장 적대하는 미국과 그 동맹국인 대한민국을 향해 ‘핵개발’을 가장 강력한 대항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박근혜가 국민은 물론 온 세계를 향해 공언했듯이, 한국은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해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해 나갈 수’ 있을까? 전쟁 말고는 그렇게 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북한의 40배나 되는 경제력, 10배나 강한 국방력을 가졌다고 해서 전면전을 일으킬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측에서 선제공격을 하든 간에, 남과 북 사이의 국지적 전투는 걷잡을 수 없는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군이 전쟁에 개입한다면 북한이 수도권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장사정포를 마구 쏘아대고, 최악의 경우 10개를 보유했다고 알려져 있는 핵탄두들을 발사한다면 남한 지역 전체가 ‘석기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한반도3면의 바다를 누비고 있는 미국의 이지스함에서 북한 땅에 핵무기를 쏘아대면 북한은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동토(凍土)’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1945년 8월 미군이 일본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터뜨린 원자폭탄이 빚어낸 참극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갈수록 거세지는 ‘북풍’을 타고 새누리당 원내대표 원유철은 지난 15일 국회 연설에서 “북한의 공포와 파멸의 핵과 미사일에 맞서 이제 우리도 자위권 차원의 평화와 핵과 미사일로 대응하는 것을 포함해 생존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무지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군사적 종주국’인 미국은 물론이고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미국과 맞서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절대로 동의할 리 없는 일일 뿐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깨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핵무장을 한다면 일본과 동남아 여러 나라들에 번질 ‘도미노 현상’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 그런데도 집권당 원내대표의 노골적인 ‘핵무장’ 주장에 대해 박근혜는 단 한마디 비판도 하지 않았다.

미국은 지난 17일 한반도 상공에서 ‘준전시’나 다름없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는 F-22 4대를 일본 오키나와에서 발진시켜 오산 상공에서 저공비행을 하도록 한 것이다. 지난 1월에는 전술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장거리 전략폭격기 B-52를 보낸 바 있다. 2월 13~15일에는 핵추진 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호가 동해안에서 한국 해군과 연습을 한 뒤 부산항에서 언론에 공개됐다. 오는 3월 7일부터 4월 30일까지 벌어질 한·미 연합훈련인 ‘키 리졸브’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최첨단 전력’이 참여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무렵은 총선 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뒤 투표가 실시되는 시기이기도 한다. 북한 정권이 공포에 질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한의 국민들도 실전이나 다름없는 ‘전쟁 연습’을 텔레비전 중계로 보며 소름이 오싹 끼치게 되리라.

박근혜 정권은 광풍으로 변해 가는 ‘북풍 몰이’ 과정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의 한국 배치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만 해도 이 문제에 관해 아리송한 태도로 일관하더니 최근에는 노골적으로 미국과 본격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라 안팎의 전문가들은 사드가 단순히 북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데도 박근혜를 비롯한 고위관리들과 새누리당 간부들은 북한이 쏠 수도 있는 미사일을 격추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최대의 수출국인 중국이 항의하는 데 대해 설득력 있는 해명도 하지 못하는 채.

오늘날 한국사회를 먹구름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주범은 박근혜 정권과 오바마 행정부가 합작하고 있는 광풍에 가까운 ‘북풍’이다. 이것을 빨리 소멸시키지 않는다면 정치도 경제도 바른 길로 들어설 수 없다. 해결책은 하나뿐이라고 믿는다. 주권자들이 4월 총선을 통해 극우보수세력을 응징하는 한편 야권 연대로 민주주의를 되살릴 수 있는 정치세력에 승리를 안겨주어야 한다. 특히 박근혜 정권이 3년 동안 자초한 심각한 경제위기를 ‘안보위기’를 구실로 은폐하려는 기도를 냉철하게 심판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민주화는 평화와 동의어이다. 민주적 체제가 굳건하게 서지 않는 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평화는 경제민주화의 필수적 요소이다. 생산적 경제는 한국사회의 평화, 나아가서 남과 북 사이의 평화 없이는 확립될 수 없다.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 진영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정권교체를 한다면,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미국이 북한과의 ‘정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바꾸고 장기간의 ‘봉쇄’를 해제하도록 정치·외교적 노력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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