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없이’ ‘소송에서 질 것을 알면서도’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 기자와 PD를 해고했다는 ‘MBC 녹취록’ 파문에 이어 MBC 사측의 부당한 전보와 징계도 무효라는 판결이 연달아 나오고 있다. 

지난 2014년 10월 MBC의 교양제작국 해체와 이후 조직개편 과정에서 부당한 이유로 제작 현업 부서가 아닌 비제작부서로 발령이 났던 기자·PD들에 대한 전보가 무효라는 판결이 18일 나왔다.

이와 함께 이날 법원은 2012년 MBC 파업 참가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보도 불방 등으로 최하위(R) 인사평가를 받았던 기자에 대한 사측의 정직 처분도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재판장 김한성 부장판사)는 2014년 10월과 11월 MBC 경인지사와 신사업개발센터로 발령이 난 김환균 PD(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등 MBC 기자·PD 9명에 대해 “당시 전보발령이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사진=강성원 기자
재판부는 2014년 10월31일과 11월17일 전보발령이 난 김환균·한학수·이영백·이우환·이춘근 제작PD와 박종욱·이정은·임대근 기자, 고성호 라디오PD가 사측을 상대로 낸 전보발령 무효확인 소송에서 “MBC의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은 반면 이들의 불이익이 상당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상 요구되는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며 직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전보발령의 정당성을 판단함에 있어 고려돼야 할 직원들이 불이익에는 급여 등 생활상의 불이익 외에 직업이나 업무상의 불이익도 포함된다”며 “이들은 직종별로 구분된 모집과 전형 절차를 거쳐 기자, PD로 입사해 10~20여 년 기자·PD로 근무해 왔고, 업무경력 등에 전보발령 이후에도 기자·PD로 계속 근무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이들은 전보발령으로 기자·PD로서 경력이 단절되고 능력, 욕구가 반영되지 않은 새로운 업무를 수행하도록 지시받았는데, 사측의 업무상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전보발령으로 입은 불이익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앞서 지난 2014년 MBC는 교양국 폐지 후 ‘황우석 사태’를 다룬 한학수 전 ‘PD수첩’ PD 등 권력 비판적인 프로그램과 리포트를 제작했던 기자·PD들을 제작과 무관한 부서로 배치해 ‘찍어내기’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재판부는 또 파업 참가 이후 사측으로부터 인사평가 최하위 등급인 ‘R’ 처분을 3번 받았다는 이유로 1개월의 정직 징계를 받은 김연국 기자에 대해서도 정직무효 판결을 내렸다. 
 
김 기자는 2012년 MBC 파업에 참가 이후 R등급을 받았고, 2013년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리포트로 제작하려다가 당시 심원택 부장의 지시로 불방된 후 또 R등급을 받았다. 이어 사측은 김 기자를 스포츠국으로 전보한 후에도 3번째 R등급을 매기고 인사위원회를 열어 정직 1개월과 교육 2개월 징계를 내렸다. (관련기사 :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제작했던 MBC 기자, 결국 징계)

재판부는 김 기자가 제기한 정직취소 소송에서 “김 기자가 받은 3번의 R 판정이 모두 적법하지 않아 김 기자를 3R 평가자로 보고 내린 정직처분 역시 정당한 징계사유가 없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는 18일 방송문화진흥회 정기이사회에 앞서 서울 여의도 방문진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종문 녹취록’ 진상규명과 안광한 사장 해임을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아울러 이날 서울고등법원은 2012년 파업 당시 후배 기자들의 면담 요청을 거부하고 퇴근하다가 기자들의 퇴근 저지 과정에서 허리에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한 권재홍 부사장 관련 MBC 뉴스데스크 보도에 대해서도 사측에 반론보도하라고 명령했다.(관련기사 : 법원 “MBC 권재홍 ‘허리우드 액션’ 반론보도하라”)

그러나 MBC 사측은 이번에도 사법부의 판단에 불복 입장을 보였다. MBC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법원의 판단에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며 “이번 판결은 직종제의 기득권을 누리면서 그동안 ‘한번 기자는 영원한 기자, 한번 PD는 영원한 PD’라는 구시대적인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과 같아 상급심의 판단을 다시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측은 권재홍 부사장 관련 반론보도 판결에 대해서도 “노조가 신청한 ‘정정보도’가 아닌 일부 내용에 대한 ‘반론보도’만 인정돼 전체적으로 회사 입장을 수용했음을 의미한다”며 “권 부사장에 관한 당시 뉴스데스크 보도는 진실한 것이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언론노조 MBC본부는 “김재철 사장 시절부터 시작돼 안광한 사장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MBC 사측의 각종 위법 경영 행위에 대해 법원이 또다시 철퇴를 가했다”며 “MBC를 무법천지로 만들고 있는 위법 경영진들은 사법부의 준엄한 판결을 똑똑히 새겨듣고 응분의 책임을 지라”고 질타했다. 

노조는 이어 “최근 ‘백종문 본부장-폴리뷰 녹취록’이 터져 나오고, ‘최기화 보도국장 욕설 파문’ 등 MBC를 둘러싸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면서 “사측 고위 책임자들이 곳곳에서 치부를 드러내며 MBC의 명예와 위신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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