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전 장관의 국민의당 합류로 신기남, 박지원, 최재천 의원의 거취가 다시 관심사다. 정 전 장관이 정계복귀회견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늘 강조해오던 '새누리와의 1:1구도 필수론' 실종사태에 대해 최소한의 설명이나 입장을 밝히는 게 옳다고 본다. 물론 그가 실종시킨 것은 아니지만, '1:다 구도'의 강화에 결과적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은 전주 덕진(전주 완산병)에 '기어이' 출마, 명예회복과 함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도모할 것이다. 특정 정당 내부 문제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지만, 전주 덕진에서 이미 선거운동중인 김근식 예비후보는 비례대표 쪽으로 방향을 돌리지 않을까 싶다.

신기남 의원. 무소속 출마가 얼마나 불리한 지 누구보다 잘 안다. 당 간판 없이 치르는 선거는 젖은 양복바지 입고 뛰는 100m 경주와 같다. 그는 이른바 '의원 아버지의 갑질'이 결코 아니라며 몹시 억울해한다. "희생양 만들어 쫓아냈다"며 더민주에 배신감까지 토로한 터라, 국민의당 입당 후 더민주당 후보를 상대로도 독하게 선거전을 펼칠 것이다. 그가 세게 나올수록 새누리의 어부지리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신 의원이 입당한다면, 그때와 성격은 다르지만, 12년 전 '천신정'이 안철수 멍석에 다시 둥지를 트는 셈이다. 얄궂다, 정치. '생물'이라기 보다는 '아이러니' 라는 말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와 정동영 전 의원이 지난 2월18일 전북 순창군 복흥면 복흥산방에서 입당에 합의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지원 의원 역시 저축은행수뢰사건이 대법원서 무죄취지 환송됨으로써 굴레를 반 이상 벗었다. 아직 국민의당에 합류하지 않고 있는 권노갑 등 구 동교동계 인사들과 '야권 우선적 소통합' 명분으로 무더기 동반입당할 가능성, 남아있다. 18일 대법원의 실질적 무죄판결이 목포 민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지만(크지는 않으리라 본다), 목포의 더민주 예비후보 지지율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오고 있는 것도 그로썬 신경쓰인다. 그에게도 당이 필요하긴 하다. 그런데, DJ의 본산인 목포에서 안철수당에 간 뒤 'DJ당'에 좀 더 가까운 더민주당 후보 말고 자신에게 표 달라고 하기가 마뜩찮을 것이다. 이 점 때문에 그가 무소속으로 남을 가능성이 아직은 여전히 높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현재의 박빙 상태가 두어 주 더 지속된다면, 그 역시 '안철수 당적'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목포는 광주처럼 '안철수 바람'이 강하지는 않다지만, 박빙 국면에서는 미풍에라도 올라타고픈 것 또한 후보된 자의 심리다.

박 의원 마저 국민의당에 들어간다면 최재천 의원도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있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된다. 외로울 수 밖에 없는 '광야의 선각자적 늑대'라기 보다는 독불장군 외톨이로 간주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그가 딱히 ‘독립운동 지사’ 같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닐테니 더더욱. 타이밍 잡아 합류할 것으로 본다. 그는 샤프하면서도 파이팅 좋은, 흔치 않은 재사다. 입당하더라도 불출마를 선언했기에 당분간은 당내 입지나 역할이 애매해보이겠지만, 녹록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

밤에 포위되기 전에 잠자리를 찾으려는 건 집 나선 자의 당연한 심사다. 한 발이라도 일찍 당도해야 그나마 나은 방, 덜 나쁜 방을 잡을 수 있다. 최 의원까지 합류한다면 국민의당은 1차 숙원사업인 교섭단체도 이룬다. 3월 이후로 국회가 열릴 일은 거의 없을테니 원내 정치적 독립단위로써의 의미는 사라져 김이 많이 빠졌지만, 3월15일까지 세 사람이 합류한다면 국고보조금은 뭉치로 나온다. 적잖은 유혹이자 실탄이다.

선거가 5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적어도 호남의 '직업정치인'들 사이에선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다시 호각지세를 이뤄가고 있다. 정 전 장관의 국민의당 합류가 이렇게 '나비효과' 같은 연쇄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의 정치적 영향력을 며칠 새 최고치로 끌어올린 것은 두 말할 필요없이 개성공단사태다. 북핵실험과 장거리로켓, 개성공단전면중단과 폐쇄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일견 내리막길의 끝에 다다른 것으로 보였던 한 정객을 정치무대의 1/4 지점 쯤으로 이동시켰다. 무대 중앙 ‘로얄스폿’으로 진출할지 여부는 그의 할 탓이다. 어쨌거나 ‘인저리타임’ 5분 가량이 주어진 건 사실이다.

직업적 정치인들을 헤쳐모이게 해서 '삼분지계'를 도모하는 것이 국민의당으로선 최선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 최선이 곧 옳음은 아니다. 특정 당의 최선과 시대적 흐름 사이의 옳고그름은 계정이 완전히 다르다. 옳은 것인지 여부는, 선거니까, 결국 표로 입증된다. 새누리의 180석 이상으로 끝난다면 국민의당은 양당제 타파가 아니라, 야권몰락의 최대 원인자가 된다. "새누리세력의 확장에 반대한다"고 수 차에 걸쳐 천명하고서 결과적으로 새누리압승에 기여했으니 존재이유를 추궁당할 것이다. 양당 구도 타파는 국민의당이 "새정치" 구호 대신 내세우고 있는 새 정체성이자 슬로건이다. 새누리의 과반을 저지해야 진정한 의미의 양당 구도 타파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의당이 힘을 다시 발휘할수록 새누리의 어부지리 가능성도 따라서 커진다는 점이 야권 지지자들의 딜레마다. 이 걱정에 1차적으로는 국민의당이 답해야 한다. 더민주는 간발의 차이로 2차 답변자이다. 그런데 둘 다, 답안지는 안봐도 비디오다. 서로 네 탓만 할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더민주와 국민의당 후보들은 상대 제치기에 몰두할 것이다. 그게 선거의 속성이다. 같이 죽는 길인 줄 뻔히 알면서도 일단은 눈 앞의 비슷한 경쟁자를 향해 활을 쏜다. 그러다 뒤에서 날아온 돌에 맞는다. 돌에 맞아 죽을 때까지 같은 떡을 두고 이복 형제끼리 눈 부라리다 결국 둘 다 같이 사라진다. 어쩌겠는가, 그게 소선거구제인걸.

어차피 시위는 당겨졌다. 시간이 갈수록 분화하는 원심력은 커지게 되어있다. 두 당의 지도급 인사들은 각 후보들의 각개 전투를 조율해야 한다. 그래야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그게 이른바 지도급 인사들의 임무다. 그런데 그 조율이 잘 진행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무망하다. 바둑판의 ‘아생연후 살타(我生然後殺他)’라! 우선 나 살기가 바쁘니까. 시민세력의 총선연대촉구도 압력이 분산되어 이전에 비해 효과는 약화될 것으로 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각 당은 자기최면에 빠져 시야가 더욱 좁아질 것이다. 아령 몇 시간 들고서 알통 만져보며 으쓱해하는 고1 처럼. 선거란 투표일이 목전에 다가올수록 알면서도 빠지는 '동굴의 우상' 같은 거다. 동굴 안에서 알통 쓰다듬어봐야 혼자 뛰는 1등이다. 동굴 앞 큰 바위에 올라가 들녘을 두루 내다본 네안다르탈인의 수렵 성적표가 좋았다. 배운 지 오래라 대개들 잊은 것 같다. (이강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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