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지막 사중주’(Late Quartet)를 보셨나요?

‘푸가’ 사중주단의 첼로 주자 피터가 파킨슨씨병에 걸렸습니다. 사중주단의 최고령자인 그는 다가올 창단 25주년 연주회가 자신의 고별 무대가 될 거라고 선언합니다. 앙상블의 주춧돌이 사라지게 될 상황이 된 거죠. 사중주단의 미래를 놓고 이견이 생기고 갈등이 일어납니다. 로버트(제2바이올린)는 앞으로 자기도 가끔 제1바이올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량이 떨어지지 않는데도 그늘에서 다니엘(제1바이올린)을 뒷받침만 하기는 싫다는 거죠. 다니엘과 줄리엣(비올라)은 “기량 문제가 아니라 역할 문제”라며 반대합니다. 부부 사이인 줄리엣과 로버트 사이에 갈등이 증폭됩니다. 설상가상, 두 사람의 딸 알렉스가 다니엘(제1바이올린, 알렉스의 바이올린 선생)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맙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로버트는 격분하여 다니엘에게 주먹을 날립니다. ‘푸가’ 사중주단은 연주회를 앞두고 회복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집니다.

최대한 간략히 줄거리를 요약하려 했는데 좀 길어졌네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4명의 주인공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대화가 현악사중주를 닮았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음악가들의 내면의 움직임을 아주 따뜻하고 섬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얼핏 통속적인 줄거리 같지만, 네 사람이 자기 삶을 직면하는 태도, 음악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무엇보다, 전편에 깔려 있는 베토벤 현악사중주곡이 관객들의 마음에 고요히 스며듭니다.

▲ 영화 ‘마지막 사중주’의 극중 인물들. 왼쪽부터 다니엘(제1바이올린), 로버트(제2바이올린), 피터(첼로), 줄리엣(비올라)

아, 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됐냐구요? 알렉스는 다니엘에게 작별을 선언하고, ‘푸가’ 사중주단은 마지막 힘을 모아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줍니다. 첼로 주자 피터는 피날레를 연주하기 직전 연주를 중단하고 청중들에게 고별인사를 건네지요. 줄리엣은 존경의 눈물로 그를 떠나보내고, 피터의 후임자가 등장해 그의 빈자리를 메우죠. 고독하고 위엄 있는 피날레가 흐르며 영화는 암전됩니다.

이 영화에서 ‘푸가’ 사중주단이 연주하는 곡은 하필이면 베토벤 현악사중주곡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14번 C#단조입니다. 7개의 악장으로 돼 있어서 구조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처음부터 끝까지 휴식이 없으니 연주하는 이들이 무척 힘들어 한답니다. 저처럼 그냥 듣기만 하는 사람도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제 경우, 베토벤의 다른 사중주곡은 어릴 때 듣고 곧 감동할 수 있었지만, 유독 이 곡만은 어른이 된 뒤에도 저 멀리 빛나는 별처럼 범접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제 연륜이 있으니 좀 들리기 시작하는구나, 생각하다가도 고개를 들면 베토벤의 드높고 고독한 정신세계는 저 멀리 있을 뿐입니다.

이 곡을 분석하는 것은 제 능력 밖이고, 특히 1악장이 느린 푸가로 돼 있어서 첫 걸음을 내딛기조차 버겁습니다. 베토벤한테 따귀 맞을 각오*하고, 7악장으로 된 이 곡을 제가 어떻게 접시에 담아서 먹었는지, 비결을 얘기해 볼까 합니다.

먼저, 가장 짧은 3악장과 6악장을 잘라서 내려놓습니다. 3악장은 11마디밖에 안 되는 대목으로 다음 악장의 서주라 할 수 있습니다. 6악장도 여러 선율이 나오지만 연주 시간이 1분 30초 정도의 간주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짧은 두 악장을 제외하면 크게 보아 1, 2, 4, 5, 7의 다섯 악장으로 된 곡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악장 수를 줄여놓고 보면 큰 구조를 파악하기 쉬워지지요.

곡 전체의 중심에 있는 게 4악장(링크 10:27)입니다. 주제와 6개의 변주곡으로 된 아름다운 부분으로, 길이도 13분 정도로 가장 길지요. 이 중심을 둘러싸고 생기 있게 흘러가는 2악장(링크 6:39)과 환상적인 스케르초 5악장(링크 23:10)이 대비를 이룹니다. 끝으로, 느린 푸가인 1악장(링크 처음)과 소나타 형식의 위엄 있는 7악장(링크 30:00)이 곡 전체의 알파와 오메가를 이룹니다. 두 악장은 중심 조성인 C#단조로, 서로 연결되지요. 자, 이제 큰 줄기를 파악했으면 아까 내려놓았던 3악장(링크 9:39)과 6악장(링크 28:36)을 다시 넣어볼까요? 7악장으로 된 곡 전체가 완성되지요? 이제 처음부터 잘 들어보기로 하죠.

베토벤 현악사중주곡 14번 C#단조 Op.131
https://youtu.be/8Hb1tGfKzPo
(연주 알반 베르크 현악사중주단)


훌륭한 목수는 못질한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C#단조 사중주곡은 이렇게 연결자국 하나 없는 완벽한 조형물이 됐습니다. 전통적인 4악장의 형식을 완전히 파괴했나 했더니 뜻밖에 새로운 형식미가 눈앞에 나타나는 거지요. “베토벤은 여기서 해체를 너무나 멀리 밀고 나간 끝에 그 반대편, 즉 위대한 응집과 심오한 통합성으로 되돌아온다. 베토벤의 작품 중 가장 완벽한 천의무봉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메이너드 솔로몬, <루트비히 판 베토벤> p.399)

베토벤은 마지막 현악사중주곡 중 앞의 세 곡 - 12번 Eb장조, 15번 A단조, 13번 Bb장조 - 을 갈리친 공작의 주문을 받고 작곡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14번 C#단조 사중주곡은 다른 사람의 주문이 아니라, 베토벤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충동에 이끌려서 써 내려갔습니다. 이 무렵 베토벤은 제자 홀츠와 산책하던 중 기쁨에 넘쳐 “또다시 뭔가 내게 일어났다”고 외쳤지요. 홀츠는 베토벤이 “이 창조의 파도로부터 새로운 악상이 너무나 풍부하게 흘러나왔기 때문에 거의 떠밀리다시피 C#단조와 F장조 사중주를 써 내려갔다“고 증언했습니다. (메이너드 솔로몬, p.390)

이 무렵 작곡된 현악사중주곡은 모두 나름대로 위대하지만, 베토벤 자신은 이 C#단조 사중주곡이 가장 나은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슈베르트가 죽기 닷새 전 이 곡을 듣고 너무나 흥분하고 열광했기 때문에 친구들이 걱정할 정도였다는 일화가 있지요. 프랑스의 음악학자 롤랑 마뉘엘은 이 작품이 심지어 “9번 교향곡보다 더 위대하고 중요한 작품”이라고 했군요. (롤랑 마뉘엘 ‘음악의 기쁨-2’ p.343)


다시 영화로 돌아갈까요? ‘마지막 사중주’가 감동적인 이유는, 파킨슨병 때문에 오랜 음악가 생활을 접어야 하는 첼로 주자 피터의 모습에 만년의 베토벤의 예술혼이 겹쳐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폭풍 같은 인생의 막바지에 도달한 높은 정신세계가 담긴 베토벤의 C#단조 현악사중주를, 가장 어려운 작품인데도, 용기 있게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대중적 흥행만 추구한다면 상상하기 힘든 발상이지요. 영화 끝부분, 미술관에서 늙은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던 피터와 줄리엣이 대화를 나눕니다.

줄리엣, “렘브란트가 선생님에게 무슨 얘기를 해 주나요?”

피터, “난 화가 중에 최고다, 난 정말 위대하다. 늙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나는 전성기다. 어둠 속에 반짝이는 눈빛이 정말 강렬하지. 황금색 옷 때문에 자기가 좀 웃겨 보이는 건 알지만 그의 몸과 마음은 아직 그를 배반하지 않았어.”

피터는 이 대사로 렘브란트의 그림에 자신을 투사하지요. 그런데, 이 말은 C#단조 사중주곡을 작곡할 무렵의 베토벤 얘기 같기도 해서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의 메시지는 마지막 장면에 아름답게 새겨져 있습니다. 사중주곡의 피날레가 연주될 때 피터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알렉스와 함께 객석에 앉아서 음악을 듣지요. 황혼의 피터와 청춘의 알렉스가 손잡고 음악에 몰입하는 이 장면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습니다.

“현재와 과거는 아마 미래의 시간 속에 있을 것이다.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 속에 이미 들어 있을 것이고…. 모든 시간이 영원한 현재라면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아니, 시작보다 끝이 먼저 있다고 해야 할까? 끝과 시작은 늘 그 곳에 있었고 시작 이전과 끝 이후에 언제나 현재가 있다.”

▲ 영화 ‘마지막 사중주’의 연주를 맡은 브렌타노 현악사중주단

시인 T. S. 엘리어트는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사중주곡에 네 편의 시를 바쳤는데, 이 영화에 한 구절이 인용돼 있어요. 베토벤 음악도 어려운데, 엘리어트의 시는 더 어려운 것 같지요? “늙음을 너무 슬퍼 말라, 아름다움과 몰아지경에서 젊음과 늙음의 구별은 무의미할 것이니….” 이렇게 쉽게 읽어도 좋을 것 같군요. 영화 <마지막 사중주>와 베토벤의 C#단조 현악사중주곡, 둘 다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 제자 페르디난트 리스(Ferdinand Ries)는 베토벤에게서 따귀를 맞을 뻔한 경험을 기록했다. 1804년 ‘에로이카’ 교향곡 리허설 때였다. 1악장 재현부가 시작되기 전에 호른 주자가 주제를 연주하자 리스는 호른이 실수로 너무 일찍 나왔다고 판단하여 큰 소리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베토벤은 불같이 화를 내며 리스를 노려보았고, 이 순간 리스는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겁에 질렸다고 한다. 호른 주자는 베토벤이 악보에 써 넣은 대로 잘 연주한 건데, 리스가 베토벤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