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어떤 점은 부각하고, 또 어떤 점은 배제한다. 종합편성채널은 차이잉원 대만 총통 당선소식을 전하며 박근혜 대통령과 ‘닮은꼴’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두 인물을 억지로 연결해 사소한 점까지 공통점으로 만든 것이다. 종편은 여성리더가 부상할 때마다 이 같은 ‘억지 닮은 꼴’보도로 물타기를 하고 있는데, 정작 ‘닮은 꼴’프레임 바깥으로 배제된 ‘다른 점’을 살펴보면 이들 언론이 숨기고 싶어하는 불편한 사실들이 많다..

지난 16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당선되자 TV조선과 채널A는 차이잉원 총통과 박근혜 대통령의 ‘닮은 꼴’을 찾아 보도했다. 채널A ‘종합뉴스’는 “박근혜 자서전 추천사 쓴 ‘대만판 박근혜’” 리포트에서 “차이잉원은 중화권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이자 선거의 여왕으로 불린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닮은꼴”이라며 “당 대표를 지낸 여성 정치인이자 미혼인 점, 각종 선거 승리를 이끈 선거의 여왕이라는 점 등 비슷한 곳이 많다”고 보도했다. 같은날 TV조선 ‘토요특급’역시 ‘미혼’이라는 사실과 ‘선거의 여왕’이라는 점을 근거로 대동소이한 보도를 했다.

   
▲ 지난 16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차이잉원 후보의 당선 소직이 전해지자 채널A와 TV조선은 박근혜 대통령과 '닮은 꼴'이 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차이잉원 총통과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선거의 승률이나 혼인여부보다 본질적인 비교대상은 정책의 방향성이어야 한다. 두 정치인의 정책은 ‘닮은 꼴’이 아니라 ‘다른 꼴’투성이다. 차이잉원 총리는 사회임대주택 및 공공주택 건설 등을 통한 ‘복지확대’, ‘원전축소’ 등 진보적인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편성을 지자체에 일임하고, 대기업 사용자에 유리한 노동시장구조개혁을 밀어붙이는 박근혜 대통령과 상반된 행보다. 두 인물은 정치인으로서 성장한 과정도 다르다. 보수논객인 전원책 변호사는 지난 21일 JTBC ‘썰전’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으로 정치적 스타가 된 경우”라며 차이잉원 총통을 가리켜 “스스로 큰 사람”이라고 비교했다.

‘닮은 꼴’보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이 순방을 떠나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닮은 꼴’보도가 이어졌다. 지난해 5월23일 채널A는 “박 대통령과 바첼레트 대통령의 부친은 모두 장군 출신으로 부하의 손에 비극적으로 숨을 거뒀다”면서 “대학교 때 박 대통령은 전자공학, 바첼렛 대통령은 의학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인 점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YTN 역시 같은 이유를 들며 ‘닮은 꼴’이라고 보도했다.

두 현직 대통령을 닮았다고 묘사하면서도 정작 정책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 바첼레트 대통령이 당시 재선을 하게 된 인기의 배경에는 ‘위기관리 리더십’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의 임기 중 두 차례 강도높은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는데, 대통령이 직접 사건발생 1시간 만에 방송 브리핑을 하고 직접 현장을 찾아 재난상황을 컨트롤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때 구조실패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메르스 사태때도 뒤늦은 대처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박 대통령이 칠레 순방을 떠난 때는 세월호 참사 1주기이기도 했다.

   
▲ 종편은 칠레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 버마 아웅산 수치 여사는 물론 피겨선수 김연아와 만화 '겨울왕국'의 엘사까지도 박근혜 대통령 '닮은 꼴'로 보도했다.
 

바첼레트 대통령과 더불어 아웅산 수치 여사 역시 종편과 보수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의 ‘닮은 꼴’로 분류하는 인물이다. 2013년 1월23일 채널A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웅산 수치, 닮은꼴 두 지도자 만난다”리포트에서 “두 사람은 모두 정치 지도자 아버지를 뒀고, 나란히 암살로 아버지를 잃는 비극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야당의 당수이자, 선거의 여왕이란 공통점도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2013년 1월21일 중앙일보는 ‘불행한 가족사’를 대표적인 공통점으로 꼽았다.

바첼레트 대통령과 아웅산 수치 여사, 그리고 박 대통령의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비극적으로 숨진 군인 아버지’를 뒀다는 점이다. 그러나 단순히 ‘군인’이라는 추상적인 면 대신 ‘어떤 군인’이었는지, 어떤 맥락에서 목숨을 잃었는지 살피면 그 행적이 매우 상반된다. 바첼레트 대통령의 아버지는 칠레의 독재정권인 ‘피노체트’ 군사쿠데타 세력에 저항하다 ‘반역죄’로 체포됐으며 고문후유증으로 감옥에서 숨졌다. 아웅산 수치 의원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은 영국과 일본에 맞서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암살됐다. 똑같은 군인이지만 일본군 장교 출신에 군부독재 장기집권을 꾀하다 부하에게 암살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교할만한 대상이 아닌 것이다.

아웅산 수치 여사와 바첼레트 대통령은 민주화운동을 한 정치인이라는 점에서도 박근혜 대통령과 상반된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버마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고, 15년 동안 수감되고 가택연금을 당했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대학생 때 군부독재에 맞서 사회주의 청년단 활동을 하다 해외로 추방된 이력이 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군부독정권에서 사실상 영애 역할을 했다. 집권 이후에도 통합진보당 해산, 전교조 법외노조화 등을 통해 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섰다.

   
▲ 채널A의 박근혜 대통령과 만화 '겨울왕국' 주인공 엘사 비교 보도는 '닮은 꼴'보도의 끝판왕 격이다.
 

앞의 사례는 직업적인 공통점이라도 있었지만 종편은 아무런 관련이 없더라도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인물이면 박근혜 대통령의 ‘닮은 꼴’로 몰아가곤 했다. 2014년 2월15일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에서 이봉규 평론가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연아 선수의 공통점에 관해 “멘탈이 많이 닮은 것 같다. 강직하고 침착하고 일관성 있고, 무덤덤한 성격”이라며 “무결점, 그런 것도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2014년 1월30일 ‘채널A 뉴스탑10’은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는 점 △나라(청와대)를 떠났다가 복귀해 왕이 됐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며 만화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닮은 점을 만들어냈다. 

‘닮은 꼴 비교’에서 배제된 주요한 사실들을 모아보면 정책면에서는 ‘복지축소와 친재벌 기조’, 국가운영에서는 ‘위기관리 실패’, 가정사는 ‘독립운동, 민주화운동과 대척점에 선 부녀’, 성장과정에서는 ‘본인의 능력보다 아버지 후광으로 컸다는 점’이 드러난다. 결국 밑도 끝도 없어 보이는 닮은 꼴 보도가 박근혜 대통령과 상반되는 인물과의 동일시를 통해 대통령과 정부가 감추고 싶어하는 사실을 덮어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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