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로 들어가서 인사담당자를 만난다. 연봉 산정의 근거 같은 건 말해주지 않는다. ‘아무개 기자, 지난해 연봉이 얼마였고 올해 연봉이 얼마입니다. 그럼 여기에 사인하세요’ 라는 말을 듣고 종이에 사인을 하면 ‘수고하셨습니다. 나가보세요’ 라고 한다. 1분도 안 걸린다. 30초? 30초면 연봉계약 끝난다.” (경제지 소속 A기자)

연합뉴스·동아일보 연봉제 논란 

언론사들 사이에서 연봉제가 또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최근 연합뉴스 노사는 성과연동형 연봉제 도입을 두고 다투고 있다. 연합뉴스 사측이 지난해 12월31일 ‘회사의 경영사정 및 개별 근무평가 결과에 따라 기본급(연봉사원은 기본임금) 인상률을 차등할 수 있으며 인상률은 사장이 정한다’는 내용을 급여규정에 신설한 것이다.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지부는 지난 4일 “부패한 권력에 매서운 비판을 위해선 때에 따라서는 데스크와 맞설 수도 있는 것이 기자의 본분일 텐데 평가가 임금과 직결된다면 미운 털이 박히는 것을 감수하고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고 밝혔다. 지부는 해당 규정의 즉각 철회를 요구한 상황이다. 

 

   
▲ 연합뉴스 사옥
 

동아일보 노사는 연봉제 도입 등을 두고 교섭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는 구성원들을 상대로 지난 12일과 13일에 연봉제를 비롯한 노사협의과정에 대해 두 차례 설명회를 진행했고 동아일보 노조는 20일 대의원 총회에서 연봉제를 포함한 임금협상과 단체협약 내용을 투표에 부친다. 동아일보 내부는 찬반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동아일보 노조는 안정적인 연봉제 도입을 위해 다섯 개 대원칙을 제시했고 회사가 이를 수용한 상황이다. 대원칙에는 △평가연동을 최소화할 것 △평가연동된 임금에 삭감은 없을 것 △개인교섭이 아닌 단체교섭을 할 것 등의 내용이 담겼다. 20일 대의원 총회에서 안건이 통과되면 동아일보 노사는 연봉제 세부사항을 논의하게 된다. 

언론사 연봉제 도입, 벌써 10년

언론사의 연봉제 도입은 2000년대 초중반부터 끊임없이 이슈가 됐다. 언론사에서 연봉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때는 2000년도 초반으로 보인다. 1999년도에 발행된 신문과방송 337호 ‘언론사 연봉세 실시 현황’을 보면 각 언론사 인사담당자들로 구성된 ‘언론사 인사협의회’는 연봉제와 관련한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대학교수와 대기업 인사담당자도 참석했다.  

신문과방송에 따르면 당시 국민일보, 경기일보, 부산방송, 청주방송 등은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었고 중앙일보는 차장급 이상, 세계일보는 부차장급 이상 등 간부직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적용하고 있었다. 이후 한국일보는 2000년, 조선일보는 2006년, 중앙일보는 2007년 연봉제를 도입했고 서울신문은 2008년 입사 대상자부터 연봉제를 실시했다. 

언론사 연봉제의 쟁점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기자를 평가할 것이냐다.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국언론산업과 연봉제의 대립성’ 연구에서 “주요 출입처를 가진 기자와 그렇지 않은 기자를 평가하는 데도 문제가 있고 도제적인 노동과정의 특이성을 볼 때, 친하고 먼 관계에 따라 평가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 지난해 11월11일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장 기자실. 사진=연합뉴스
 

노조 없는 언론사일수록 기자들 내몰려

실제 김 교수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규모가 작고, 노조가 없는 언론사일수록 연봉협상 과정에서 기자가 겪는 어려움은 크다. 노조가 없는 한 주간지에서 일한 B기자는 “기사 생산의 양과 질, 마감시간 준수, 회사의 이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등이 평가 기준이 된다”며 “기자 개개인의 강점이 다른데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연봉 협상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말은 ‘협상’ 이지만 단체가 아닌 개별 교섭의 과정에서 개인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B기자는 “초기에 노사협의회에서 정하는 기본적인 인상률이 있기는 하지만, 이후에 기자 개인이 회사와 협상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며 “한번은 연봉을 공론화하려고 하자 인사담당자가 ‘그건 징계감’이라고 말했다”라고 밝혔다.

통신사 C기자는 “매년 연봉이 오르긴 하는데 근거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회사 마음에 들면 많이 주고 안 들면 적게 준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며 “하지만 ‘이거 가지고 안 된다’며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기자는 없다”고 말했다. C기자가 일하는 통신사도 노조가 없다. C기자는 “연봉 계약할 때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조항에도 사인을 한다”고 말했다. 

 

   
▲ 지난 2007년 1월 연봉제 도입 당시 중앙일보 노보
 

조선·중앙은 그나마 나은 편

노조가 있고 규모가 큰 언론사는 그나마 사정이 괜찮다. 개인 교섭이 아닌 단체 교섭이 기본이며 기자들이 평가에 개입할 수는 없지만 평가 항목도 그나마 투명하다. 2006년 연봉제를 도입한 조선일보는 노사가 임금협상에서 임금 상승 총액을 협상한 다음 기수별로 배분하고 이후에 기자 개인 평가가 연봉에 반영된다. 조선일보 D기자는 “기사 평가에는 단독뿐 아니라 노력상, 창의상 등도 있어서 평가 항목에 크게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조선일보 노조는 연봉제를 도입할 당시 임금 삭감은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달아 연봉제가 임금삭감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막았다. 조선일보 E기자는 “성과연동형 연봉제이긴 하지만 연동폭이 적기 때문에 기본급에서 큰 차이가 벌어지지 않고 연말 성과급에서 조금 차이가 나는 정도”라며 “호봉 제도를 없앤 것 이상은 아니”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도 비슷한 시스템이다. 노사가 정한 임금상승률에 기자 개인에 대한 평가가 반영돼 연봉이 책정된다. 중앙일보 관계자는 “특종이나 단독이 반영되지만 정량평가는 아니며 취재력, 문장력, 기획력 등을 두루 평가한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를 받아볼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통로도 마련돼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기자들이 연봉제를 선호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호봉제일 때는 임금협상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기본급이 오르는 반면 연봉제는 노사가 ‘다퉈야’ 호봉승급 정도의 임금 인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임금 인상률이 적다. E기자는 “연봉제로 재미봤다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며 “업계가 어려우니 할 수밖에 없지만 기본적으로 연봉제의 장점은 없다”고 말했다. 

 

   
▲ 사진=iStock
 

극단적인 연봉제, 회사에도 좋지 않다

나아가 최소한의 보호막도 없는 언론사 연봉제의 경우, 기자들은 물론이고 회사 입장에서도 좋을 게 없다. 먼저 회사 내부 분위기에서 그렇다. 철저한 성과주의로 유명한 한 증권지에서 일했던 F기자는 “기자들이 매달 받는 성과급도 다 다를 정도로 성과주의가 심하기 때문에 기자들 간 견제가 심하고 영역이 겹칠 경우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했다. 

B기자도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잘 나가고 어떤 사람은 저조한 게 쌓이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특히 40대 전후 기자들에게는 압박이 심할 수밖에 없다”며 “때문에 기자들 입장에서는 다른 회사에서 제안이 왔을 때 ‘베팅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회사를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내 분위기는 기자 이탈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연봉제에서 오히려 호봉제로 전환한 언론사도 있다. 프레시안은 지난 2009년 연봉제를 호봉제로 바꾸었다. 박세열 프레시안 전 노조위원장은 “기자 직종의 특수성 상, 평가에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데, 연봉을 덜 받는 기자가 일을 덜 하는 것도 아니”라며 “그런 여러 잡음을 없애기 위해 호봉제로 전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사들은 지난 10여 년간 ‘성과에 대한 다양한 보상’ 등을 명목으로 연봉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같은 기제가 작동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특히 노조가 없고 규모가 작은 언론사 기자들은 회사가 내미는 연봉을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에 대해 B 기자는 “이런 구시대적 평가 시스템이 기자들의 시도를 막아, 결과적으로는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회사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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