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축’이 국제무대에 복귀했다. 이란이 국제사회와 약속한 핵협상 이행조건을 충족하기로 하면서 핵 관련 모든 경제·금융 제재에서 벗어났다. 2002년 미국 부시대통령이 이란과 북한 등을 ‘악의 축’으로 지정한지 14년만이고,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 등에게 제재를 받기 시작한지 37년만이다. 

지난해 7월 미국·영국·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 등 주요 6개국은 이란과 핵 협상을 타결했다. 이로 인해 이란은 하루 5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할 수 있게 됐고, 투자활동도 가능해졌다. 국내 언론은 일제히 ‘이란특수’를 누려야 한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인구 8000만명의 중동 최대 내수시장으로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 석유 매장량 4위다. 

오랜 경제제재 이후 이란과 주요국 대화를 통해 핵문제가 해결됐다. 이를 두고 보수언론은 북한 핵에 대해서도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촉구했다. 이란을 압박한 결과 이란이 핵을 포기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이 경제제재를 하더라도 중국에 의존하는 북한 경제를 압박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다음은 18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이란 제재 해제, 유가 폭락 ‘부채질’…떨고있는 세계경제>
국민일보 <‘신변 이상’ 초등생 빙산의 일각>
동아일보 <175조원 이란 건설시장 열린다>
서울신문 <‘빗장’풀린 이란…북핵만 남았다>
세계일보 <‘불량국가’벗고 부활하는 페르시아>
조선일보 <40개월…누구도 그 아이를 찾지 않았다>
중앙일보 <37년 제재 해제 이란 특수 120조>
한겨레 <“딱 170만원만 벌었으면” 청년 절반 근로빈곤 위기>
한국일보 <“나이 들수록 불행”…한국인의 뒤틀린 행복>

제2의 중동특수 열리나 

2012년 본격적인 이란 경제제재 후 해외에 묶인 자산은 1000억 달러, 약 120조원에 이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이 당장 300억 달러(약 36조원) 이상의 원유 판매대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은 이번 제재 해제로 건설을 비롯해 자동차나 가전 등 한국 수출산업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빙현지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중동 의존이 높은 건설이 최대 수혜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신문은 “다만 기술력이 좋은 유럽·일본과 저가로 무장한 중국·인도 기업과도 경쟁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사설 제목이 “이란 제재 해제 이후의 비즈니스찬스를 놓치지 말라”였다. 

제재 당시 이란과 금융거래 시 한국은행의 허가가 필요했고, ‘비금지확인서’가 있어야 거래가 가능했다. 해외 건설 활동을 할 때는 ‘비제한 대상 공사 확인서’가 필요했으며 결제 통화로 달러를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행에 금융거래 시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으며 ‘확인서’는 폐지된다. 결제는 원화로, 향후에는 유로화 사용을 추진할 예정이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2020년까지 이란 정부는 약 214조원 규모의 대형건설 프로젝트를 발주하겠다는 방침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대규모 시장이 다시 열리는 셈”이라며 “신규 사업 발주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수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도 “175조원 이란 건설시장이 열린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저유가로 이란도 재원이 많이 부족하다 보니 수주하려는 기업의 자금 조달 능력을 더욱 꼼꼼히 볼 것”이라며 “한국 기업도 파이낸싱 계획 등을 철저히 해 수주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신문들은 기대감이 더 크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2월 말부터 장관급 한-이란 경제공동위원회를 개최해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100명의 경제사절단을 파견한다. 경제사절단은 건설, 발전 등 SOC를 중심으로 양국 간 협력 사업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란 핵협상, 북한은 어떻게?

이번 이란 핵협상의 조건은 뭐였을까? 이란의 정치는 이슬람 신정체제에 민주주의가 혼합돼 있다. 경제는 원유수출에 집중돼 있어 대외 의존성이 강하다. 즉 국제사회 제재로 경제가 파탄이 나면서 중산층을 중심으로 반정부 분위기가 나타났고, 2013년 온건 성향의 하산 로하니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란 핵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보수 언론은 이란처럼 북한도 강한 경제제재를 통해 핵포기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미·중이 이란 핵처럼 북핵 다뤘다면”에서 “이란의 핵개발 의혹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4차례에 걸쳐 경제 제재안을 결의하고 미국과 EU는 독자적 제재법을 만들어 압박했다”며 “이 제재는 대북 제재에 비해 압박의 내용과 강도가 달랐다”고 주장했다.

   
▲ 18일자 조선일보 사설
 

‘세컨더리 보이콧’을 말하는 것이다. 미국이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까지 제재해 숨통을 조이는 것을 말하는데 미국은 제재가 소용없을 경우 군사조치도 들어간다고 압박했다. 조선일보는 “북을 향해서는 이 조치가 취해진 적 없다”며 “북을 이란처럼 제재하는 것을 막고 있는 나라가 중국, 미국은 이런 중국과 정면충돌할 결의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그동안 관련 6개국이 이란 핵문제에 대해 대화와 협상을 했던 사실에 대해서는 외면했다. 현재 북한의 4차 핵실험도 북한이 미국을 향해 대화와 협상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미국은 한일 양국의 위안부 협상을 물밑에서 압박했고, 이를 계기로 한미일 공조를 강화해 오히려 신냉전 구도를 만들었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중국정부는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보고 있어 북한체제의 안정성을 해치는 양자 제재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낮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있어서 (유엔) 제재안이 100% 만족할 만하게 나올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란과 북한의 상황이 다르다는 뜻이다.  

   
▲ 18일자 국민일보 5면
 

사실 미국이 이란과 관계개선에 나선 것은 미국의 이해관계에 기반한 것이다. 미국 역시 이란의 석유시장을 탐내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이란과 손잡고 IS를 대적하려고 한다. 자연스럽게 IS에 대해 미온적이거나 우호적인 사우디와 관계가 불편해질 가능성이 있다. 사우디와 이란은 산유국으로 석유시장에서 패권을 두고 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의 모습을 보면 미국은 한미일 3국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과 북한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즉 북한은 이란과 같이 경제제재에 대한 실효성도 없으며,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수록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만 심화할 수 있다. 

미국과 대화 요구하는 북한

북한이 지난 15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밝혔듯이 북한의 요구는 미국에 대한 평화협정 요구다. 북한은 이번 핵실험에 대해 미국의 위협에 대한 ‘자위적 조치’라며 해법에 대해 “동등한 핵보유국으로서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했다. 또한 북한은 핵무기나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남한의 대북압박에도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태도다. 외무성담화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대해 “쌩뚱같은 도발”이라고 표현했다. 경향신문은 “5월 노동당 대회전까지 북한의 핵실험 정국 대응은 현재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하며 “2월 말이나 3월초에 실시될 한미 연합 훈련도 변수, 남북 군사적 긴장이 다시 고조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미국은 대북제재를 논의 중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동안 이란과 북한의 차이점은 이해하지만 국제사회와 전방위 압박을 펴는 것이 답이라고 강조해왔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27일 중국을 방문해 대북제재 동참을 설득할 예정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부장관 역시 “북한이 이란의 방향을 고려하면 가장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한국이 먼저 대화 요청해야

한겨레는 사설 “이란 제재 해제, 중동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길”에서 “경제제재 해제는 지난해 7월 미국 등 주요 6개국과 이란이 핵 협상을 최종 타결한데 따른 예정된 수순이기는 하지만 핵프로그램 폐기에 합의하고 그 이후 국제기구와 협력해 이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한 건 북한 핵문제에 직면한 우리도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했다. 

   
▲ 18일자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물론 핵물질을 농축하는 수준이던 이란과 이미 4차례나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끈질긴 협상을 통해 핵과 경제를 맞바꾼 이란 사례는 북핵 문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영호 강원대 초빙교수 역시 중앙일보 칼럼 “북한 핵, 어떻게 풀어야 하나”에서 “우리가 먼저 북한에 손 내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재와 압력만으로는 북핵 문제를 풀 수 없다”며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왈츠에 따르면 제2차 대전 이후 어떠한 외부 국가도 핵무기 개발을 결정한 국가의 핵무장을 막는 데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 상황에서 협상의 구조와 6자회담의 운영은 달라져야 한다”며 “북한 핵 능력의 지속적인 증강을 중단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북한의 핵 능력이 증대할수록 한국의 대미 안보 의존도는 더 높아질 것”이라며 “미중간 경쟁구도가 심화되면 한국은 더욱 딜레마에 처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대화가 필요하다. 박 교수는 “핵심은 북한이 체제 안전 보장에 대한 안정감을 가짐으로써 미국과 남한의 상호작용에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방어를 위한 공격을 펴는 북한에 변화의 손은 한국과 미국이 먼저 내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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