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할 때 후배가 물었다. “선배, 기자 직함 버리는 거 안 두려워요?” 박상규 기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나 그때 울었잖아. 눈물이 나더라니까요. 저도 속물적인 게 있더라고요” 라고 말했다. 그는 먹고사는 문제보다 기자직을 버리는 게 더 두려웠다고 했다. “솔직히 사회에서 기자라고 하면 잘 대접해주잖아요.” 지난해 3월, 그는 입사 10년 만에 오마이뉴스를 그만뒀다. 

언론사에 소속돼 있지 않지만 그는 기자다. 지난 1년간 포털사이트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6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한 프로젝트당 2~3개월이 걸렸고 펀딩으로 모인 금액은 2억원 가량이다. “억대연봉자가 돼서 세금만 엄청나게 내게 생겼다”며 그가 웃었다. 모금액은 취재원과 변호사와 나눠갖는다. 그래서 사실 손에 쥐는 돈은 월급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는 “더 좋은 저널리스트가 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4대문 밖에는 기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넘치고 직업 기자로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고 했다. “그 능력 좋은 선배들이 잘 쓰지도 못하는 칼럼이나 쓰고 있으니 안타깝죠. 왜 기자의 끝은 칼럼니스트고 부장이고 편집국장이냐고” 그가 묻는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한 북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박상규 기자의 스토리 펀딩 프로필
 

“박상규 기자 어떤 사람이야?”

인터뷰 전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박상규 기자에 대해 물었다. “특종도 하고 평양도 갔다오고, 할 거 다했으니 미련 없이 떠나셨을 수도”라는 답이 돌아왔다. “입사 때 영어 면접하는데, 외국인이 좋아하는 대한민국 지역이 어디냐고 물어보니까 띄엄띄엄 말하다가 갑자기 화나서 쌍욕을 했다는, 그래서 붙었다는 전설”도 있다고 했다. 

회사에 다닐 때 그는 ‘잘 나갔다’. 제대 직후 위암말기 판정을 받아 사망한 노충국씨 사건 취재가 대표적인 특종이다. 그의 기사를 시작으로 국방부 장관은 국정조사장에서 고개를 떨궜고 군은 의료체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아파트 주민들의 요구로 폐교가 결정된 공업고등학교를 살린 기사도 있다. “만약에 그게 외고나 특목고였으면 주민들이 폐교하자고 했을까요?” 

날때부터 기자를 꿈꿨을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자를 하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었는데 우연히 됐다”고 했다. “백수로 졸업하고 타워팰리스 지을 때 노가다를 했어요. 타워팰리스 그거 내가 지은거야. 그러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삼성전자 모니터 생산하는 공장에 들어갔어요. 아이고 그런데 타워팰리스보다 더 힘든거에요. 그곳도 한 1년 했나?”

 

   
▲ '가짜 3인조 살인범의 슬픔' 스토리 펀딩 화면
 

“인간이 어떻게 하루에 두 번을 보고하나”

기자는 커녕 글쓰기를 직업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만 꾸준히 글을 썼고 ‘우연한 기회에’ 오마이뉴스 공채2기로 기자가 됐다고 했다. “놀다가 기자됐네, 하는 자부심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지방대 출신에다가 기자교육도 안 받았다는 열등감이 있었어요. 성과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사람들이 기억하고 그가 기억하는 특종들은 그때 나왔다.

“그렇게 했는데 언젠가부터 열심히 안 했다”고 했다. ‘보고’ 이야기가 나왔다. “오전 8시반 까지 보고를 해야하는데 준비가 안 돼 있는거죠. 뭘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러면 대충 거짓말을 하는거에요. 그날 하루 때우기 위한, 보고를 위한 보고를 하는 거죠.” 이어 그가 되물었다. “아니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하루에 두 번을 보고하죠?”

이슈 파이팅, SNS 동향 파악, 속보 쓰기, 중장기 기획, 면 채우기, 조회 수 파악…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간다. 그는 “이런 것에 묶이게 되면 더 좋은 취재거리를 찾을 수 있는 자유로운 상상력이 봉쇄돼버린다”며 “10년차가 됐으면 내가 그동안 배웠던 것을 총동원해서 장기취재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4년 12월 퇴사 의사를 밝혔다. 자유분방한 성격 역시 한몫했다. 

   
박상규 기자. 사진=박상규 제공
 

“석궁 쏠 때까지, 서초동 법조기자들 뭐했나”

기자에게 언론사는 속보를 쓰게 하고 회사의 논조에 맞는 기사를 쓰게 하는 족쇄 이기도 하지만 ‘보호막’ 이기도 하다. 독자들이 접하기 어려운 정보도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고, 국민들의 ‘알 권리’라는 명목으로 고위 공직자나 기업인, 전문직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하다못해 언론사에 속해 있어야 보도자료라도 받을 수 있다. 

언론사를 벗어나면 어디서 기사거리를 찾고 어떻게 취재를 할 것인가. 박 기자는 사표에 “저는 서울 4대문 안에 없는,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찾아, 4대문 밖으로 나가겠습니다”라고 썼다. 가능한 일일까. 먼저 방법론적으로 전직, 현직은 크게 상관이 없다고 했다. 이어 박 기자는 “밖에 나와보니 기자들의 펜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다. 

“서초동에 법조기자가 그렇게 많은데 석궁 교수가 석궁 쏠 때까지 뭐했냐고 묻고 싶어요. 검사가 브리핑 하는 것만 기다리고 있는거에요. 그런데 내가 만나본 사람들은 석궁 교수를 부러워해요. 그 사람은 석궁이라도 쏴봤다 이거에요.” 무기수 김신혜,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가짜 살인범 3인조…어느 언론사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사건이다. 

물론 기자들의 이같은 취재행태가 기자 개인에서만 비롯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나도 언론사에 있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거에요. 사건 해결이 안 돼도 다른 뉴스를 찾아서 뭉개고 가죠. 한번 썼으니까 그만 써야지 그러죠. 그런데 그러면 안되는거거든요. 언론의 역할은 진실을 찾는거거든요”라고 말했다. 

 

   
▲ '그녀는 정말 아버지를 죽였나' 스토리 펀딩 화면
 

“카드뉴스 만들면 저널리즘 위기 사라집니까”

그는 여기서 저널리즘의 위기가 온다고 평가했다. “한국 언론은 공정성은 굉장히 강조하지만 진실을 찾으라고는 하지 않아요. 논란이다, 의혹이다 라고 퉁치고 가죠. 그리고 전부 카드뉴스나 만들고 있어요. 아니 의혹이 있으면 진실을 취재하든가. 그리고 독자들은 그런 콘텐츠를 절대 외면하지 않아요.”

‘무기수 김신혜’(그녀는 정말 아버지를 죽였나) 같은 경우도 독자들이 처음부터 호응했던 건 아니다. 댓글을 봐도 초기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왔다고 적당히 쓰지 마시고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세요. 이 글로는 알 수가 없네요” “해명이 부족하네요. 이래서야 판단이 서나” 등의 반응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 글은 2418명의 펀딩을 받아 2100만원가량을 모았다.  

그의 기사가 다음이라는 포털에 실리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포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포털에서 실제 이 기사를 접하는 독자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2980명의 참여로 5700만원 펀딩에 성공한 ‘가짜 살인범 3인조의 슬픔’ 같은 경우, 가장 높았던 조회수는 30만에 달한다. 즉 좋은 콘텐츠만 만들면 여론을 만들 수 있고 영향력을 가진다는 이야기다. 

그는 올해 취재계획도 모두 잡아놓은 상태다. 그는 이날 인터뷰 장소에도 손 한 뼘이 넘는 두께의 종이 뭉치를 들고 나타났다.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서류라고 했다.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취재할 것들이 널려 있어요. 언론사들도 오래봐야 진실이 보이는 취재, 그 길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건 기자들이 제일 잘할 수 있는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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