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퍼스트를 외친 언론들 중 진짜 ‘디지털’을 실현한 언론은 얼마나 될까. 종이신문의 미래가 어둡다는 전망을 쏟아낸 여러 보고서의 예측과는 달리 한국의 신문사 중 어떤 곳도 망하지 않았다. 보도자료를 쓰고 사실관계를 정리해 보도하는 기자들의 업무 관행도 그대로다. 혁신을 외치는 언론의 이면에는 떠난 독자들의 빈 자리만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진짜 ‘혁신’의 길은 어떤 것일까. 

미디어오늘과 커뮤니케이션북스가 주최한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카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에서 열린 ‘혁신 저널리즘 컨퍼런스: 뉴스를 넘어 저널리즘의 미래를 묻다’에서는 한국 언론의 화두인 혁신과 생존, 모바일 퍼스트의 현실과 대안을 모색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익현 지디넷미디어연구소 소장은 최근 발간된 미첼 스티븐스 뉴욕대 교수의 ‘비욘드 뉴스’에 기반해 ‘지혜의 저널리즘’을 한국 언론의 혁신과 생존 방향으로 제시했다.  

 

   
▲ 김익현 지디넷미디어연구소장. 사진=이치열 기자.

18세기 프랑스의 화가 메소니에는 기자들의 ‘어두운’ 미래를 전망하는 하나의 사례로 꼽힌다. 메소니에는 나폴레옹의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한 그림으로 유명했던 화가다. 그러나 말년과 사후에는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비욘드 뉴스’에서는 메소니에의 ‘몰락’을 디지털 시대의 기자에게 닥칠 수 있는 하나의 사례로 설명했다. 사물을 사실 그대로 정확히 묘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던 메소니에는 자신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사진기가 등장하자 화가로서의 명성을 잃게 됐다.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인터넷 상에 올라와 있는 여러 정보들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려운 위기상황에 처해있다. 사실 이외의 맥락과 지혜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 기자에게 새로이 요구되는 능력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디지털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기자들의 현실은 변한 것이 없다. 김익현 소장은 “한국의 기자들은 보도자료와 외신 단순 인용보도, 토론회와 컨퍼런스 보도, 기자 간담회, 발생기사 정도를 처리하는 ‘메소니에의 그림’ 같은 기사에만 여전히 매달려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쏟아지는 기사에는 분석과 해설, 관점과 전망을 찾아보기 어렵다. 

디지털 혁신보다도 질을 담보한 콘텐츠에 대한 고민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은 여기서 비롯된다. 단순히 선진 기술만 받아들이고 관련 사업을 펼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허상에 불과할 수 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그 이후 유통을 고민하는 것이 디지털 퍼스트 전략이 돼야 하는 것이며, 좋은 콘텐츠도 없이 디지털 기반 유통전략부터 고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국 언론들이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외쳐온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정작 언론계 현실이 그대로인 이유이기도 하다. '지혜의 저널리즘'이라는 말은 사실만 늘어놓는 보도를 넘어서서 독자에게 '지혜'를 던질 수 있는 '현명한' 보도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언론에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문제는 ‘맹목적 인용 보도 저널리즘’이라는 사례로 설명할 수 있다. 김 소장은 ‘맹목적 인용 보도 저널리즘(he said/she said journalism)’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했다. 1952년 7월4일 뉴욕타임즈 기사는 매카시즘의 태동을 알리는 유명한 기사였지만 당시 기사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모두 배제한 채 가치중립적인 공방 형식으로만 소식을 전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보도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 소장은 “여전히 언론들이 객관보도라는 형식에 집착하며, 인형을 세워놓고 뒤에서 복화술을 하듯 인용보도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전략은 짝사랑에서 벗어나야”
언론사들이 가지고 있는 디지털 전략에 대한 오해를 깨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근 페이스북 등 SNS 상에서 뉴스 콘텐츠 소비량이 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내놓은 인스턴트 아티클 서비스가 대표적 사례다. 다만 이를 두고 뉴스 콘텐츠가 매력적이어서 페이스북이 언론사를 찾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플랫폼 사업자들의 특성을 고려해 왜 그들이 언론사의 콘텐츠를 원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 조영신 SK경제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사진=이치열 기자.

조영신 SK경제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뉴스 플랫폼의 변화와 저널리즘의 도전’이라는 발제를 통해 “나(언론사)의 사랑은 그들이 어떻게 날 사랑하는지 그 방식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본적으로 페이스북은 사람들 간의 연결 고리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그러면서도 뉴스피드 공간에 광고를 게재하며 수익을 얻는다. 다만 사람들과의 관계와 소식을 전하는 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은 유지하고자 지금처럼 뉴스가 넘쳐나는 상황을 꺼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트위터도 당초 서비스의 기본 방향이었던 개인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에서 듣고 싶지 않은 다른 정보들이 넘쳐나면서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 연구위원은 “페이스북의 인스턴트 아티클은 뉴스피드 공간에 뉴스가 필요해서 고안된 것이 아니라, 뉴스피드 공간에 뉴스 콘텐츠가 무분별하게 넘쳐나는 것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뉴스가 아닌 친구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페이스북이 (언론사에) 이것저것 서비스를 제공해준다고 생각하며 인스턴트 아티클에 진입할때의 전략과 언론사를 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인스턴트 아티클을 고민하는 전략은 출발부터 다를 것이다. 매력이 사라지고 나면 그들은 (언론사를)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사들의 혁신은 아직 쇼에 불과하다”
국내 언론사 중 가장 먼저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 파트너로 선정된 SBS는 조금 앞선 전략들을 실현해가고 있을까. 심석태 SBS 뉴미디어실 실장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심 실장은 “새로운 기술은 무조건 도입해야 한다는 기술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될 우려가 있다. 도입해도 잘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지 않아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 심석태 SBS 뉴미디어부 부장. 사진=이치열 기자.

 

심 실장은 “SBS 뿐만아니라 한국 언론들 중 실제로 의미있는 변화를 끌어낸 곳은 거의 없다. 디지털 혁신이 외피를 변화하기 위한 논의에 그칠 뿐 저널리즘 자체에 대한 논의로는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요즘 언론사들의 고민은 ‘왜 우리 콘텐츠를 안보는지 모르겠다’지만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예전에도 보지 않았다. 좋은 콘텐츠가 아니어도 광고를 받아 언론사가 유지될 수 있는 비즈니스 환경 때문에 관성에 젖어있었기 때문이다. 위기를 느낀다고들 하지만 언론사들의 혁신은 아직 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회사 조직 전체를 바꾸는 ‘진짜 혁신’을 하고 있는 언론사는 드물기 때문이다. 심 실장은 “뉴미디어국을 운영한다해도 일부 언론에서는 인사 적체 해소용으로만 뉴미디어국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언론 현장에서는 뉴미디어 전문가도 없을뿐더러 디자이너나 PD 등 디지털 전문가와 기자 등 편집국 인력이 동등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 제대로 된 혁신을 위한 조직을 구성한 언론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심 실장은 몇 명의 인원과 부서만이 아닌 회사 전체가 변화를 모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대표적인 사례다. 심 실장은 “변화가 오겠지 하고 가만히 있으면 변화는 없다. 누구도 답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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