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저널리즘'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기자회견에서 미리 짜여진 질문지와 순서대로 기자들은 묻고 대통령이 답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한바탕 벌어진 '쇼'에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이참에 기자회견 형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이 같은 비판과 지적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TV로 볼 수 없었던 기자회견 뒷얘기를 들어봤다. 

- 미리 짜여진 순서대로 질문자가 정해졌고 각본대로 진행됐다. 그런데 사회를 본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질문할 기자'를 물으면 선정된 질문자가 아닌 다른 기자들이 손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미스터리한 모습이다. 역대 정권부터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첫 질문은 청와대 출입기자단 총간사가 해왔다. 관례에 따라 서울신문 이지운 기자는 첫 질문자로 나섰다. 그런데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질문한 기자가 있냐’고 묻자 10여명의 기자들이 일제히 경쟁적으로 손을 들었다. 다음 질문에서도 질문자로 선정되지 않거나 자기 순서가 아닌 기자들이 정연국 대변인의 '질문할 기자'라는 말에 손을 들었다. 마치 질문 내용과 순서를 정하지 않고 자유로운 기자회견인 듯한 장면이 연출됐다. 

청와대 기자들에 따르면 청와대를 포함해 기자단 내부에서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합'을 맞춘 것으로 추정된다. 질문자로 선정되지 못한 청와대 기자들도 기자회견 뒷편에서 이 같은 장면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의아한 일이 있었다. 12개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는 동안 요네무라 코이치 마이니치 신문 서울지국장은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손을 들었다. 요네무라 지국장은 12번째 질문자로 선정돼 있었다. 한두번 손을 들었다면 이해되지만 12번에 걸쳐 손을 든 것은 어떤 행위로 이해해야 할까. 요네무라 지국장은 자신이 질문자였다는 것은 통보받았지만 자신의 순서를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기자회견 현장을 지켜봤던 청와대 출입 한 기자의 증언이다. 

- 왜 기자들은 박 대통령의 답변에 재질문하지 않았나?

사실과 다르다. 딱 한번 박 대통령의 불충분한 답변에 재차 묻는 질문이 나왔다. 세번째 질문자로 나선 최재혁 조선일보 기자는 위안부 협상 문제를 지적하면서 "대통령이 (피해 할머니를)직접 만나 이해를 구할 계획은 없나"라고 물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확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열번째 질문자로 나선 최문선 한국일보 기자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만날 계획이 있나. 만난다면 언제 만날 계획인가"라고 재차 질문했다. 미리 짜놓은 질문지에는 없었던 내용이다.

청와대 기자 사이에서 다음 기자회견을 할 때 대통령 답변이 불충분할 경우 다음 질문자가 보충 질문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 질문자와 순서를 정하지 않은 대통령 기자회견은 불가능한가?

청와대 기자들은 국민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최대한 출입 기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순서와 질문 내용을 짤 수 밖에 없는 일종의 ‘규칙’이라는 입장이다. 

청와대 출입 기자만 100명이 넘는다. 자유 질의응답 형식으로 질문을 받는다면 경쟁을 벌여야 한다. 또한 질문 선정 권한은 청와대가 갖고 있는데 특정 청와대 인사와 가까운 기자와 정권에 우호적인 매체 소속의 기자들만 질문할 권리를 갖게 되는 위험성이 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판을 듣지만 청와대 출입의 여건을 감안하면 '규칙'을 정하는 게 여러모로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13명의 기자가 질문자로 선정됐는데 질문은 한 기자당 3개꼴이었다. 기자단은 청와대 출입 모든 매체로부터 질문을 받았고, 질문 내용을 주제별로 묶어 13명 기자의 질문에 반영했다. 되도록 많은 질문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얘기다. 

   
▲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기자회견 모습. ⓒ청와대
 

이번에 질문자로 선정되지 못한 기자는 다음 대통령 기자회견 질문자로 나선다. 이들은 질의응답이 자유로운 형식으로 바뀌면 진보성향 매체 기자들이 질문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박탈당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유 질의응답을 통해 기자들이 과감한 질문을 던지고 대통령이 답하길 바라는 것이 국민 여론이다. 최소한 추가 질문을 하고 부족한 대통령의 답변을 추궁하는 기회는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일본인이 담합(談合)을 ´당고(Dang Go, 상의하다는 뜻의 일본말)´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해 생긴 ‘당꼬’라는 말은 기자들 사이에서 흔히 쓰인다. 현재 대통령 기자회견이 기자들의 ‘당꼬’에 따라 청와대와 기지들의 편의만 고려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비판을 새겨 들어야 한다. 

다음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또다시 한바탕 쇼가 벌어질까. 아니면 진짜 난장판을 기대해도 되는걸까. 시나리오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학계에서 다루는 저널리즘 유형이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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