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해 벽두의 스포츠계 핫 이슈는 역도 국가대표 사재혁 선수의 폭력이었다. 사재혁 선수가 지난달 31일 춘천의 한 술집에서 후배 황우만 선수를 폭행하여 왼쪽 눈 밑의 뼈가 부러지는 등 그에게 전치 6주의 상해를 입혔다는 사실은 사회와 스포츠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국가대표 훈련 중 또는 선수촌이 아닌 개인 생활 영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폭행의 의도 내지 경위를 보면 사재혁 선수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건이었다. 피해자 황우만 선수에게 이른바 ‘맞아도 싸다’거나 ‘맞을 짓을 했다’는 일말의 사정도 보이지 않기에 가해자 사재혁 선수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대한역도연맹도 ‘사재혁 폭력’사건의 심각성을 알고 발빠르게 징계절차에 착수했다. 지난 4일 선수 및 지도자의 권익침해(폭력 및 성폭력)의 조사 및 구제와 가해자에 대한 징계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선수위원회를 열고 사재혁 선수에게 자격정지 10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징계가 확정되면 사재혁 선수는 자격정지 기간 동안 선수 뿐 아니라 지도자로서도 활동할 수 없게 된다. 사재혁 선수의 폭행치상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 기소가 이뤄지고 형사재판에서 금고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인복지사업운영규정’ 제19조 및 제35조에 따라서 사재혁 선수는 경기력향상연금 월정금을 수령할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위 규정 제19조는 이와 함께 연금지급대상자가 7개월 이상 소재불명이거나 국적을 상실한 경우에도 연금수령자격을 상실토록 정하고 있다).

사재혁 선수의 1차 폭행에 대한 선수위원회 조사구제 절차가 취해지지 않은 이유는?

‘사재혁 폭력’사건과 관련하여 알려진 사실을 접하면서 나는 피해자 황우만 선수에게도 신체적 정신적 상해를 입히지 않을 뿐 아니라 가해자 사재혁 선수에게도 위와 같이 책임을 피할 수 없는 폭력 행위를 행사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러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점에 아쉬울 따름이다. 그러한 예방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었고 이에 따라 대한역도연맹이 그에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면 이는 또 다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선수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제도적 시스템의 문제로 봐야 할 이유이다.

   
▲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재혁은 지난달 후배를 폭행한 사실이 공개되며 자격정지 10년의 중징계와 함께 금고 이상의 실형이 확정될 경우 2008년 9월부터 받았던 연금도 끊기게 됐다. ⓒ 노컷뉴스
 

확인된 사실관계에 따르면 이번 사재혁 폭력 사건(2차 폭행이라 하겠다)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는 단순(?)폭행 사건(1차 폭행이라 하겠다)이 있었다. 작년 2월 태릉선수촌에서 사재혁 선수가 태도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황우만 선수의 뺨을 두어차례 때렸다는 것이다. 사재혁 선수는 경찰 조사에서 “작년 2월의 폭행과 관련하여 얘기를 하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우발적으로 폭행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황우만 선수가 뺨을 맞은 사실을 다른 선수들에게 얘기했다는 점이 앙금의 씨앗이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작년 2월에 사재혁 선수가 황우만 선수의 뺨을 두어차례 때린 1차 폭행 사건이 태릉선수촌 또는 대한역도연맹에 알려지지 않았고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점에 유의해야 한다. 만약에 1차 폭행의 사실이 대한역도연맹에 알려졌고 이에 따라 선수위원회 또는 연맹의 조사에 이은 적절한 조치(사안의 성격상 경고의 징계도 적절하였을 것으로 보인다)가 취해지고 사재혁 선수와 황우만 선수에 대한 관계 개선 등의 노력이 있었다면 2차 폭행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본다. 사재혁 폭력 사건에서는 의미가 적은 결과론적 얘기이지만 이후에 이와 같은 사건을 예방하는데 있어서는 의미있는 후회일 수 있다.

사소한 폭행이라도 선수위원회 규정에 따른 즉각적인 조사 및 구제 조치가 이뤄져야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규정’에 따라 폭력이나 성폭력을 당한 자 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는 실명으로 대한체육회, 시․도체육회, 가맹단체에 그 내용을 진정할 수 있고, 대한체육회, 가맹단체의 각 선수위원회는 진정이 없는 경우에도 권익 침해(폭력․성폭력행위)가 있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그 내용이 중대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이를 직권으로 조사하여 조치할 수 있다(제16조). 이와 함께 대한체육회와 가맹단체는 ‘선수고충처리센터’에 권익침해 사실을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사재혁 선수의 1차 폭행과 관련하여 이미 다른 선수들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는데, 그렇다면 대한역도연맹 측도 사재혁 선수의 1차 폭행 사건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사재혁 선수의 1차 폭행에 대하여 위와 같은 대응 조치를 취했어야 옳았다. 리우올림픽 메달 기대주 사재혁 선수에 대한 선수위원회의 조사 및 징계 절차가 진행되고 그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이 대한역도연맹으로서는 원하지 않은 일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 상황이 돼버렸다.

반폭력 시스템이 잘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선수 선후배 또는 동료간 폭력이 발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극약(?) 처방이 필요하지 않을까? 선후배 관계 불문하고 선수간에는 존댓말을 쓰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존댓말을 쓰도록 하면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상호간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늘어 폭력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 및 사례도 있다. 2013. 5.경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학생들의 평화롭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위해 학교의 구성원 모두가 존댓말로 대화하도록 한 전주서일초등학교의 실제 사례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어쩌면 제도적 반폭력 시스템보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폭력 발생을 막을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소/개>
필자는 운동선수 출신의 변호사이다. 개인적‧직업적으로 스포츠‧엔터테인먼트‧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우리 스포츠‧엔터테인먼트‧문화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제도적 발전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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