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위안부 합의를 두고 후폭풍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합의문이 공개된 이후 반발하던 여론이 ‘재협상 요구’로 모아지는 모양새다.

지난 28일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 관련 합의문을 공개했다. 일본정부의 책임 통감, 아베 총리의 사과 표명,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피해자 지원 재단에 일본정부가 자금을 내고 양국이 협력해 사업을 한다는 내용 등이 골자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통감한다는 책임이 ‘법적’ 책임이 아니라는 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이라고 명시해 향후 추가적인 문제제기를 막았다는 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논의도 없이 합의했다는 점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합의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이 잃은 건 10억엔 뿐”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자연스레 반대 목소리가 ‘재협상’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30일 평화나비 대전 행동 등 대전시민단체들은 대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면 재협상을 촉구했고, 같은날 부산여성단체연합은 성명서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협상해야한다”고 밝혔다.

   
▲ 윤병세 외교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국제회의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 내용 기자회견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정치권에서도 재협상 요구가 이어진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1일 오전 굴욕적인 일본군 위안부 협상 규탄대회에서 “우리는 이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이 합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우리의 주권과 국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조약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며 “따라서 우리는 이 합의에 반대하며 무효임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일동은 31일 결의문을 통해 “한-일 양국 정부는 전쟁 성범죄를 눈감고, 인권과 평화를 위협하는 반인권‧반평화 합의를 폐기하고, 즉각 재협상에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합의 직후 “환영한다”는 입장을 취했던 새누리당에서도 정부의 이번 합의가 미흡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30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합의과정에서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소통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해결되었다고 받아들일 때 해결됐다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의 김을동 최고위원은 “일본군의 위안부 문제가 현재 협상타결 됐다고 하지만, 아직은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이번 회담결과를 일본 측의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이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이행과정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력을 담아내야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번 합의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이다. 강제력을 지닌 국가 간 조약으로 본다면 문재인 대표가 언급한대로 국회 동의 등 조약 체결 절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이런 절차를 구하지 않은 점으로 볼 때 이번 합의에 강제력이 있는 ‘조약’의 성격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국제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3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조약은 서면의 형식으로 체결된 나라와 나라 사이의 합의인데, 이런 합의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선언, 언약이라고 볼 수 있다”며 “조약 체결 전단계로서의 ‘협상’이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기에 재협상이라는 표현도 맞지 않다. ‘철회’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30일 기자회견에서 “한일 양국이 발표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합의’는 그 형식상 양국 정부가 회담 결과를 구두 발표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우리 당은 이 합의와 관련하여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 집권 시에도 어떠한 기속을 받지 않음을 확인하고, 정치‧외교적으로도 책임이 없음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강제성이 없는 조약이기에 합의를 번복하는 것이 더 자유로워 보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프레임 전환’이다. 송기호 변호사는 “정치적인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그간 우리 정부는 성노예 범죄를 책임지라며 일본을 압박하는 입장을 취해 왔는데, 합의 이후 자칫 일본이 우리에게 ‘신의, 약속을 지키라’며 압박하는 식으로 문제의 방향이 전환되어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은 투트랙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선 재협상 요구는 거부하고 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31일 춘추관에서 발표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정부가 최선을 다한 결과에 대해 무효와 수용 불가만 주장한다면, 앞으로 어떤 정부도 이런 까다로운 문제에는 손을 놓게 될 것이며, 민간단체나 일부 반대하시는 분들이 주장하는 대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 30일 열린 수요집회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한편으로 정부는 여론 악화에 대해 여론의 비판 대상을 한국 정부에서 일본으로 트는 전략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3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일본 측의 언행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와 언론이 소녀상 철거 등을 언급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외교부는 30일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에서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은 양측 모두에게 해당되는 상호주의적인 것으로, 일본으로서도 금번 합의 내용에 위반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분명히 내포하고 있다”며 “국제사회에서의 상호 비난‧비방 자제도 양측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며 일본 정부가 진정성 있는 자세로 합의를 충실히 이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정부의 태도와는 별개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가 ‘재협상 요구’를 모아내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3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피해자가 원치 않으니 당연히 이번 합의에 대해 원천무효를 선언해야 하며 더 나아가 재협상으로 나가야한다. 수요집회 등을 통해 이런 요구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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