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한·일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안을 도출한 것에 대해 지상파 3사는 과거보다 진전된 합의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양국 정부가 왜 연내 타결에 집착하며 서둘러 위안부 문제를 ‘종결’하려 했는지에 대한 분석과 이번 합의가 가져올 부정적 파장에 대한 전망은 충분히 짚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 언론들은 “박근혜 정부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서둘러 양보한 것”이라는 분석을 전하며 “위안부 할머니들은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의 기자회견에서 일본 측의 사과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을 것”이고 지적했다. 

또한 우리 언론 보도에선 정부가 이번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조차 묻지 않았음에도 이에 대한 추궁이나 해명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번 합의로 “다음 세대에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은 진정어린 ‘반성’보다는 정치적 ‘해결’에 방점을 둔 것임에도 “한일 양국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로 향하는 물꼬를 튼 것(SBS)”이라고 평가했다. 

   
▲ 28일 SBS 8뉴스 리포트 갈무리.
 

특히 SBS는 ‘8뉴스’ 리포트 “절박함으로 합의한 한·일… ‘더 나은 미래로’”에서 “한·일 수교 50년,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전격적으로 합의에 이른 건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 한·일 양국이 더는 과거에 머물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라며 “우리 측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라는 요구 대신 ‘창조적 대안’이란 용어로 유연성을 발휘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정부의 입장을 대변했다. 

SBS는 또 이번 합의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일본과 관계 정상화로 동북아 질서의 균형추 역할 가능 △투자와 교역, 한류 활성화, 관광객 증가 △일본의 전범 국가 오명 해소와 중국과 위안부 협상에 돌파구 기회 △북핵문제 등 안보분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세히 거론했다. 

반면 해결 과제에 대해선 “일본의 성실한 후속 조치가 뒤따르고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우리 국민감정에 반하는 언행을 삼가야 한다는 게 이번 합의의 가치를 이어가는 대전제”라고만 덧붙였다. 

KBS는 정부가 ‘졸속 합의’라는 비판에도 연내 타결을 고집하며 합의안 도출을 밀어붙인 배경은 생략한 채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일본을 꾸준히 압박해 온 점도 도움이 됐다”면서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양국 정상이 새로운 미래를 위해 국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내린 결단이 어려워만 보이던 극적 연내 타결을 이끌어냈다”고 치켜세웠다. 

   
▲ 28일 KBS 뉴스9 리포트 갈무리.
 

그나마 MBC는 일본 측이 협상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데에는 미국 측의 압박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MBC는 뉴스데스크에서 “군사 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선 한·일 두 나라의 협력이 절실한 미국이 보이지 않은 손 역할을 하지 않았냐는 관측”이라며 “내년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총리로선 한일 수교 50주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올해 안에 해결하는 것이 부담을 더는 길이라는 계산이 섰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MBC는 이날 회담 결과에 대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반응을 전하는 리포트에서 “기자회견을 지켜본 할머니들은 오늘 회담 결과에 대체로 불만족스러워 하셨지만 일부에서는 정부의 뜻에 따르겠다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전하면서 협상 과정에서 양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전혀 접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보도하지 않았다. 

KBS와 SBS는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목소리를 전하긴 했지만, 왜 당사자나 피해자 지원 단체와 상의도 없이 서둘러 회담을 추진했는지에 대한 분석도, 정부의 해명도 담아내지 못했다.

   
▲ 28일 JTBC 뉴스룸 리포트 갈무리.
 

이에 비해 종합편성채널인 JTBC는 ‘뉴스룸’에서 “예상보다 빠른 한·일 ‘위안부 합의’ 배경 살펴보니…” 리포트를 통해 양국이 연내 타결을 서두른 이유에 대해 “아베 정부는 그동안 미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의 인권 개선 요구를 줄기차게 받아와 이번 기회에 이런 부담을 털고 가자는 계산”이라고 설명했다. 

JTBC는 “특히 전쟁이 가능한 평화헌법이나 자위대의 활동 반경을 정할 때 미국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압박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정부가 외교적 성과에 치중한 나머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는 비난 여론이 형성될 경우 후폭풍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JTBC 역시 이번 합의를 위해 할머니들과 사전에 논의조차 없었던 이유에 대한 정부 입장을 듣지는 못 했지만, 피해 당사자를 제외하고 양국 정부가 졸속으로 합의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일본 정부가 교묘히 법적 책임을 피해 가려다 보니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 중앙일보 28일자 1면.
 

한편 중앙일보는 지난 28일 “정부 ‘한국 합의문안엔 소녀상 없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단독’이라고 보도했지만, 29일 합의문엔 “소녀상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해 적절히 해결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결국 오보였음이 판명 났다.

중앙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앞두고 정부가 소녀상 이전 문제를 제외한 합의문(안)을 마련했다고 정부 고위 관계자가 말했다”며 “이 관계자는 ‘특히 합의문안에는 일본 언론이 보도해 논란이 되고 있는 소녀상 이전 문제는 빠져 있다. 협상에서 일본 측이 이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우리는 일축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지상파 뉴스는 소녀상 이전 문제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양국 정부의 세심한 설득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KBS)”, “소녀상 이전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관련 단체와 협의하기로 한 것도 일본의 정치적 성과(SBS)”라는 등 국민 여론과 피해자들의 강한 반발과는 괴리된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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