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자·마약·주가조작까지…재벌가 끝없는 스캔들(연합뉴스)”

“대기업 '금수저' 대폭 승진…세대교체 서막 올랐다(SBS CNBC)”

2015년 12월30일 비슷한 시간에 언론의 주요기사로 올라온 재벌가의 상반된 헤드라인이다. 연말 재벌이 또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재벌2,3세들의 불법, 불륜이 반복되지만 이들에게 경영세습은 ‘대폭 승진’형식으로 전통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작년 이맘때는 ‘땅콩회항’ 사건으로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부적절한 행동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잊을만하니 이제 2015년판 재벌 2∼3세들의 오만한 행동이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이번에는 몽고식품 김만식 회장이 바톤을 이어받아 폭행과 욕설, 해고로 직원들을 인간이하 취급을 했다고 한다. 사사로운 이혼을 일방적으로 언론사를 통해 비상식적으로 발표한 최태원 SK 회장의 행태도 논란거리다. 불륜으로 혼외자까지 두면서 이중생활을 해오다 특혜사면으로 풀려나온지 얼마되지않아 자신의 이혼요구를 공론화하는 방식은 또 다른 형태의 재벌급 오만이다.

왜 해마다 재벌 2∼3세들의 부도덕한 행태가 반복되는 것일까. ‘노블리스 오블리주’ (고귀한 책무)는 처음부터 기대하기 힘들어도 사회적 지탄이 될 정도로 수준이하의 모습이다. 여기에는 적어도 태생적, 제도적, 문화적 요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먼저 태생적 원인.

금수저로 태어난 것이 역설적으로 이미 불행을 예고하는 것이다. 엄청난 부와 지위는 분명히 행운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천신만고 끝에 이룩한 부와 지위는 그냥 된 것이 아니다. 창업주는 실패와 좌절, 눈물 등 그만한 댓가를 치루며 성취했다. 이런 과정에서 참모의 중요성, 직원들의 마음을 잡는 법, 신의를 쌓은 법 등 필요한 리더십을 키우는 혹독한 수련과정이 있었다. 재벌 2∼3세들은 이런 중요한 과정이 생략된 채 20∼30대에 이미 이사, 본부장, 부사장 등 주요 임원이 됐다. 어리석은 창업주들은 ‘믿을사람은 핏줄 밖에 없다’며 자식들을 경영에 내세워 세습하는 식이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 연합뉴스
 

절박한 삶, 짓밟혀보거나 실패한 경험이 없는 금수저들은 ‘패배의 중요성, 그 가치’를 모른다. 모두들 자기 앞에만 오면 머리를 조아리기 때문에 ‘충신, 간신’ 구분할 수 있는 눈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맘에 들지않으면 언제든지 바꿔버릴 수 있기때문에 직원의 중요성을 모른다. 몽고식품 김 회장의 막말이나 욕설 폭행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과 같은 것은 없다.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기업운영에 지장을 받을 때 형식적인 사과는 ‘할 수 없이’ 하는 척 한다. 조현아 때도 아버지가 나와 ‘제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 운운 하며 대리사과했다. 이런 사과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최 회장은 적반하장격의 이혼 신청을 법원이 아닌 언론사에 했다. 재벌 2∼3세들이나 생각해낼 수 있는 해괴한 방식이다.

제도적 원인은 금수저들의 불법, 탈법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가 비정상적으로 관대하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2005년에 배임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지만 2008년에 사면, 복권됐다. 최 회장은 2013년에 다시 회사돈 636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법정구속됐다. 동생 최재원 부회장은 19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심에서 법정구속됐다. 재판부는 이들 금수저 형제들을 향해 ‘거지’라고 일갈했다. 대법원은 이들에게 내려진 4년형을 확정했다. 형제가 동시에 감방에 갔다고 난리가 났다. 그러나 최 회장은 또 다시 2015년 8월 사면 특혜를 받았다. 재벌 2∼3세들은 실형선고 받기도 쉽지않지만 형기를 제대로 채우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한국의 법과 제도는 재벌앞에서 흐물흐물하다.

김 명예회장에게 모욕죄와 폭행죄로 고소하면 법원에서 제대로 처벌할까. ‘전관예우’에 빛나는 값비싼 변호사를 사면, 검찰수사단계에서부터 난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회사돈 수백억원씩 횡령해도 집행유예나 최악의 경우 2∼3년 만에 나오니 이들의 준법의식은 일반인과 같을 수가 없다. 그렇게 요란하게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조현아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우리 법원은 간단하게 풀어주지 않던가. 한국 사법제도의 실패를 금수저들이 다양한 사례에서 입증시키고 있다.

문화적 원인으로는 한국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명제가 존재하기 힘든 계급사회라는 점이다. 돈이나 지위,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않은 자에 대해서는 사회적 대우가 다른 것은 한국적 문화의 현실이다. 특권, 특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사람위에 사람있고 사람밑에 사람있는 법’이다. 이런 사회를 후진사회라고 부른다. 식당에서 백화점에서 거리에서 갑질하는 사회, 특혜를 요구하는 사회에는 불평등이 문화로 정착되는 법이다. 잘못된 문화는 전파력이 빠르다. 어느듯 일반 피해자들이 가해자 노릇을 하며 잘못된 문화를 확산, 전파하게 된다.

황금만능주의 사회문화에서 재벌의 힘은 너무 강하다. 돈이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 될 것도 안되게 할 수 있는 사회. 돈이 신격화된 사회에서 재벌숭배는 문화와 전통으로 정착됐다. 그들의 반복되는 무례한 행태는 문화로 전승되고 있는 모습이다. ‘사람을 폭행하고도 맷값이라며 돈을 던져도 겨우 처벌시늉이나 하는 것이 우리 사회 천박한 자본주의문화의 한 단면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2015년 SNS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금수저·흙수저(1위·19만7848건)다. 헬(hell·지옥)과 조선(朝鮮)을 합친 헬조선(2위·15만7537건)이 둘째였다.”고 한다. 이는 돈이 인간의 계층을 가르는 절대 기준이 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웅변한다.

소시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의와 윤리를 찾는 것은 공허하다. 부도덕한 자격없는 회장들이 직원을 멸시하고 회사를 몰락시키는 법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의하면, 세계 500대 기업의 평균수명이 50여년이지만 우리나라 대기업의 수명은 그 절반에 해당하는 27년이라고 한다. 일본은 200년 넘는 장수기업이 4천개에 달하며 전 세계 장수기업 7212개사의 44.6%로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장수기업의 핵심은 기술력과 직원존중문화라고 한다. 직원 존중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같은 인간으로 인정하는 것조차 금수저들에게는 버겁게 느껴진다. "보장된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의 권리는 보호하지 않는다"(예링)는 말은 법치사회에서 하는 소리다. ‘인치사회’ 한국을 ‘법치사회’로 바꾸는데는 피해자들이 먼저 그리고 꾸준히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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