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사진부터 보고 얘기하자. 지난 26일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 온라인 사이트 메인 기사를 캡처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기상 이변’ 현상을 다룬 내러티브 기사다. 분량은 약 20매로 관련 사진 2장과 1건의 동영상, 1건의 광고 배너 등을 기사 곳곳에 배치했다.

제프 베조스가 2013년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후 이 매체에서 일어난 도드라진 변화다. 베조스는 세계 최초의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다. 그의 인수 후 워싱턴포스트는 사진과 영상 등 시각적 자료를 활용해 콘텐츠(기사 보도) 상품 가치를 끌어올리는 전략을 하고 있다. 베조스의 정보기술(IT) 경영 감각과 워싱턴포스트의 그간 축적한 보도 경쟁력이 결합해 빚는 시너지 효과라는 평가다.

성과는 ‘수치’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0월 ~ 11월  ‘월간 온라인 수 방문자 수’ 경쟁에서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즈를 제치는 기염을 토했다. 그간 방문자 수 경쟁에서 뉴욕타임즈에 죽을 쑤던 워싱턴포스트였다. 인수 무렵인 2013년 8월만 해도 워싱턴포스트의 순 방문자수는 2600만 명에 머물렀으나 지난달엔 7200만 명으로 늘어났다. 2년 3개월 만에 약 177% 증가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 온라인 사이트 메인.
 

물론 이 같은 성과의 스포트라이트는 ‘베조스’에 집중되고 있다. 전기공학도 출신인 그가 공격적인 저가 마케팅을 내세워 아마존의 대성공을 이뤄낸 건 살아있는 전설처럼 알려지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해 기준 DVD 음반시장 점유율 30%, 전자책시장 점유율 65%를 기록하며 관련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경영 능력이 2년 6개월도 안 돼 언론사 하나 살릴 정도일 줄 확신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다. 원래 언론과 기업은 공생 관계였다. 영미 주요 언론사의 경우 수익 구조의 상당 부분이 국내와 마찬가지로 기업 광고에 의존하고 있다. 언론은 기업 광고를 지면에 싣거나 '대가성으로' 보도 자료를 기사화하며 사실상 기업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동시에 기업 비리를 캐내 그 보도 의도가 어쨌든 사회 정의와 공공성 확립에 기여했다.

그런데 공생이라는 ‘대등한 관계’에 균열의 기미를 보이는 것이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삼는 사기업의 CEO가 언론사 사주 보다 저널리즘 트렌드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언론사 사주라고 하면 사실상 '경영인'이지만 '언론인'으로 분류됐다. 나름 언론의 근본 가치인 공익성‧공공성을 생각하는 이로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워싱턴포스트도 마찬가지다. 1930년대부터 70여년 가까이 워싱턴포스트 경영을 맡은 ‘마이어’-그레이엄‘ 가문은 신문쟁이 집안의 대명사였다. 제1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총재를 역임했던 유진 마이어가 1933년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후 그의 사위인 필립 그레이엄이 1946년 경영권을 승계받아 이 가문을 가업을 이어갔다.

이제 언론을 잘 이해하고 언론을 잘 생각하는 경영인 보다 수익 창출에 감각 있는 일반 기업 CEO가 우월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도 이달 초 홍콩 주요 신문사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인수키로 했다. 알리바바의 창업자는 중국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마윈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일차적으로 언론에서 찾을 수 있다. 모바일 웹 시대를 맞아 ‘디지털 퍼스트’를 선언하고 변화를 모색했지만 근본적으로 기존의 기사 생산∙유통 방식을 고수했다. 언론인이 정보 생산∙유통을 선점한다고 믿던 시대 방식이었다. 한마디로 자사의 컨텐츠를 도래한 새 시대에 둔감할 정도로 맹신했던 것이다.

문제는 읽을거리만 아니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볼거리’가 얼마나 풍성하냐다. 지금 파이낸셜타임즈 온라인 판을 살펴봐도 느낄 수 있다. 주관적인 감상평임을 전제하고 말하지만, 인포그래픽과 동영상 등 시각 자료가 다른 경쟁사에 비해 돋보이지 않는다.

앞서 사례로 든 워싱턴포스트 등과 비교할 만하다. 글로벌 언론사의 '온라인 순 방문자 수'에서 선두 그룹을 형성하는 영국 일간 가디언과도 비교해보자(사진 참조). 파이낸셜타임즈도 올해 일본 미디어 기업에 매각됐다. 그들의 디지털 대응 전략이 수익 창출 측면에서 성공적이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파이낸셜타임즈에서 선보인 기사 그래픽.
 

기업 또는 기업인이 언론을 품는 일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을 것이다. 아마존이 인수한 워싱턴포스트의 경우가 ‘현재까지는’ 긍정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지 관건이다.

다음 질문을 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아마존에서, 베조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과거 '워터게이트 보도' 등을 통해 최고 권력과 맞서 비리를 폭로하던 정론직필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가디언에서 선보이는 인포그래픽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글로벌 미디어 그룹의 경우가 그 대답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호주 태생의 언론 재벌 머독은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보수 성향의 방송사 폭스(Fox)뉴스, 영국 대중지 더 선· 보수 성향의 일간지 더 타임즈 등 세계 주요 언론사를 거느리고 있다. 보도∙출판 외에도 영화 산업에까지 문어발식으로 영역을 확대해 언론사라기보다 사기업에 가깝다.

공익성 측면에서는 어떠하였는가? 미국과 유럽 등 서방에서 ‘반 이슬람 테러’의 주요 원인으로 머독이 소유한 폭스 뉴스의 편향 보도를 지목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폭스는 2000년대 초 미국-이라크 전쟁을 철저하게 애국 우파적인 관점에서 보도했다.  

가령 미국 성조기 아이콘을 화면에 고정적으로 배치하고 방송 앵커들은 미국군들을 호명할 때 '우리 해방군' 등의 단어를 사용해 미국 시청자의 국수주의를 자극했다. 폭스는 ‘이라크 전 국면’에서 CNN를 비롯한 다른 쟁쟁한 경쟁사를 제치고 연일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그뿐인가? 머독이 영국에서 소유한 언론사들은 '킹메이커'였다. 대표적으로 더선이 기사를 통해 공개적인 지지를 보낸 정당은 총선에서 집권당이 됐고 총리를 배출했다. 머독의 정치적 지향점에 따라 논조가 철새처럼 이동한 건 말할 것도 없다. ‘돈독이 올랐다’고 머독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머독 또한 1960년대 과감하고 단순한 편집으로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의 새로운 수익 창출 대안을 제시한 인물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머독과 베조스는 다르다고. 베조스가 뛰어난 경영인이 분명하지만, 머독 못지않은 '냉혹한' 경영인인 것도 틀림없다. 아마존의 독과점 현상과 이를 공고히 하려는 베조스의 경영 행보를 봐도 알 수 있다.

아마존은 2007년 전자책 서비스 '킨들'을 출시하면서 모든 전자책을 9달러99센트에 판매하기로 했다. 양장본 종이책 가격의 3분의1수준이다. 자신의 '공격적인 저가 마케팅 전략'을 고수하기 위해 산업 생태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치였다.

이뿐인가? 아마존 배송센터 직원들은 배송 작업을 위해 매일 24km정도를 걸을 정도로 혹사당하고 있다. 또 이들은 1시간에 무려 200개 이상의 물품을 취급한다. 프리젠테이션 하는 직원에게 "당신은 왜 내 인생을 낭비하게 하는 거요?"라고 모욕을 주는 그는 사실 언론 보도의 가치인 공공성과 무관한 인물처럼 보인다.

어쩌면 워싱턴포스트의 미래는 국내 신문사에 있을지 모르겠다. 국내 거의 모든 신문사가 '기업 광고'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주 마인드도 '기업화'됐다. 광고주 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또는 광고주를 압박하느라 기사 논조가 바뀌는 건, 이 바닥에 있는 언론인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무엇보다 사주의 친인척 비리를 캤다 해당 보도를 담당한 데스크가 보복성 인사를 당한 사례도 올해 발생했다.

베조스가 비리 혐의를 받는다면 워싱턴포스트는 공익성을 위해 그것을 보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13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워싱턴포스트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숙제로 느껴진다. 중요한 건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개인 돈으로 샀다는 것이다. '그의 회사'란 말은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워싱턴포스트의 지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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