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과잉시대입니다. 뉴스는 넘쳐나지만 이를 소화할 방법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미디어오늘이 넘쳐나는 뉴스에 체하지 않고 뉴스를 꼭꼭 씹어 소화시킬 수 있도록 뉴스 읽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뉴스 파파라치는 전체 6부, 총 25회로 구성됩니다. 3부 ‘How to read 뉴스 초급편’에서 소개할 4개의 글에서는 텍스트를 통해 뉴스를 읽는 법에 대해 소개합니다.

뉴스는 사실이 아니라 재구성된 사실이다

언론, 미디어는 객관적일까?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객관적이어야만 할까? 이 질문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언론계의 난제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언론에 대한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팩트’를 내세우기에 ‘언론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명제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언론이 사실관계가 명확한 정보를 기사로 써야하며 팩트를 추구해야한다는 말과 객관성은 다르다. 팩트는 말 그대로 어떤 사건에 대한 ‘5w1h’, 그리고 더 이러한 기본정보에 살을 붙인 또 다른 사실관계들을 뜻한다. 이 사실관계들을 어떻게 구성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같은 팩트도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 우리가 기사나 방송에서 보는 뉴스들은 현실을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 ‘재구성’한 것이다.

아래는 가상으로 만들어낸 사건이다.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하나 쓴다고 생각해보자.

201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 1시경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김모 경사가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빨간 신호등이 켜졌고 대부분의 차량이 멈췄다. 하지만 한 에쿠스 승용차가 시속 100km로 광화문 방향으로 질주했다. 김 경사가 놀라 호루라기를 불어 차를 세우고 운전면허증 제시를 요구했다. 김 경사가 범칙금 10만원을 부과하려는데 운전자가 김 경사에게 “대통령을 모시고 급히 가는데”라고 했다. 김 경사가 차 안을 들여다보니 뒤에는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청와대 비서관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김 경사는 원칙대로 범칙금을 부과했다. 대통령은 업무를 원칙대로 처리한 김 경사를 일계급 특진시키라고 지시했다.

이 간단한 사건에서도 매우 다른 기사가 나올 수 있다. 주어에 따라 기사의 핵심이 달라진다. 대통령이 주어라면 “대통령이 탄 차가 신호 위반과 과속으로 적발됐다”는 리드문을 만들 수 있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대통령의 차가 신호위반을 했다고 도덕적 비난을 가할 수 있다.

또한 ‘대통령을 모시고 급히 가는데’라는 대목에 주목해 운전자와 비서관의 외압 의혹을 부각시킬 수도 있다. “대통령이 탄 차를 몰던 운전사가 교통 법규를 위반하고 단속을 피하려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반면 주어가 김 경사라면 기사를 상대가 누구라도 원칙을 지킨 훌륭한 경찰을 소개하는 미담으로 만들 수 있다. “대통령이 탄 차에도 범칙금을 매긴 소신 있는 경찰관이 화제다”

김 경사를 일계급 특진시키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주목하는 방법도 있다. 원칙대로 했을 뿐인데 대통령 지시라는 이유로 일계급 특진을 시켜주는 것 역시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 “대통령이 탄 차를 단속한 김 경사의 일계급 특진을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공방이 오가고 있다”

2015년 12월 24일, 대통령의 행적이 7시간동안 묘연한 상태였다면 기사의 핵심이 달라진다. 왜 대통령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경호원도 대동하지 않은 채 운전자와 비서관만 대동한 채 외부로 사라졌는지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단속을 막으려 했고, 김 경사가 말을 듣지 않자 일계급 특진을 거래한 것이라면?

   
 
 

이런 간단한 사건조차 언론의 시각에 따라 다른 뉴스로 재구성되고, 이 재구성된 기사가 뉴스 소비자들에게 전달된다. 이런 의미에서 뉴스 소비자가 뉴스를 분석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뉴스가 현실을 사실 그대로 반영하느냐, 전달하느냐와 함께 뉴스가 현실을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뉴스를 읽는 두 가지 키워드, 의제설정과 프레임

이런 뉴스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말이 ‘의제설정(agenda-setting)’이라는 말이다. 미디어가 선택하고 집중한 의제들이 대중과 사회를 이끌어가는 공공의제가 된다는 ‘의제설정 이론’은 미디어이론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조선일보는 2014년부터 ‘통일은 미래다’ 기획을 통해 진보진영의 의제였던 통일의제를 적극적으로 선점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입에서도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이 나왔다. 중앙일보는 ‘인구 5000만명 지키자’를 2016년 아젠다로 선정하며 저출산과 고령화에 주목하고 있다. 한겨레, 경향 등 진보언론들은 지난 2010년 진보 교육감들과 함께 ‘무상급식’을 사회적 의제로 띄우는데 성공했다. 언론은 이처럼 띄우고 싶은 의제들을 설정한다.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은 지난 9월 21일 열린 ‘중앙 50년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아젠다 키핑’을 강조했다. 정보가 빠르게 소비되는 미디어시장에서 언론사가 해야 할 일은 많은 정보 중에 중요한 정보를 고르고, 이에 대해 꾸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실제 JTBC는 200일 동안 세월호 참사를 메인뉴스에서 다뤘고 4대강 문제 역시 반년 가까이 보도했다. 대중들에게 중요한 의제를 던지는 ‘세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의제가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회적 의제가 되도록 하는 ‘키핑’이다.

이 키핑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이 ‘프레임’(frame)이다. 언론과 미디어는 강조하고 싶은 의제나 전달하고 싶은 정보를 ‘잘’ 전달하기 위해 이들을 재구성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뉴스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비유하자면 붕어빵이라는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내놓기 위해 박력분, 베이킹소다, 단팥앙금 등의 재료(정보)가 필요하다. 이 재료들을 특정한 레시피에 따라 섞은 뒤 붕어빵 틀에 집어넣어야 붕어빵이 나온다. 틀이 달라지면 이 재료들을 아무리 잘 섞어도 붕어빵이 아니라 잉어빵이 된다. 뉴스를 재구성하는데도 ‘프레임’, 틀이 중요하다.

88만원·삼포세대에 맞서는 G20세대와 달관세대

프레임의 위력은 무섭다. 팩트를 정해진 틀에 따라 받아들이게 만들고, 특정 대상을 평가하는 기준과 시각을 바꾸어버리기 때문이다. 청년세대에 대한 프레임 설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1990년대 청년들을 칭하던 호칭은 ‘X세대’였다. 미지의 함수를 뜻하는 ‘X’가 대표하듯 X세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규정할 수 없는 세대’를 뜻한다.

지금의 청년세대를 일컫는 말은 완전히 달라졌다. ‘알 수 없는 놈들’이라는 X세대라는 청년 프레임 안에서는 알 수 없고 규정할 수도 없는 청년 세대의 잠재력과 가능성이 담겨 있었다. 고도성장기에 등장한 청년에 대한 프레임이다.

하지만 청년세대에 대한 프레임은 ‘88만원 세대’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경제학자 우석훈과 칼럼니스트 박권일의 저서에서 유래된 ‘88만원 세대’로 청년들은 이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비정규직에 월급 88만원 밖에 받을 수 없는 ‘불쌍한 놈들’로 바뀌어 버렸다. 이런 ‘88만원 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짱돌’을 들라는 것이다.

짱돌을 들라는 메시지가 불편했는지 88만원 세대에 맞서는 또 다른 청년프레임이 등장했다. 2010년 G20 개최를 전후로 등장한 ‘G20세대’다. 이명박 대통령의 2011년 신년연설문에서는 ‘G20 세대’라는 말이 등장한다. 홍상표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통령이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제로 세계를 무대로 도전하는 창조적인 젊은이로 일컫는 'G20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박태환이나 김연아 같이 세계1등 자리를 차지하는 당당한 대한민국 젊은이를 뜻하는 말이다. 의도와 상관없이 G20세대라는 말은 청년세대를 88만원 밖에 못 버는 불쌍한 존재에서 벗어나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이런 ‘위대한 청년’ 프레임의 원조는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라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88만원 세대론이 유행한 이후인 2009년 ‘낡은 386은 가라. 20~30대 실크세대가 나간다’는 기획을 연재했다. 실크세대란 “70년대 이하 생들로 386세대들과 달리 인터넷과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열어나가는 젊은 세대”를 뜻한다. 88만원 세대의 대안으로 창업이나 해외취업을 제시한다.

언론과 미디어는 청년들을 다루면서 ‘불쌍한 청년’ 혹은 ‘위대한 청년’이라는 두 가지 대립 항을 이루었다. 주로 진보언론에서는 저임금 비정규직이라는 노동문제의 틀과 88만원 세대를 결합시켜 청년들의 착취당하는 일상을 폭로했다. ‘열정페이’와 같은 말도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반면 주로 보수언론은 성공한 젊은 CEO의 사례를 다루며 G20세대, 실크세대의 면모에 집중했다.

   
▲ 2014년 11월 15일 방송된 tvN SNL코리아 ‘인턴전쟁’의 한 장면.
 

이 둘의 대립 사이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힐링 담론이 등장했다. 김난도, 혜민스님 등 멘토들이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내용이 진보, 보수언론을 가릴 것 없이 대다수 언론의 지면을 채웠다. 지금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새정치’와 ‘혁신’이란 단어만 반복하고 있는 안철수 의원이 대선 주자로 성장한 계기도 멘토와 힐링 담론의 힘을 받은 ‘청춘콘서트’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케이블 코미디프로그램에서 “아프면 환자지 XXX야”라고 패러디될 정도로 이제 아무도 믿지 않은 공허한 말이 됐다. 이러한 현상은 88만원 세대에서 더 나아간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 ‘오포 세대 등 N포 세대론, 그리고 인터넷상에서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로 대표되는 ‘수저계급론’의 유행과 맞물린다. 노력이 아닌 부모의 계급에 따라 부가 대물림된다며 더 나은 삶을 포기해버린 상황에서 그래도 희망을 가지라거나 앞으론 더 나아진다는 말만큼 우스운 말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언론들은 삼포세대와 흙수저 계급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조선일보는 2015년 2월 ‘달관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2009년 88만원 세대에 맞서 도전적인 청년들을 부각시키던 조선일보가 2015년에는 삼포 세대가 취하고 있던 ‘포기’를 뒤틀어 ‘달관’으로 만들었다. 현실의 행복을 추구하며 ‘안분지족’한다는 뜻을 지닌 일본의 ‘사토리(さとり)세대’를 현지화한 단어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달관 세대론은 비난에 직면했다. 현실성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달관세대로 소개하는 26세 오모씨는 서울대생으로 외국계 컨설팅 회사를 그만두고 강남 대치동에서 논술 첨삭으로 52만원을 번다. 비명문대,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들은 이런 알바를 할 수 없다. 명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월세 25만원, 저축 20만원을 뺀 55만원이 생활비다. 영화관은 못 가지만 IPTV와 인터넷 다운로드로 문화생활을 즐긴다. 월세 25만원 짜리 집은 대체 어디 있고 보증금과 TV, 노트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걸까?

   
▲ 2015년 2월 23일자 조선일보 11면
 

관련기사 : <‘달관세대’ 뜬다고? 아름다운 단편 영화 얘기하나>

동아일보는 12월 21일 ‘“하늘이 감동할 만큼 노력해 봤나요?”… 흙수저 탓만 하는 세대에 일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12월 17일 열린 ‘청년드림뉴욕캠프’ 행사에서  황웅성 메릴린치 수석부사장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 기사였다. 황 부사장은 노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흙수저란 말은 황 부사장의 입에서도, 기사 전체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흙수저 탓하는 세대에 대한 일침’은 황 부사장이 아니라 동아일보가 한 것이다.

조선일보가 삼포세대와 수저 계급론에 대해 달관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했다면 동아일보는 그냥 ‘노오오오력’하라고 말한 셈이다. 조선일보의 프레임 설정 능력이 다른 보수언론에 비해 뛰어나다는 점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언론의 신조어를 의심하라

또 다른 사례는 북한에 대한 프레임이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뿔 달린 괴물’이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가 시도한 햇볕정책 이후 북한은 ‘우리가 도와줘야할 가난한 한민족’으로 변했다.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인터넷상에서는 북한을 적으로 인식하는 젊은 세대들이 대거 등장했다. 중앙일보는 천안함 사건 1년 이후 북한의 실체를 인식하는 청년들이 늘어났다며 이들을 ‘P세대(Patriotism:애국심)라 일컬었다. 2015년 북한의 지뢰설치와 포격이 이어지자 인터넷상에서는 예비군 군복을 입고 인증샷을 찍는 현상이 나타났고 조선일보동아일보는 이런 2030 세대를 ‘신안보세대’로 규정하며 안보의식이 높다고 치켜세웠다.  

   
▲ 2011년 3월 24일 중앙일보 1면
 

언론과 미디어는 이처럼 객관적으로 팩트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부각시키며 의제를 만들어내고 자신이 설정한 프레임, 틀에 맞춰 뉴스를 재구성한다. 언론에 신조어가 등장한다면, 한꺼번에 특정한 주제의 기사가 수십개 씩 쏟아진다면 일단 의심하라. 기사만 꼼꼼히 읽으면 대부분 이러한 의심이 합리적인 것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

1. 기레기와 찌라시 전성시대

(1) 사람들은 왜 뉴스 대신 찌라시와 음모론을 믿나

(2) 진영언론과 객관성 : 조선일보와 한겨레, 둘 중 뭘 읽어야 할까

(3) 기레기를 위한 변명 : 낚시 기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4) 뉴스가 할 말, 드라마와 영화가 대신하다 : 미생과 송곳

2. 뉴스란 무엇인가

(5) 뉴스가치의 판단 기준 : 대중은 어떤 사건에 분노하나

(6) 실전예제, 안철수와 이석기의 우연한 인연은 뉴스가치가 있을까

(7) 뉴스가치도 조작된다 : 신참 여경들이 병아리가 된 이유

(8) 같은 뉴스 다른 판단 : SBS는 왜 문창극 친일발언을 보도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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