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적막을 깨고 경찰서에 요란하게 신고전화가 울린 것은 지난 11월 새벽이었다. 서울 왕십리의 한 모텔에서 실시간으로 강간 모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소 충격적인 내용으로 시작한 지난 26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국내 최대 음란물 사이트인 소라넷의 실체를 파헤쳤다. 소라넷은 많은 이들에게 음란물 공유 사이트 정도로만 알려져있다. 그러나 이번 방송에서 공개된 소라넷의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 범죄 모의가 이뤄지는 현실도 문제였지만 이용자들에게서는 이에 대한 어떠한 문제의식도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 따르면 소라넷에서는 실시간으로 ‘초대남’을 초청하는 글이 올라온다. 소라넷에 하루 평균 세 개씩 올라온다는 초대남 초청 게시물에는 ‘골뱅이’가 있다며 선착순으로 사람을 모집했다. ‘골뱅이’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 여성을 가리키는 소라넷의 용어다. 초대남들은 순서대로 돌아가며 ‘골뱅이’와 강제로 잠자리를 갖고 피해 여성의 몸에 본인의 닉네임을 적어 인증샷을 찍어 올린다. 이런 과정을 거쳐 피해여성의 신체 사진은 여러 차례 소라넷에 인증샷으로 올라간다. 

놀랍게도 초대남을 초청하는 글을 올린 이 중에는 피해 여성의 남자친구인 경우도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 어렵게 제보한 A씨의 증언 내용은 이를 뒷받침했다. A씨는 우연히 남자친구의 휴대폰을 봤다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소라넷 사이트에 접속 중인 남자친구의 휴대폰 속에는 A씨의 신체 일부가 찍혀있었고, 남자친구는 이를 소라넷에 업로드했다. 남자친구의 말은 더욱 놀라웠다. “어차피 사진엔 얼굴도 나오지 않았고 다른 이들이 너의 알몸을 보고 기억하는 것도 아닌데 상관없지 않냐”는 것이다. 

‘리벤지포르노’라는 단어도 소라넷에서 자주 사용된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나 복수를 하기 위해 여자친구의 정보를 고의적으로 드러내는 게시물이다.

   
▲ 지난 26일 방송된 '그것이알고싶다' 방송 화면 갈무리.

방송에서 어렵게 자신이 피해자임을 밝힌 여러 명의 여성들은 삶이 무너지는 고통에 시달렸다. 동의없이 누군가에 의해 소라넷에 공개된 자신의 신체 사진과 주소, 연락처 등은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해 퍼져갔다. 몇 년이 지나도 성적인 비속어가 섞인 욕설과 음란 사진은 SNS와 휴대폰을 통해 피해자들을 괴롭혔다. “내가 여자라서 이런 일이 생긴거라면 내 안의 여자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 죽이고 싶다”는 고통을 호소한 이도 있었다.  

소라넷은 거짓 신상정보로도 쉽게 회원가입이 가능하다. 임의로 생년월일과 주소를 적고 가입해도 어떤 제한 없이 소라넷의 게시물을 보고 글을 쓸 수 있다. 어떤 이들이 소라넷을 이용하는지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해도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가해자 처벌이 불가능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이용자를 통해 들여다본 소라넷은 비뚤어진 질서로 운영되는 공간이었다. ‘해서는 안될 행동’에 대한 자각과 경계는 없었다. 반복된 일탈행위는 범죄를 향해 치달았지만 이들의 죄의식은 흐려졌다. 그렇게 이용자들은 영웅이 되려다 ‘괴물’이 되었다. 피해 여성들은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줄 전리품이었을 뿐이다.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모를 것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피해자가 나서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저지른 모든 행동들은 문제가 아닌 일로 인식됐다. 방송에서 본인이 소라넷 이용자라고 밝힌 한 인터뷰이는 “피해자는 피해 입은 줄도 모른다. 취해줘서 그저 감사할 뿐”이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날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15년 간 소라넷에서 활동해온 한 이용자를 인터뷰했다. ‘야노’라는 닉네임을 사용한다는 한 이용자는 방송에서 “소라넷에서 베스트작가로 인증받으려면 남들이 하기 어려운 것을 해야한다”며 “범죄에 가까운 행동을 해야 고수가 된다. 그런 것들을 해야 (소라넷 이용자들 사이에서) 능력으로 인정받는다”고 밝혔다. 그는 “초대남 글을 올리면 높은 등급의 작가가 될 수 있다. 나중에 탈날 일이 없다보니 거리낌없이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밝혔다. 

   
▲ 지난 26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화면 갈무리.

소라넷의 게시물들은 표현의 자유로 용인될 수 있는 선을 넘은 범죄에 가깝다는 법 전문가들의 의견도 이어졌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에 의하면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IT전문가들과 함께 소라넷 운영자를 찾아 나섰다. 해당 사이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설립된 법인의 것으로 알려졌다. 서버는 해외에 기반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서버를 분산시켜 사용하고 있었다. 소라넷 주소격인 도메인을 구매한 사람과 소라넷의 보안을 대행하고 있는 회사도 찾았으나 결국 소라넷 운영자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외부의 어떤 접근도 막아내기 위해 철저히 익명과 허구로 둘러싼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어떤 회사일 것이란 추측만 가능했다. 

16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철저히 베일에 쌓인 채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이트를 운영한 이유는 뭘까.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만난 불법 음란사이트 운영자로 활동한 이의 한 인터뷰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은 돈 때문이라는 것이다. 회원수가 많아질수록 해당 사이트에 들어오는 복권이나 도박 관련 광고 게시물의 가격은 크게 올라간다. 한 달에 1억이 넘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특히 소라넷의 경우 대표적인 음란물 사이트 1위라는 광고효과도 노릴 수 있다. 

돈과 소영웅주의, 그리고 왜곡된 성의식이 만들어낸 소라넷이라는 공간은 인터넷이라는 특성 때문에 폐쇄조차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불법에 가까운 게시물 몇 개 때문에 사이트 자체를 폐쇄하는게 타당하냐는 주장도 나온다. 사이트 하나 없앤다고 이와 유사한 사이트가 또 등장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밝혀낸 것처럼 소라넷의 운영방식을 본따 운영되는 음란 사이트들도 적지 않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만난 한 이용자는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소라넷을 없앤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제작진도) 조심하시라. 나 같은 남자 많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짓밟은 범죄 ‘사실’은 인터넷을 넘어 현실 속 피해자에게 상흔을 남긴다. 국가기관이 가해자를 밝혀내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그저 피해를 방치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반론이 어렵다. '그것이 알고싶다'역시 이러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수사나 입증이 어렵다고 착수조차 하지 않는 상태가 범죄를 오히려 조장한다. 자신들은 처벌되지 않는다며 더 (행위를)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방송에서 소라넷에 대해 남성과 여성의 문제를 벗어나 모두가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문제로 인식을 넓힐 것을 제안했다. 일부 ‘민감한’ 여성들의 주장이라거나 소라넷은 남자만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라넷에서 벌어지는 문제가 범죄라는 문제의식이 흐려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남자와 여자 간의 문제라고 보는 것은 아예 잘못된 인식이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다. 의사에 반해 벌어지는 이런 종류의 범죄에 남성과 여성을 떠나 모든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필요하다. (소라넷의 문제를) 강건한 여성의 주장이라고 취급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을 위험에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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