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는 12월 21일 “박 대통령이 정의화 의장을 미워하는 ‘5가지 사연’”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청와대와 국회 의 갈등 이면에 숨겨진 대통령과 의장의 관계를 이해하는 칼럼형 해설뉴스를 서비스했다. 내용이 꽤 설득력이 있으며 주목도가 높다. 이것은 다분히 박대통령의 관점에서 정리됐다.

박 대통령이 정 의장을 미워할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면, 정 의장도 그런 발언을 할만한 당위성, 표현의 자유 정도는 인정할만하지 않을까. 비슷한 내용을 이번에는 살짝 정 의장의 관점에서 재해석 해보면 어떨까. 역시 5가지 이유를 바탕으로 제시해본다.

1. 역사적 사건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법원에서도 폭넓게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한겨레는 박 대통령이 정 의장의 “장준하 선생은 타살”이라고 주장한데 대해 그를 미워하는 첫 번째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과거사에 대한 두 개의 판결" 발언이 나온 직후 당시 정의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장준하 타살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말을 해서 미워할 것이다는 추론이다. 외과의사 전문의 출신인 정 의원은 당시 비대위원장의 입장에서 전문적 소견을 낸 것이다. 이미 역사가 된 과거 사건에 대해 주검을 보고 ‘판단을 내리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국민 모두를 포용해야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가 자신의 일도 아닌 역사적 논쟁거리로 남은 사건에 대해 논평하는 정도는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용기있는 발언’으로까지 평가할 정도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불분명한 사건에서 두개골을 보고 정치적 판단이 아닌 의료적 판단을 내린 발언에 대해 마음에 들지않는다는 이유로 미워하겠다면 정 의장의 입장에서 좀 억울하지않을까.

2. 삼권분립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존중이 없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다.

한겨레는 박 대통령이 ‘전화도 없이 법안 던져놓고 기한 내에 처리하라’는 식에 대해 정 의장이 대통령을 미워하는 두 번째 이유로 삼았다. 박 대통령의 메신저 최경환 경제부총리나 현기환 정무수석이 ‘기한내 법안처리’ ‘직권상정’ 등을 요청한데 대해 소통 부족을 내세우며 거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옳은 지적으로 보인다. 정 의장의 입장에서는 3권 분립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입법부 수장으로서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을 할 수는 없는 위치에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53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정의장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상황설명이나 협조요청이 아닌 메신저들을 통한 일방지시에 대해 ‘민주주의의 위기’를 주장하며 거세게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집권당 의원출신이라 많이 참고 있는 것이다. 틈만 나면 국무회의에서 국회를 향해 비난하는 대통령의 발언은 ‘3권분립’ 정신은 어디서도 찾을 길이 없다. 국회의장의 입장에서는 모욕감, 분노를 느낄만한 발언이 반복될 때 상호존중은 찾기 힘들어진다. 대통령이 참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장이 더 참고 있는 것이 아닐까.

3. 대통령은 뜻을 이루었고 국회의장은 좌절했다.

한겨레는 지난 6월 국회법 개정안 문제를 두고 박 대통령의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 찍어내기가 시도될 때 정 의장이 중재안을 만든 것이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해석했다. 국회의장이 ‘정부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여야 합의 개정법안 문구에서 ‘요구’를 ‘요청’으로 바꿔 중재안을 만든 것을 박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 의장은 국회로 돌아온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본회의에 상정해 재의에 부치려 했지만 재의결 시도는 결국 무산됐다. 이 소동의 결과 유 원내총무는 옷을 벗었다. 대통령의 찍어내기는 관철됐고 국회의장의 중재안은 결과적으로 쓸데없는 일이 됐다. 스타일을 구긴 것은 국회의장이요. 권력의 위용을 과시한 사람은 대통령. 코피가 터진 희생자는 유 원내총무였다. 그 일로 원내총무까지 지낸 유 의원은 현재 공천조차 받지못할 위기상황이다. 그런데 뜻을 관철시킨 대통령은 여전히 국회의장을 미워하고 있고 반신불수된 유의원은 더 큰 보복으로 떨고 있는 형국이다. 국회의장의 입장은 더 기가 막히지않는가.

4. 대통령을 미워해야 할 사람은 정작 국회의장이다.

한겨레는 ‘지난 7월2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5개 중견국가협의체’ 국회의장들을 접견하는 자리에 정작 주최자인 정 의장을 초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신문은 “박 대통령은 외국 국회의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정 의장이 참석하는 오찬간담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하다가 갑자기 오찬이 아닌 접견으로 행사를 축소하면서 정 의장을 제외시켰다.”고 전했다. 이것이야말로 대통령이 아닌 국회의장이 대통령을 미워할만한 사건이 아닌가.

국회의장이 호스트인데, 정작 그를 제외하고 외국 국회의장들만 만났다는 것은 정의장은 물론 국민의 입장에서도 납득이 가지않는다. 대통령 ’뒤끝이 작렬하여‘ 국회의장을 왕따시키는데 국회의장의 입장은 없고 대통령이 미워한다니...누가 누구를 미워해야하는지...공사구분 못하거나 안하는 당사자는 누구인지...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때리면 사과하는 것이 도리지 더 미워하는 것은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다.

   
▲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정 의장은 "청와대가 삼권분립을 의심케 하는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 포커스뉴스
 

5 국회의장이 대통령을 위해 고언을 하는 것이 미움받을 짓인가

한겨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여론이 비등하던 지난 10월20일 정 국회의장이 관훈클럽이 주최한 토론회 자리에서 “국민들을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넣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펴달라.”라는 발언을 전하면서 ‘폭탄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아마 일방적으로 ‘국정화를 추진하던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폭탄발언‘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말끝마다 ’민생‘ 경제’를 부르짖던 대통령이 사회적 논쟁거리 ‘국정화 이슈’에 대해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장이 한마디했다고 해서 폭탄발언으로 증오의 이유로 삼는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잘못이다. 국정화 추진은 민생과 아무 관계없을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 스스로 한 발언들 “역사는 역사학자,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역사를 정권이 재단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 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를 새로 써야한다” 등을 부정하는 것이다. 국민을 대변하는 당연한 말을 국회의장이 했다고 미움의 대상이 된다면 대통령이 아닌 국회의장이 억울해할 일이다.

“하늘의 신도 오만한 인간에게는 보복을 가한다.”(헤로도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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