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은 무죄였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가토 다쓰야)이 소문 내용이 허위임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대상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보일 뿐, ‘대통령’이 아닌 ‘사인(私人)’ 박근혜에 대한 비방의 목적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해 허위내용을 기사에 담았으나, 비방 목적을 찾을 수 없어 무죄라는 결론이었다. 대다수 언론은 ‘허위 보도’, ‘비방 목적은 없어’, ‘검찰의 무리한 기소’ 등의 프레임으로 접근했다.

그런데 가토 다쓰야 무죄 판결에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검찰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으로 가토 다쓰야를 기소했다. 만약 검찰이 재판과정에서 비방 목적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 형법 307조 일반 명예훼손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할 수 있었다. 그럼 가토 다쓰야는 유죄를 받을 가능성이 지금보다 높아졌을 것이다. 언론법에 밝은 한 변호사는 “공소장을 일반 명예훼손 혐의로 변경했다면 비방 목적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므로 검찰에게 유리해졌을 텐데 왜 공소장 변경을 검토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검찰은 왜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았을까. 검찰이 법을 잘 몰랐거나, 혐의 입증에 소극적이었거나 둘 중 하나로 보인다. 선고공판이 한 차례 미뤄지고 “선처를 부탁한다”는 외교부 공문이 재판부에 전달됐던 점에 미뤄봤을 때 검찰 또한 공판 내내 외교적 압박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있다. 검찰 역시 정부 측 관료이기 때문에 외교마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보식 조선일보 기자를 포함해 보수 성향 언론사 간부들까지도 기소단계부터 검찰기소가 무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검찰이 기소를 해야만 했던 이유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 한국일보 12월18일자 2면 사진기사.
 

재판부는 “허위보도이나 언론자유를 폭넓게 인정한다”며 박근혜정부의 면도 살려주고 외교 마찰도 최소화하는 ‘묘수’를 찾았다. 검찰도 ‘무리한 기소’였다는 비판은 어차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토 다쓰야의 유죄를 피하기 위한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재판부는 박근혜정부의 면을 살리기 위해 독특한 논법을 구사하기도 했다. 이번 판결문에 드러난 두 번째 특이점이다. 검사는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와 사인으로서의 박근혜가 모두 피해자라고 주장했는데, 재판부 역시 이러한 구분 짓기 프레임을 따라간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표 공인’이다. 공인 중에서도 공인이다. 이번 판결에선 이례적으로 공인 박근혜와 사인 박근혜를 구분했다. 보통 공인보도가 법정으로 갔을 때 쟁점은 공인의 사생활 보도 범위와 위법성조각 사유다.

공인을 공인/사인으로 구분함으로서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허위 소문 내용을 근거로 한 대통령의 업무수행에 대한 비판이 타당하지 않다고 하여 이 사건 기사로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명예훼손이 곧바로 성립된다고 할 수는 없다.” 즉 공인 박근혜의 명예훼손혐의는 성립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곧바로 “(산케이 기사는) 사인 박근혜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공인 박근혜 명예는 훼손되지 않았으나, 사인 박근혜 명예는 훼손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분 짓기로 “세월호 당일 박 대통령 행적 의혹 보도 명예훼손 해당되나 비방 목적 아니다”(중앙일보 18일자 10면), “가토 칼럼, 허위사실·명예훼손 맞지만 비방 목적은 없다”(조선일보 18일자 10면)와 같은 기사 제목이 가능해졌다. 정확한 표현은 ‘사인 박근혜의 명예훼손’이지만 이 부분은 기사 제목에서 생략됐다. 그 결과 독자들은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 인정됐다고 오해하기 쉽다. 공인보도관련 판결에서 ‘사인의 명예훼손’을 구분한 특이점에 대한 의문도 기사에서 찾기는 어려웠다. 이 같은 구분 짓기 프레임이 일반적이고 정당하다면 채동욱 전 검찰총장도 “사인 채동욱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사인 채동욱의 내밀한 영역이 까발려졌기 때문이다. 

   
▲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 서울지국장의 17일 기자회견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이번 재판의 또 하나 특이점은 선고공판 이전에 기사의 허위사실 여부를 규정한 점이다. 보통은 선고공판에서 허위사실여부를 판단하지만 재판부는 지난 3월30일 공판에서 “가토 전 지국장이 기사에 게재한 소문의 내용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허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변호인 측이 요구했던 4월16일 당일 청와대 경호기록 사실조회 신청 당시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에 기초한 사실 조회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거부하기도 했다. 

재판부가 일찌감치 정리한 허위사실은 이렇다. ①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비밀리에 접촉하는 사람인 정윤회와 함께 있었다. ②두 사람은 단순히 업무상 아는 사이 이상의 긴밀한 남녀관계이다. 정윤회씨의 휴대전화 발신지 추적기록이나 청와대 경호실 출입 관련 공문, 정씨와 점심을 먹었다는 지인 이아무개씨의 증언 등으로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동안의 알리바이가 입증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박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사실관계는 박근혜 정부에서 객관적으로 나오기 어렵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전제다. 결국 행적에 대한 논란은 판사의 판단영역으로 정리하고, 비방이냐 공익보도냐 문제로 전환하며 판결의 정치적 부담을 덜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랜 기간 법조를 담당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재판부가 사건의 본질에 해당하는 비방에 초점을 두고 위법성 조각사유를 판단하려는 것 같다. 판사로선 대통령의 행적이 객관적으로 안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7시간을 둘러싼 공방보다는 사건의 본질인 언론 자유의 문제에 주력하려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정윤회와 함께 있지 않았다는 사실 △두 사람이 긴밀한 남녀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검찰이 입증해야 한다면서도 “대통령과 정윤회가 긴밀한 남녀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은 특정되지 않은 기간과 공간에서 구체화되지 않은 사실의 부존재에 관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증명책임은 다소 완화되어야 한다”고 밝히며 검찰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했다. 

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재판부가 “대통령의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의 행적 또한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사실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기사에서 다룬 소문의 취지는 대통령이 정윤회와 긴밀한 남녀관계이고,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에 정윤회를 만나느라 사고 수습에 주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라고 전한 뒤 “소문에 관한 표현 방법과 내용은 부적절하나, 위 소문 내용 자체는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소문을 보도하는 데 있어서도 언론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이 같은 소문 또는 의혹과 관련된 보도에 굉장히 소극적이다. 이는 외신보도까지 기소하는 박근혜정부의 언론통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2015)에서 61위를 기록한 일본이 60위를 기록한 한국에게 ‘언론자유’를 운운하게끔 만들고, 반공을 가치로 내건 극우신문 산케이와 가토 다쓰야를 언론자유투사로 만든 이는 누구인가. 검찰이 무리한 기소에 나서고 재판부가 공인을 공인과 사인으로 나눠 판결해야만 했던 건 누구 때문인가. 그 누군가가, 떠도는 ‘소문’을 신나게 받아 적은 일본의 황색저널리즘에 정색하고 달려들지만 않았다면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을 국민들이 겪고 있다. ‘국격의 하락’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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