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일보 경영진이 국내 한 대학의 대학원 연수 대상자로 선정된 기자에게 연수 신청 대학이 ‘좌파 시민단체를 양성하는 곳’이라는 이유 등으로 반려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와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등 복수의 한국일보 관계자를 통해 확인한 결과, 한국일보 사회부 소속의 A기자는 지난 10월 편집국 간부 회의를 통해 해외 및 국내 연수 대상자 3명 중 1명으로 선정됐지만 회사 경영진의 반대로 연수 신청을 철회했다. A기자가 연수를 준비했던 곳은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이었다. 

한국일보 민실위 등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고재학 편집국장은 A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대학원을 알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성공회대 대학원은 좌파 시민단체를 양성하는 곳 아니냐’는 경영진의 우려를 전달했다. 

이에 A기자는 “그 정책대학원은 해외 교류 프로그램도 있고 해서 택했다. 좌파 그런 것 관심도 없고 걱정 안 해도 되니 양해해주면 그냥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고 국장도 “알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후 한 달가량이 지나도록 경영진은 연수 대상자 3명에 대해 연수 승인을 하지 않았다. 이종승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 일부가 A기자의 국내 연수를 계속해서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A기자는 고 국장 등으로부터 몇 차례 경영진의 입장 변화가 없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는데, 성공회대 말고 다른 대학원을 알아보라는 게 경영진의 반려 이유였다. 

다른 대학원 연수를 다시 준비하기에는 이미 대부분의 대학원 전형이 끝난 상황이어서 A기자는 결국 지난 1일 고 국장에게 연수를 가지 않겠다고 전했다. 이에 고 국장은 사측 인사와 논의해 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했지만 다시 연락이 없었다는 게 민실위의 설명이다. 

   
▲ 한국일보 CI&제호
 

A기자가 연수 철회 의사를 밝힌 바로 다음 날 경영진은 다른 기자 2명의 해외 연수를 승인했다. 그러자 이 사실을 접한 노조와 민실위는 즉각 반발했다. 지금까지 연수자가 선택한 대학을 경영진이 문제 삼은 적이 없었는데도 경영진이 대학원 성향을 문제 삼아 편집국의 결정을 거부한 것은 심각한 편집국 간섭이라는 것이다. 

민실위는 지난 3일 A기자의 연수 철회 사태에 대한 성명을 내고 “이번 사태는 비단 연수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진이 편집국과 편집국 간부들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라며 “편집국 간부들이 회의를 통해 편집국의 이름으로 결정한 사안이 색깔론 수준의 저열한 논리로 뒤집힌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민실위는 “더구나 해당 대학원은 해외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 학생들도 NGO를 공부하러 오는 곳이다. 기자로서 이런 곳에서 공부해 좀더 넓은 시각을 갖게 되는 것도 연수 취지에 맞다”며 “해당 대학에 진보 성향의 교수들이 많다는 이유로 연수를 막으려 한 경영진의 태도가 비판적 중도 또는 적극적 중도를 지향하는 한국일보에 맞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민실위는 편집국의 결정을 관철하지 못한 고 국장에 대해서도 “경영진의 태도가 잘못됐다면 편집국장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경영진을 설득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다툼도 불사하는 게 맞다”면서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편집국의 수장으로서 편집국의 목소리를 경영진에 충분히 전달하고 설득했는지 의심스럽다”고 질타했다. 

이날 한국일보 노조도 “편집국 간부회의를 통과했는데도 연수 희망자가 가려는 특정 대학을 문제 삼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철회를 받아내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며 “구성원들을 위축시키고 갈등과 불신의 골을 키우지 말고 연수 철회 결정을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최근 경영진이 계속해서 편집국 운영에 부당하게 간섭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며 “그간 일부 경영진이 보여준 몇 차례의 부적절한 모습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며 “내부적으로는 편집국과 외부 필진이 발행한 온라인 기사에 대한 일부 경영진의 삭제 요청 등 편집권에 개입하는 모습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한국일보 사장, 정부비판 칼럼 삭제지시 논란)

노조는 사측의 편집국 운영 방식 논란에 대해서도 “일부 경영진은 애초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도 될 사안에서 문제를 만들어 갈등과 분란을 자초하며 스스로 구성원들의 사기를 저하해 왔다”며 “편집국 내 갈등 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구성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헤아려야 할 고 국장 또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이종승 한국일보 사장
 

이처럼 편집국 기자 연수 문제로 노사 갈등을 초래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종승 사장은 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회사 경영자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주문을 한 것이므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사장은 “회사 조직원으로서 놀러 다니러 온 것이 아니면 이왕 시간을 할애해 공부할 거면 미래지향적인 것을 배우면 어떻겠냐고 한 거고, 그런 얘기는 (경영자로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강제로 가라 말라 할 수 없는 일이고 본인이 받아들이면 되는 거고, 안 받아들이면 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경영진이 특정 대학의 성향을 문제 삼았다는 지적에 대해선 “대한민국에서 인가된 대학이라면 어느 대학이든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왕이면 본인과 회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배워보라는 취지였다”며 “우리가 보기엔 (A기자가 신청한 대학원이) 대외적으로 너무 평범해서 미디어나 IT 등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배우도록 제안했고, 정 본인이 공부하길 원한다면 휴직하고도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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