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디어 교육을 교육현장에 전격적으로 도입하려 한다. 산업적 위기를 겪는 언론 입장에서도 미리어 리터러시는 위기의 돌파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체계적으로 준비되지 않았으며 정치사회 교육과도 단절돼 있다. 미디어오늘은 프랑스, 핀란드, 영국 등 미디어 교육을 성공적으로 실시하는 국가의 미디어 교육 현황을 돌아보고 발전적인 미디어 교육을 위한 제언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술만 취하고 나면 완전히 미친 괴물이 돼요. 엄마랑 동생을 때리는 걸 볼 때는 아빠를 죽이고 싶어요.” 금천구 독산동에 산다는 한 초등학교 5학년 소년이 ‘고래가 그랬어’(고래)에 고민을 털어놨다. 고래는 이렇게 답했다. “폭력을 그냥 눈감아주어서는 안된다. 병원에서 꼭 치료를 받아보시라고 아빠에게 말하라.” 고래 2004년 1월호에 실린 내용이다.  

2011년 2월호에는 어린이 기자단이 홍익대 청소노동자를 취재한 내용이 담겼다. 기자단은 청소노동자들에게 “언니 오빠들이 내는 등록금도 엄청날텐데 임금은 왜 이렇게 적게줘요?”라고 묻고 청소노동자 하루 밥값이 300원이라는 말에 “헉 300원이면 불량식품도 못 사먹어요”라고 답한다. “이렇게 나쁜 곳에서 말고 다른 좋은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으세요?”라는 당돌하지만 당연한 질문도 나왔다. 

‘하나뿐인 어린이 교양지’ 고래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 동무와 함께하는 마음이 교양입니다. 교양은 나를 삶의 주인으로 만들고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줍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사실상 입시에 초점이 맞춰진 한국의 미디어교육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또 실현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안현선 편집장은 “생각을 주입하지는 않는다. 사회가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일단 보여주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 고래가 그랬어. 올해 13년차를 맞았다.
 

그래서 고래는 아이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려고 한다. 최근 연재됐던 마영신 작가의 ‘삐꾸래용’은 왕따를 소재로 한 만화다. 만화에는 한 아이가 돌을 들어 다른 아이의 머리를 내리찍는 장면이 나온다. 자연스레 얼굴이 찌푸려진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인기폭발’이었다. 최규석 작가의 ‘불행한 소년’도 논란이 됐다. 이 만화는 “네가 참고 용서해”라고 말하는 천사를 죽이는 것으로 끝난다.

때문에 종종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폭력적이며 자극적이라는 것이다. 안 편집장은 “어린이에게는 꿈과 희망, 좋은 것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인데 아이들은 이미 왕따가 벌어지는 교실에서 살고 있다. 우와 싶을 정도로 욕도 잘한다. 어떤 매체도 이런 실상을 다뤄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고래는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하는 소위 ‘보호’가 궁극적으로는 생각의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그대로 보여준다. 적은 인력 때문에 직접 취재를 하는 일은 어렵지만 각 분야 최전선에 있는 ‘이모삼촌’들의 글을 소개한다.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 코너에는 강수돌 교수, 이강택 KBS PD, 목수정 작가 등이 글이 실린다. 이들은 “대학에서 경제를 가르치면서 아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삼촌” “제대로 된 언론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어” “스스로 생각한대로 살아가는 이모” 등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아이들이 직접 토론을 하는 ‘고래토론’은 고래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코너다. 토론의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최근 CCTV를 주제로 한 토론에서는 “그래도 사생활 침해인 것 같은데” “그래서 ‘CCTV 녹화중’ 이라고 써놓잖아” “그런데 그게 날 찍어도 된다는 허락은 아니잖아” “어떻게 지나가는 모든 사람한테 허락을 받아” “몰카랑 허락 안 받고 감시카메라로 찍는 거랑 뭐가 달라” 등의 말이 오갔다. 

 

   
▲ 고래토론 토론자들.
 

독자들은 이메일이나 엽서를 통해 토론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다. 지난 10월에는 ‘노키즈존’을 주제로 진행된 토론에 대해 독자들은 “어른들만 오는 곳이라면 아이들만 오는 곳도 있어야 해” “나도 조용히 할 수 있는데 애라는 이유로만 못 들어가게 하면 좀 억울하지, 애늙은이면 어떡하려고. 차라리 ‘NO수다존’을 만들든가” “나 같으면 굳이 말하지 않고 귀마개를 하고 있을텐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고래는 이런 주제를 다루면서도 철저히 아이들 입맛에 맞춘다. 고래의 절반은 만화로 채워져있다. 표지도 정신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좋다. 안 편집장은 “창간 직전 준비호를 본 어른들의 반응은 모두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어린이들은 ‘별로’ 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발행인과 당시 편집장이 아예 다 엎어버렸다. 그랬더니 어린이들은 좋아하는데 어른들은 산만하다고 싫어해서 ‘이거다’ 했던 거다.”

잡지의 절반이 만화라는 것에 대해서도 안 편집장은 “어른들은 만화가 교육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만화를 굉장히 좋아한다”며 “그래서 만화가 절반을 차지하는 어린이 잡지는 좋은 것이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매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화로 다룰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읽는다”고 말했다. 그는 “만화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은 웃긴다”고 덧붙였다. 

고래가 폭력적이며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는 이유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다. 안 편집장은 “‘아무것도 몰라요’에서 오는 행복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가진 행복”이라며 “고래 독자들이 범람하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행복한 사회”라고 말했다. 

 

   
▲ 고래가 그랬어에 실린 만화들.
 

고래 한권의 가격은 9500원이다. 주독자층은 초등학교 4~6학년이다. 현재 구독자는 3500여명 수준이다. 고래를 구독할 정도면 발행인인 김규항씨를 아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실제로 구독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렵거나 문화자본에서 소외된 아이들은 이같은 수준의 미디어교육을 받기 어렵다. 이 문제의식에서 탄생한 게 고래동무다. 고래동무는 고래의 가장 큰 미덕이다. 

첫장을 펴면 ‘세상과 거꾸로 가는 고래’에서 “아이가 행복한 세상을 내건 어린이 잡지가 가난한 집 아이들은 구독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고민하던 사람들이 고래동무를 만들었습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래동무가 후원하는 한 권의 책은 전국의 보육원, 지역아동센터(지역 공부방), 농어촌 분교로 보내진다. 아이들이 볼 재미있는 잡지가 적은 곳에서 고래의 인기는 ‘폭발적’이라고 안 편집장은 설명했다. 현재 고래동무는 3000명 가량이다.  

(이 기획취재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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