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1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종합편성채널 개국행사장 앞. 1200여명의 언론노조 조합원들 앞에서 정치인 심상정은 “종편의 탄생은 수구 보수 세력의 영구집권을 위한 구조조정”이라고 주장했다. 시간이 흘러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4월2일 TV조선 메인뉴스에 출연했다. “국민과의 접촉면을 넓힌다는 취지”였다. 언론운동진영에서 심 대표의 출연을 비판한 이는 없었다. 종편은 현실이 됐다. 

2015년 12월, 이경규가 MBN 새 예능프로그램 ‘도시탈출 외인구단’에 합류했다. 이경규는 TV조선 ‘이경규의 진짜카메라’ 출연에 이어 또 다시 종편에 얼굴을 드러냈다. 강호동의 JTBC 데뷔작 ‘아는 놈들’은 지난 5일 첫 방송에서 호평을 받았다. JTBC는 유재석의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 등 편성으로 이미 지상파3사와 견줘도 손색없는 예능편성에 나서고 있다. 2011년 12월 종편 개국 당시 지상파3사에서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들이다. 

   
▲ 종합편성채널은 최근 4사 모두 신규 예능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오른쪽 시계방향으로 JTBC '투유프로젝트 슈가맨', 채널A '부르면 갑니다, 머슴아들', TV조선 '엄마가 뭐길래', MBN '도시탈출 외인구단'.
 

시작은 초라했다. 황금채널·의무재전송·방송발전기금 유예 등 각종 특혜에도 TV조선은 2012년 9월 한 달간 재방율 65.1%라는 수준 이하의 편성을 보여줬다. 종편4사는 개국 첫해 50%이상 재방편성에 평균시청률 0.5%대라는 굴욕을 맛봤다. 2012년 6월 종편4사 합산시청률은 2.18%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를 전후로 사정이 달라졌다. 2013년 6월 종편4사 합산시청률은 4.31%을 기록했고 2014년 6월에는 6.65%, 2015년 6월에는 6.93%로 매해 증가했다.

종편은 성장했다. 2012년 2263억 원이었던 종편4사 매출액은 2013년 3061억 원, 2014년 4046억 원으로 성장세다. “시청률 1%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은 종편4사가 2013년 7월 월 평균 시청률 1%를 동시에 넘기며 사라졌다. JTBC ‘NEWS9’는 세월호 참사 당시인 2014년 4월28일 5.47%(닐슨코리아, 수도권유료방송가구)를 기록했고, TV조선 ‘뉴스쇼 판’은 지난 4월29일 6.05%(전국유료방송가구)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지상파3사 메인뉴스를 위협했다. “4사 채널 중 2개만 살아남을 것”이란 위기설이 있던 자리엔 지상파위기설이 대체했다. 

   
▲ 종합편성채널 4사의 시청률 추이. 닐슨코리아 전국유료방송가구 기준. 디자인=이우림 기자.
 
   
▲ 종합편성채널의 연간 매출액 추이. 디자인=이우림 기자.
 

종편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종편4사를 하나의 방송자본묶음으로 봤을 때 종편은 그 어떤 방송사보다 최소비용으로 노동력을 쥐어짜내고 있다. 출범 당시부터 보도 분야를 제외한 전 장르를 사실상 외주제작에 맡기며 제작비와 인건비를 최소화했다. 방송통신위원회 2014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 자료에 따르면 종편4사 인건비는 JTBC 61억4000만원, 채널A 41억6000만원, TV조선 41억2400만원, MBN 35억 원 순(2013년 기준)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지상파3사 인건비는 KBS 622억4400만 원, MBC 248억2700만 원, SBS 193억4100만 원 수준이었다. 종편4사 인건비는 180억 원 수준으로 SBS의 한 해 인건비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이들 종편4사의 채널시청률은 합계 7% 수준으로 합계 15% 수준인 지상파3사의 절반 수치에 육박하고 있다. 종편의 성장은 곧 방송노동자들의 끝없는 노동조건 악화를 반증한다. 현재 종편의 불안정노동실태는 단 한 번의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TV조선 개국 당시 PD로 입사했다 퇴사한 A씨는 “개국당시 제작진 중 남아있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전했다. 

   
▲ 지상파3사와 종편4사의 인건비, 제작비 비교. 디자인=이우림 기자.
 

종편은 제작비가 많이 드는 지상파 흉내 내기 편성도 JTBC를 제외하고는 개국 첫해부터 일찌감치 포기했다. 대신 시사보도 편성에 집중하며 제작비를 최소화했다. 2013년 기준 프로그램 제작비로 KBS가 9533억, MBC가 5753억, SBS가 4959억 원을 지출한 반면 종편4사는 JTBC 2001억, MBN 887억, TV조선 691억, 채널A 689억 원 4사 합계 4268억 원으로 역시 SBS의 한 해 제작비에도 못 미쳤다. 끝없는 제작비 축소로 비전을 보지 못한 이들은 회사를 떠났다. 채널A의 경우 공채1기 PD들이 모두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종편의 무기는 기득권에 편향된 뉴스상품이었다. 다수 종편은 야당에 불리하고 여당과 박근혜대통령에 유리한 보도를 적극적으로 쏟아냈다. 종편은 지난 대선, 뉴스상품의 영향력을 시청률로 경험했다. 자극적인 소재를 뉴스에 이용하고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쏟아낼수록 시청률이 올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제재 건수가 매해 증가했으나 무시했다. 종편4사 전체 심의제재건수는2012년 80건에서 2015년 현재 192건으로 급증했다. 특히 TV조선의 법정제재·행정지도는 2012년 23건, 2013년 35건, 2014년 75건, 2015년 11월 현재 87건으로 매해 증가했다. 

   
▲ 종합편성채널4사의 연간 심의제재 건수. 디자인=이우림 기자.
 

TV조선과 채널A는 2013년 시사프로그램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이 개입해 일으킨 사건이란 주장을 내보내는 식으로 사회의제를 왜곡해왔다. 사회적으로 합의되어온 상식을 파괴하는가 하면, 정부여당이 원하는 의제를 확대재생산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채동욱 혼외자보도, 박원순 아들 병역의혹, 북한 체제 원색 비난 따위다. 지상파3사가 축소보도로 의제를 왜곡했다면 종편은 확대보도로 의제를 주도했다. 권위 있는 학자 대신 탈북자와 극우인사가 편향된 언어로 사회를 재단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종편은 낮 시간대 뉴스 모멘텀을 가져 왔다.

언론운동진영의 ‘종편=사회적 해악’ 전선은 JTBC의 손석희 영입으로 어긋났다. 지상파보도가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가운데 손석희의 ‘뉴스룸’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신뢰도·영향력 1위로 오르며 방송뉴스 중 가장 공정한 뉴스를 자임하게 됐다. 종편은 태생적으로 불공정하다는 언론운동진영의 전제가 무너지며 종편 출범은 대중적 정당성을 얻게 됐다. 대중은 ‘다양성’의 측면에서 TV조선과 JTBC를 인정하게 됐다. 

통진당 해산 보도에선 TV조선이, 세월호 참사 보도에선 JTBC가 이슈를 주도했다. 채널A는 압도적인 물량공세로 북한뉴스를 주도하고 있으며, MBN은 MBC간판이었던 김주하 기자를 영입해 12월부터 메인뉴스 단독앵커자리를 맡겼다. 이런 가운데 각 사별로 교양과 예능프로그램 편성을 점진적으로 늘려나가며 안정적 시청률을 꾀하고 있다. 황성연 닐슨코리아 클라이언트서비스 부장은 “2012년 대선 이후 안착한 종편은 중장년층 시청자를 잡은 뒤 서서히 시청 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 종합편성채널 4사 로고.
 

TV조선이 올해 초 MBC와 tvN 예능 황금기를 이끌었던 송창의 PD를 제작본부장으로 영입해 다양한 장르적 실험을 보이고 MBN이 SBS출신 배철호PD를 제작본부장으로 영입해 새 예능을 선보인 모습은 이 같은 시청층 확대 전략으로 보인다. 이미 MBN은 토크쇼에서 강세를 보이며 ‘시월드’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TV조선 내부에선 극우보수라는 채널이미지에 변화를 주기 위해 TV조선이란 채널명 교체를 고려한 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종편은 홈쇼핑 채널연번제를 통해 현재보다 앞 번호 채널이란 또 하나의 특혜를 공공연히 노리고 있다. 개국 당시부터 유예 특혜를 입었던 방발기금도 다른 방송사업자에 비해 낮은 수준인 방송광고매출액 대비 0.5%지급으로 결정돼 특혜란 비판을 받고 있다. 종편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또 다시 시청률 반등의 기회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수구 보수 세력의 영구집권’이란 출범 목적에 부합하는 종편의 뉴스화면을 오늘도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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