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실 줄 몰랐다. 원망할까 망설이기도 했다. 그런데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사람들이 앉아 계시고…. 희망이라는 단어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지난달 1차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 진압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농민 백남기씨의 막내딸 백민주화(30)씨는 5일 오후 서울 혜화역 대로를 가득 메운 시민 수만 명에 감사를 표했다. 

앞서 2차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여한 노동자·농민 등 시민 4만여 명은 오후 5시 서울 광장에서 출발해 광교, 보신각, 종로로 이어지는 행진을 진행했다. 행진의 종착점은 백씨가 입원해 있는 서울 대학로 서울대학교 병원이었다. 

백남기씨 쾌유를 기원하는 촛불 문화제가 이날 오후 8시 서울대병원 후문 앞 대로에서 열렸다. 집회 참가자 3만 명(주최 측인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추산)과 마주한 민주화씨는 “그동안 우는 모습만 보여드려 최대한 울지 않는 연습을 했는데 지금 흘리는 눈물은 찾아와주신 많은 분들에 대한 감사의 눈물, 감격의 눈물”이라며 감사해했다. 

   
백남기씨의 딸, 백민주화(오른쪽)씨와 백도라지씨. @이치열 기자.
 

민주화씨는 “저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까지 이 자리에 나와주신 것 같다”며 “희망을 보는 것 같다. 아버지가 여기 계신 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일어나실 거라고 믿는다. 아버지가 일어나셔서 직접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실 것”이라고 했다. 

큰 딸 도라지씨는 “아빠가 쓰러진 지 3주가 됐다”며 “아빠가 다치셨을 때는 경찰 차벽에 둘러싸여 경복궁에서 병원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오늘은 경찰이 시위대를 보호해준 것 같다. 앞으로의 집회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라지씨는 병석에 있는 백씨에 대해 일언반구 없는 정부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을 했다. 도라지씨는 “경찰을 비롯해 안전행정부, 행정 수반은 아무 말도 없다”며 “이번 집회를 통해 그들이 느끼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발언대에 오른 정현찬 한국카톨릭농민회 회장은 “이렇게 많은 군중들이 모인 까닭이 무엇인지 박근혜 정권은 생각해봐야 한다”며 정부 비판을 이어갔다. 백씨는 카톨릭농민회 본부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오랜 세월 농민 운동을 해왔다. 

정 회장은 “백남기 동지는 농민들이 제대로 된 농사를 짓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국회는 한중FTA를 처리했다.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농약을 마시는 농민들이 속출할 것”며 “노동 악법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 역시 노동개악이 이뤄지면 노동 현장에서 쫓겨나 노동자들이 죽어나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백씨 동료인 농민 유영훈씨는 “지난주 백남기 선생의 뇌파 검사를 실시했다”며 “의료진에 따르면, 뇌파가 희미하게 살아있는 것으로 나왔다. 또 팔이나 발을 들었을 때 반응이 있다고 한다”며 현재 백씨 상태를 전했다. 

당초 박 대통령이 불법시위 엄정 처벌을 강조하며 해외 순방을 떠났던 터라 집회 참가자와 경찰 사이의 충돌이 우려됐으나 지난달 14일 민중총궐기와 같은 대규모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날 경찰은 현장 교통관리에 치중하며 차벽·물대포 등 충돌을 유발하는 조치를 자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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