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복면 쓴 시위대를 테러리스트 IS에 비유한 이후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복면금지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하지만 복면금지법이 실제 통과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19대 국회 회기가 얼마 남지 않은데다 야당이 반대하고 있다. 2003년, 2008년 등 여러차례 도입하려다 폐기당하기도 했고 헌법재판소도 이미 2003년 “집회 참가자는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여당이 복면금지법을 내세우는 목적이 법안 통과가 아니라는 의심이 가능한 대목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복면금지법의 문제점과 대응 방안’ 토론회에서 “복면금지법을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논란을 불러일으켜서 다른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꿍꿍이속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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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수는 “복면이라는 말은 헌법상 권리인 집회를 범죄처럼 보이게 만든다. 민중총궐기는 체제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국정교과서 반대, 노동개악 반대, 쌀 값 안정 등 정책에 대한 반대시위였다”며 “그럼에도 정권은 ‘복면’을 통해 집회시위를 정책이 아닌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만들어버린다”고 지적했다.

   
▲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복면금지법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가면을 쓰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정의당 주최로 열렸다. 사진=조윤호 기자
 

한 교수는 또한 “시위대와 IS의 등치는 막연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공포심은 정권의 존재 터전을 만든다. IS라는 테러리스트가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 땅, 우리나라에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며 “이러한 공포심을 기반으로 테러방지법을 만들고 권력기반을 확고히 한다는 전략이 숨어 있다.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담긴 함의는 연말정국과 내년 총선을 공안정국 하에서 치르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정부여당의 시도는 복면금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분위기 조성”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위헌판정을 받은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를 예로 들며 복면금지법에 위헌 요소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복면금지법은 일종의 ‘집회실명제’로 집회나 시위에 나오는 행위 자체를 신원을 공개한 상태에서 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집회실명제는 2012년 위헌판정을 받은 인터넷게시판 실명제와 마찬가지로 위헌”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국민은 자신의 개인정보를 국가에게 공개하지 않을 사생활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범죄수사에의 필요성’ 같은 특별한 공익이 있는 경우에만 사생활 및 사적인 정보의 공개를 강제할 수 있다. 신원 공개도 마찬가지”라며 “부동산실명제나 금융실명제는 사기 및 탈세의 위험성 때문에 존재한다. 자동차 번호판을 달도록 하는 것은 자동차의 파괴성과 이동성 때문인데, 집회 시위가 자동차 운전이나 금융거래처럼 위험한 행위인가”라고 반문했다.

정부여당은 민중총궐기에서 벌어진 폭력적인 모습을 예로 들며 폭력불법시위를 한 이들을 검거하기 위해 복면을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박경신 교수는 “헌법은 작은 위험이 있다하더라도 집회라는 권리의 행사가 차별받아선 안 된다고 보고 있다”며 “스포츠경기나 콘서트장에 모인 군중들도 질서 위반이나 기물파손 등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행동을 저지를 때가 있다. 특별히 범죄 위험이 더 높지 않은 집회시위 참가자에 대해서만 신원공개를 의무화하는 것은 헌법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캡사이신이 들어간 물대포를 쏘자 시위대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집회 참가자들이 복면을 왜 쓰는지에 대한 고려가 우선이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달 14일 민중총궐기에 참석했던 김경용 정의당 청년학생위원장은 “집회현장에서 시민들은 경찰의 채증 카메라를 보고 분노했다. 짙은 캡사이신도 두건이나 마스크를 쓰게 만드는 요인”이라며 “자유로운 집회와 시위를 허용하지 않은 우리 문화와 제도적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스크나 복면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청년들 입장에서는 채증을 잘못 당해서 소환장이 발부되면 취업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부담감이 들고, 실제 그런 문제 때문에 집회에 못 나오는 청년들도 많다”며 “공무원을 꿈꾸고 있는 청년이 마스크라도 써서 익명성을 보장 받은 채 잘못된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복면을 쓰지말라는 식의 태도는 청년들의 자유로운 정치참여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 역시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등 다른 선진국가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쉽게 폭동으로 변질되어 인근 상가에 대한 방화와 약탈, 주변 차량에 대한 방화로 이어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집회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충돌은 집회 참가자들과 이들을 강압적으로 해산시키려는 경찰 간에 발생한다”며 “기본권 제한이 아니라 경찰이 강압적 집회관리방식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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