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노려라.’ 날이 갈수록 방송 채널이 많아지고,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틈새시장을 노리는 방송사의 전략이다. 

방송사들은 기존에 대중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건드려 시청률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개인이 시청자인 동시에 콘텐츠 생산자인 시대가 되면서, 방송사들은 범람하는 콘텐츠 속 생존 전략이 절실해졌다. 1인 미디어를 차용하고, 라디오와 예능을 섞는다. ‘개취 존중’(개인 취향 존중) 콘텐츠를 앞 다퉈 내놓으며 흩어진 시청자들을 TV 앞에 앉히려 한다.

현재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가족 혹은 유사 가족의 모습을 강조하는 흐름과 개인을 단독자로서 여기는 흐름으로 나뉜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오! 마이 베이비’는 실제 가족이 등장한다. 

MBC ‘무한도전’, KBS ‘1박 2일’ 등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는 ‘무도 멤버’, ‘1박 2일 멤버’라는 가족과 유사한 준거 집단이 등장한다. 이들 멤버들은 미션에 따른 경쟁 혹은 ‘복불복’으로 라이벌이 되지만 밑바닥에는 동료 이상의 끈끈한 연대감이 묻어난다. 장수 프로그램의 햇수만큼 켜켜이 쌓아온 멤버들의 유대감은 프로그램의 전통성이자, 방송의 지분을 넓히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대세적 흐름 속에서 ‘집단’보다 개인의 분절성을 포착하는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있다. MBC ‘능력자들’, JTBC ‘현생 인류 보고서-타인의 취향’(이하 ‘타인의 취향), XTM ‘수컷들의 방을 지켜라’(이하 ‘수방사’) 등이 대표적이다. 남들이 보기엔 희한한, 하지만 절로 고개를 끄덕일 만한 ‘무언가’를 지닌 개인들의 향연이다. ‘괴수 덕후’는 영화 속 음향 소리만 듣고도 괴수 이름과 제작연도, 감독 이름까지 척척 맞춘다. 한 가지 분야, 주제에 몰두하는 어둠 속의 전문가 오타쿠, 이른바 ‘덕후’를 재조명하는 것이다.(‘능력자들’)

   
▲ XTM의 ‘수컷들의 방을 지켜라’는 집단보다 개인의 분절성을 포착하는 대표적 프로그램이다. ⓒXTM
 

XTM ‘수방사’는 또 어떠한가. 상식의 선을 넘어서 의뢰인의 취향을 저격한다. ‘수방사’ 제작진은 일주일에 다섯 번 음주는 기본이고, 한 달 술값이 200만원에 상당하는 애주가를 위해 7080 감성주점을 표방한 포장마차를 거실에 재현한다. 낚시 애호가에게는 5톤 바닷물을 넣은 낚시터를, ‘당구장 7일 7방문’하는 의뢰인에게는 1톤짜리 당구대를 거실에 설치해준다. 뒷감당이 되지 않을 법한 ‘취향 저격’이다. 진행자는 의뢰인이 아내의 반발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는 각서를 받아내는 등 ‘병맛스러움’을 연출한다. 이에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JTBC ‘타인의 취향’은 일상 속 개인의 취향을 보여준다. 취향에 따라 즐기고, 취향에 맞춰 살아가는 신인류, 호모 테이스트쿠스(Homo tastecus)를 표방한다. 방송 시작 당시 MBC ‘나 혼자 산다’ 포맷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나 혼자 산다’가 ‘무지개 회원’(싱글의 외로움, 고단함을 서로 기대며 산다는)이라 불리는 ‘싱글 공동체(연합체)’ 성격이 짙었다면, ‘타인의 취향’은 개별성을 앞세운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사는 유병재·유규선의 더부살이는 현격한 취향 차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남의 집 반찬은 절대 먹지 않는 유병재와 엄마표 김치찌개를 여러 번 권하고야마는 유규선은 아웅다웅한다. 

사실 ‘새로운 무언가’를 갈구하는 방송가에서 ‘취향’은 그렇게 핫한 아이템은 아니었다.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tvN ‘화성인 바이러스’의 경우 누군가의 특별한 능력, 취향을 거의 탐사보도 수준으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다만, 이들 프로그램은 특이한 누군가를 볼 때 휴머니즘으로 녹여내면서도 ‘배제’의 시선을 드러낼 때가 있다. 예컨대 설탕 혹은 왕소금을 과도하게 먹는 출연자들은 프로그램 말미에 판박이처럼 병원에서 진단을 받는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에도 ‘자제하라’는 당부가 이어지고, 정상 범주 바깥에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화성인 바이러스’도 당초 기획 의도와 달리 출연자의 취향을 흥밋거리로, 혹은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묘사해 논란을 자초했다. 

이처럼 방송가에서 개인의 취향을 ‘구별 짓기’에서 ‘다름’으로 좀 더 자연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변화된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 시대라지만 대중의 공감대를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또한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유명 BJ가 나올 정도로 평범한 개인이 생산하는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어쩌면 방송사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진 개인의 취향을 씨줄과 날줄을 엮듯이 ‘취향 맞춤형’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에게 선보이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과연 누군가의 취향과 감정을 공유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은 소통의 욕구를 채울 수 있을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