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하고도 반이나 더 지나버린 세월호 침몰. 모두가 슬퍼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그 사건을 다룬 이 다큐에 대해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까?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다이빙 벨’과 비교하는 (것일) 것이다. ‘다이빙 벨’이 세월호 침몰 직후의 구조 작업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나쁜 나라’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모습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면서 이들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견디고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 속에 나타난 그들은 일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한가닥 희망을 품고 팽목항에 머물다가, 진상을 알기 위해 국회에서 시위를 하다가, 청와대 근처에서, 광화문에서 단식을 하며 강하게 요구하고 또 요구한다. 어떤 것도 진행되지 않으니 그들이 하는 것은 오직 하나이다. 요구하는 것. 더 이상 그들에겐 생활이 없다. 길거리가 그들의 잠자리고 집이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는 번번이 묵살되고, 여야 타협으로 만든 특별법은 유가족이 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지금도 길 위에 있다. 다큐는 이 과정을 천천히 따라간다.

정치권에 대한 유가족의 ‘희망 없음’을 첫 장면부터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심재철 의원을 필두로 한 여야의 국회의원이 팽목항으로 와 유가족과 대화를 한다. 그들은 세월호만을 위한 법을 만들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더 이상 대화가 진행되지 않으니 일부 유가족은 나가버린다. 진지한 유가족의 질문에 대답하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팽목항에 왔을까?   

   
▲ 영화 ‘나쁜나라’ 포스터
 

이 사건을 대하는 야권도 마찬가지다. 첫 장면에서 야권의 국회의원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아니면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편집했을 것일 수도 있다. 여당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과 유가족이 대화를 하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정치적 목적을 지닌 국회의원들과, 아이를 잃은 유가족이 지닌, 사건에 대한 동일시와 슬픔의 깊이는 너무도 다르다. 그들은 한낱 ‘정치꾼’일 뿐이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팽목항을 방문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했지만, 청와대 근처에서 번번이 길이 막혔다. 국회에 연설하기 위해 들어가는 대통령에게 큰 소리로 외치지만 들은 척도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갈 뿐이다. 결국 정치권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 적당히 협상해 특별법을 만들어 조사하는 시늉만 할 것이다. 유가족은 그렇게 생각한다.

   
▲ 영화 ‘나쁜나라’ 스틸컷
 

결국 속이 타들어가는 것은 유가족이다. 자식을 잃었으니 그들의 가슴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러나 이들을 더 아프게 하는 이들이 있다. 유가족이 하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이들. 그리고 유가족이 절대 믿을 수 없다는 언론들. 이제 유가족은 확실히 깨닫게 된다. 냉혹한 세상. 결국 그들이 단결해 싸워야 한다는 것도.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교황의 광화문 행진 장면일 것이다. 혹시 유가족을 위로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단 10초 안에 할 말을 정리하고 편지를 준비했던 그들 앞에 교황이 지나간다. 소리치는 유가족을 본 교황은 차를 세우고 그들에게 다가간다. 교황 손에 깊이 입을 맞춘 유민이 아빠는 말한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특별법 제정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기도해 주십시오.” 교황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편지를 받은 후, 자신의 가슴에 있는 노란 리본 배지를 보여준다. 종교가 인간의 한계에서 오는 아픔을 위로하고 고통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면, 교황은 정말 위대한 종교인이다. 나는 분명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그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함께 아파하지 않는가!  

   
▲ 영화 ‘나쁜나라’ 스틸컷
 

영화를 다 보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어쩌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이것이 아닐까? 영화 관람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라 영화 관람 이후 다시 세월호 침몰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 아직까지 아무 것도 것도 해결되지 않은 이 사건. 우리는 그간 숱한 대형 사고에서 여전히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그 믿음,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결국 이런 참사를 만들었지 않을까? 그렇게 번 돈은 사슬처럼 상향 고리를 만들지 않을까? 안전보다는 돈벌이에 우선한 것이 근본 문제일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안전에 대해 깊이 각성하고 철저하게 대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그 이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많은 이들은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가? 아직 우리는 모른다. 직접적으로 물어보자. 왜 연안 해변에서, 바로 앞에 섬이 있는 곳에서 침몰했는데 구조하지 못했는가? 대서양 한가운데서 침몰한 타이타닉도 아닌데……. 결국 이것이 먼저 밝혀져야 할 것이다. 유가족이 원하는 것도 이뿐이다.

   
▲ 영화 ‘나쁜나라’ 스틸컷
 

사족. 이 영화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토록 큰 슬픔을 우리는 여전히 안고 살아가는데, 세상은 이제 이 사건을 잊으려 한다. 아니 잊혀지고 있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나쁜 나라>가 무척이나 반갑다. 적어도 기록을 통해 그 사건을 잊지 말자고, 유가족은 여전히 고통스럽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그것에 동의한다면, 이 영화는 너무도 슬픈 영화이다. 보는 내내 관객을 무척이나 힘들게 만드는 영화. 이런 영화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래서 슬프고도 슬프다. 냉철하게 분석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잊지 않고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여전히 9명의 실종자는 세월호 선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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