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에 진지하고 위태로운 눈빛을 한 이수인(지현우 분) 옆에 선 한 남자가 있다. 이수인과는 달리 서글서글한 눈매에 장난기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남자는 주강민 지부장(현우 분)이다. 노사갈등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 치곤, 그리고 지부장이라는 타이틀을 단 사람 치곤 어쩐지 밝은 얼굴이다. 이수인의 옆에서 ‘누님들’과 준철(예성 분) 등 노조 구성원을 끌어안는 이가 주강민이다. 

배우 현우는 현재 방영 중인 JTBC 드라마 송곳에서 푸르미마트 일동점 노동조합 지부장 주강민 주임 역을 맡았다. 그를 지난 25일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만났다. 웹툰과 드라마 속 주강민의 서글서글한 웃음이 그대로 배우 현우의 얼굴에도 묻어났다. 웹툰 ‘송곳’을 모티브로 해 제작된 드라마 송곳은 푸르미마트에서 벌어지는 노사 갈등을 다루고 있다. 현재 10회까지 방송된 송곳은 오는 29일 12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 JTBC 드라마 송곳의 주강민.

현우는 지난 2008년 영화 쌍화점을 시작으로 각종 드라마와 뮤지컬, 예능프로그램 등에서 활약해왔다. 2010년 MBC 드라마 파스타, 2011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2011년 JTBC 드라마 청담동살아요 등에 출연했다. 2014년에는 KBS드라마인 ‘고양이는있다’에도 나왔다. 올해 XTM의 ‘닭치고 서핑’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배우 현우가 맡았던 역 중에 드라마 송곳의 역할이 가장 묵직하고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다. 출연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현우는 “이번 작품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출연을 마음먹은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JTBC ‘청담동살아요’에 출연했다가 김석윤 감독님이랑 친해졌어요. 지금 송곳 감독님도 그 분인데, 저한테 ‘송곳’이라는 작품을 내미셨어요. 무거운 작품을 해본적이 없는데 한번 이 작품을 같이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웹툰이 완결도 안났는데 드라마로 방영해도 괜찮냐고도 물어봤었거든요. 감독님이 저한테 작가랑 얘기 다 끝냈으니 걱정말고 한번 해보자시더라고요. 큰 고민 없이 하겠다고 했어요.”

물론 역할을 맡고 고민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동’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걱정이 됐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우는 “노조 지부장 역할 맡았다고 나중에 (기업에서) 광고도 안 들어오면 어떻하냐고 매니저형이랑 농담반 진담반으로 얘기하기도 했었다”면서도 “이번 작품을 통해 몰랐던 부분들을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고 답했다.   

   
▲ 주강민 역을 맡은 배우 현우. 사진=이치열 기자

‘노동조합 지부장’이라는 직함과는 달리 주강민은 강렬한 캐릭터는 아니다. 이수인과 구고신에 비해 오히려 누구보다 평범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현우는 말했다. 노동조합을 함께 하자는 이수인의 제안에도 처음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던 그다. 그런 그는 얼떨결에 노동조합 지부장 후보에 떠밀리듯 나섰다가 이수인을 꺾고 지부장이 된다. 노조 지부장이 되어서도 준철과 함께 야채청과 상점을 차리자는 꿈을 버리게 될까봐 갈등을 접지 못한다. 

“연기를 잘 못하면 그저그런 평범한 캐릭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주강민 나름의 매력이 있어요. 노조 안에서 이수인과 노조 소속 아주머니들, 동협(박시환 분)과 준철과의 사이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캐릭터잖아요. 노조 지부장으로서 노조 구성원 간 연대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매력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드라마 송곳의 주강민은 노동 ‘투쟁’이라는 강직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도맡는다. 지난 15일 방송된 8화에서 강민은 경찰에 출석요구서를 받고 긴장한 조합원에게 “누님들, 경찰서에서 언제 오라고 하든 저희가 경찰이랑 이야기해서 날짜 다시 잡을 거니까 그때 같이 가요”라며 밝은 웃음으로 다독이기도 한다. 노조 조합원을 위해서면 가끔 웃음을 잃기도 한다. 지난 21일 방송된 10화에선 새로 부임한 고과장(공정환 분)이 오랜 친구사이인 준철과 강민을 이간질하자 고과장에게 주먹을 날리기도 한다. 현우는 이런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메이커인 주강민의 모습이 “실제 내 성격과 90%정도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주강민과 푸르미마트 노조 조합원들처럼 배우 현우에게도 노동조합은 낯선 존재였다. 노동운동의 경험이 없던 현우는 현우도 캐스팅되고 난 다음에서야 노동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며 공부를 시작했다. 

“전 노동조합에 있어본 것도 아니고, 노동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이전엔 지나가다 집회가 열리는 걸 보고는 불만이 있어서 나왔겠거니 싶었던 정도였습니다. 정작 드라마 캐스팅 되고 나서 노동 문제와 노동조합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어요. 책을 보면서 감독님이나 우현 선배, 안내상 선배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요.”

   
▲ JTBC 송곳 홈페이지 갈무리.

‘시시한 약자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 드라마 송곳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사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현우는 이 대사를 꼽았다. 현우는 “노동조합이란게 결국 특별한 누군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아무 것도 없는 약자와 함께 싸우는 그런 존재라는 걸 설명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꼭 특별한 어떤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기 보다는 송곳의 모든 장면들이 다 인상적이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노동조합의 조합원 아주머니분들이나 청소부 아저씨들이나 참 연기를 잘해주시기도 하고 공감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드라마가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시점에서 주강민 역을 맡아 가장 힘든 점을 물었다. 인터뷰 내내 주강민처럼 서그러웠던 현우의 표정이 한결 진지해졌다. 현우는 본인이 경험하지 않았던 주제도 능숙하게 표현해야 하는 연기자로서의 숙명같은 어려움도 있다고 답했다. 지부장 역할이라는 간접경험을 통해 알게 된 노동자의 현실도 답답함에 한 몫했다. 2003년을 배경으로 했던 드라마 송곳의 현실과 2015년의 현실이 크게 나아지지 않은 사실도 드라마 송곳에 출연한 뒤 느낀 점 중 하나다. 현우는 “내 이야기가 아닌데도 연기하다 울컥한 적이 있다. 내 이야기였다면 얼마나 더 안타까웠을까 싶더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노동문제라는 실타리 속에선 누구 하나 명백하게 나쁜 사람을 구분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현실도 깨달았다고 현우는 답했다. 현우는 “많은 사람들이 송곳에 공감한 이유는 현실 속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송곳에서 가장 공감했던 캐릭터는 정부장이에요.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죠.  ‘나도 위에서 까라니까 까는거다’,‘안하면 나도 잘린다’라고 하잖아요. 미운데 미워할 수만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수인과 달리 정부장은 현장 직원에서 부장이라는 타이틀까지 밑에서부터 엄청 노력해 올라간 인물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이러니한건 드라마 속에서 제일 비현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되는 이수인과 구고신이 실존인물이라는 점이죠. 이수인은 참 곧고 대단한 사람이에요. 근데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참 답답했을 것 같지 않나요. (웃음)”

현우는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힘을 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이제 끝을 맺지만 현실은 시작하면 끝을 맺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기에 지금도 어디선가 애쓰고 있는 이들에게 응원하고 싶다고도 전했다. 

배우 현우 개인에게 송곳이란 작품은 어땠는지 물었다. 주강민 특유의 장난기 어린 얼굴로 현우는 답했다. 

“예전에는 밝고 어린 역할을 많이 맡았었는데 이번 역할을 통해 개인적으로도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아요. 다만 다음에는 좀 달달하고 로맨틱한 캐릭터를 맡고 싶어요. 송곳에서는 시환씨랑 러브라인 비슷하게 나온게 전부였잖아요. 상대 여자 배우가 없었으니까요. 이수인 과장은 옆에서 맨날 진지한 표정만 짓고 있지...드라마라면 그래도 로맨스 하나쯤은 있지 않나 하는 편견을 제대로 깨준 작품이었어요. (웃음) 앞으로도 송곳만큼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배우 현우. 사진=이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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