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독일 사전출판사는 매년 개최하는 '올해의 청년 신조어' 선정 투표에서 '메르켈하다'(merkeln)라는 신조어 동사가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메르켈하다’라는 말의 뜻은 결단력 없는 메르켈 총리의 국정운영을 비꼬아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트위터에서 ‘박근혜스럽다’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타임라인에 꽤 많은 글들이 뜬다. ‘박근혜스럽다’는 보통 정부 정책을 질타하고 결론을 맺는 말로 쓰인다. 이런 식이다. “어떤 기업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느냐'라는 입사 면접 질문을 했다고 하는데 '박근혜스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박근혜스럽다’ 단어에 대해 "목적을 위해 어떤 나쁜 짓을 저질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표현하는 형용사"라고 정의하는 블로거도 있다.

최근엔 ‘박근혜스럽다’라는 말의 정의에 "쪼잔하다"라는 뜻이 포함될지 모를 일도 생겼다. 감기에 걸려 몸이 좋지 않다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불참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언론이 '협량(狹量)의 정치'라는 말로 짐짓 얌전하게 박 대통령의 행보를 비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노무현 정부 때에도 '다 노무현 때문이야'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무조건적인 혐오에 가까운 말로 통했다. ‘박근혜스럽다’라는 말도 대중들의 심리 저변에 '이게 모두 박근혜 대통령 때문이야'라는 생각이 깃들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 대통령이 지난 2012년 9월 기자회견에서 "5·16, 유신, 인혁당 사건은 헌법 가치를 훼손되고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인혁당 사건 유족에게 사과을 했을때만 해도 발언의 맥락상 진정성 논란을 일으키긴 했지만 아버지 박정희를 뛰어넘는 정치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집권 3년차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을 봤을때 ‘박근혜스럽다’라는 말이 더욱 나쁜 방향으로 확대돼 쓰일 여지가 많아 보인다. 특히 박 대통령이 의회정치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은 우려스러울 정도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국회가) 맨날 앉아서 ‘립 서비스’만 하고 자기 할 일을 않는 건 말이 안 된다. 위선이다"라고 말했다. 공개석상에서 '국회가 손을 놓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줄곧 쏟아냈지만 최근 박 대통령의 발언은 그 강도가 더욱 세졌다. 국회 무능력을 부각시켜 정치혐오를 조장할 수 있는 말이면서 넓게 해석하면 삼권분립의 한 축인 의회를 부정하는 듯한 말이다. 

정치는 본디 세상을 타협과 설득의 공간이라고 상정하고 상대와 밀고당기는 싸움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타협과 설득은 온데간데없이 ‘남의 탓’이라는 한마디로 상대방을 몰아세우고 이제는 상대방의 존재(의회)를 부정하면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최근 자신의 책에서 "유능한 정치인이라며 타협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정치인에게 부여된 일종의 숙명이고 천형(天刑)"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과 신뢰 담론은 자신의 소신을 고집하는, 그럼으로써 대화와 타협보다는 긴장과 대립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말이 좋아 원칙 고수지 실상 타협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는 걸 숨기는 허울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의회 민주주의라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높다. 멀리볼 필요도 없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보자. 

그는 지난 17일 GQ와 인터뷰에서 의회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통해 정부의 정책을 입안하는 일이 쉽지 않았음을 털어놨다.

"일단 우리 당을 먼저 설득해야 하고, 옳은 일을 다른 당에서 반대하는 것도 피해야 하는데, 지금 이 소송 건이 있고, 이러저러한 로비가 있고, 또 원칙적으로 정부기구들은 항상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군. 옳은 정책을 알아내는 것뿐 아니라, 계속 바뀌는 동맹을 쉴 새 없이 만들어 가며 실제로 정책을 도입하고 시행해서 결과를 내는 데 아주 많은 노력이 들어갑니다"(허핑턴포스트코리아 18일자 GQ 인터뷰 : 오바마가 말하는 '대통령의 고뇌')

여야 뿐 아니라 로비단체와 이해당사자들까지도 설득하고 관계를 풀어야 하는 게 대통령의 역할임을 체득한 발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의회를 그저 걸림돌로 인식하는 듯하다.

   
▲ 박근혜 대통령
 

박 대통령의 ‘고립의 정치’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이 '특별 지침'에 따라 새누리당이 발의한 복면 착용 금지법을 두고 조롱하는 세태만 봐도 그렇다. 박 대통령이 불법 시위 원천 봉쇄하겠다는 뜻과 달리 공권력 정치 편향적으로 행사되고 있다며 반감만 커지고 불복종 운동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오는 12월 5일 민중총궐기에 박근혜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가면을 쓰고 나오면 물대포는 맞지 않을 것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도 돌고 있다.

정치에 가설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박 대통령이 공권력 행사 과정에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예를 들어 진압 경찰에 이름표를 부착하는 방안이 있다. 집회 시위 현장에서 진압 경찰에 이름표 달기를 공식화하면 우려하는 공권력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효과를 주면서 향후 공권력 행사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 이에 더해 사경을 헤메고 있는 백남기 농민에 대해 어찌됐든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사건이 발생한만큼 사과의 메시지를 던졌더라면 일정정도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방안을 원칙을 저버린 '타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공권력을 비난하는 현실 앞에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것이며 그것이 곧 누구를 위한 원칙인지 따져봐야 한다. 이대로라면 10년 뒤 ‘박근혜스럽다’라는 말은 최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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