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복면 쓴 시위대를 테러리스트 IS에 비유한 이후 새누리당이 잇따라 복면금지법을 발의하고 있다. 하지만 복면금지는 이미 여러 차례 폐기된 법인데다 이미 위헌 판정까지 받은 상황이라, 정치적 의도가 더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4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복면시위는 못하게 해야할 것이다. IS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 얼굴을 감추고”라며 사실상 복면금지법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다음날인 25일 새누리당 소속 정갑윤 국회부의장이 집회나 시위 때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집시법에 “폭행, 폭력 등으로 질서를 유지할 수 없는 집회 또는 시위의 경우에는 신원확인을 어렵게 할 목적으로 복면 등의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주최자의 준수사항을 거듭 위반하는 경우에는 가중하여 처벌하도록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26일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집시법 개정안 한 발 더 나아갔다. 복면을 금지하면서 “신원을 노출하면 안 되는 부득이한 이유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복면도구를 착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집회 시위에서 복면을 착용해도 되는 경우를 대통령령에 맡긴 셈이다. 또한 복면을 제거할 것을 3회 이상 요구받고도 따르지 않으면 해산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신설했다.

이런 법안들은 현실적으로 통과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19대 국회 회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인데다 야당이 반대하고 있기에 논의조차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김성수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25일 브리핑에서 “복면금지법은 평화 시위를 보장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집회·시위의 자유를 막아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옴짝달싹 못하게 묶으려는 법”이라고 밝혔다. 

   
▲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캡사이신이 들어간 물대포를 쏘자 시위대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역시 26일 정책조정회의에서 “복면 착용이 필연적으로 불법과 폭행으로 이어진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기 때문에 ‘현존 명백한 위험의 법칙’에 따라서도 복면 착용을 처벌하는 것은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복면금지법은 우리당이 절대로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복면금지법은 이미 2003년, 2008년 등 여러 차례 도입하려다 폐기된 법안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9년 복면금지법에 대해 “복면 등의 착용 금지 규정은 복면 등을 쓰고 집회 등에 참석하면 불법 폭력 집회를 하려 한다는 잘못된 전제를 기초로 하고 있어 집회·시위의 자유를 중대하게 위축시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3년 10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대한 위헌소원 결정에서 “집회 참가자는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며 복장의 자유도 침해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여론도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리얼미터가 ‘CBS 김현정의 뉴스쇼’의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복면금지법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54.6%로 찬성한다는 40.8%보다 14% 가량 높았다. 

실제 도입하기에는 힘든 상황인데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복면금지’를 부르짖는 배경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봐야한다. 우선 박 대통령이 또 다시 이념카드를 이용해 ‘적 만들기’에 나서면서 지지층 결집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번 폭력사태는 상습적인 불법 폭력 시위단체들이 사전에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주도했다”고 밝혔다. 또한 조계사에 피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거론하며 “공권력을 우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을 불법폭력단체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셈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14일 불법폭력 시위 벌인 세력이 또 다시 12월 5일 시위집회 신청한다고 하는데 이 불온한 세력이 신청한 집회 불허해야 한다. 공권력은 이들을 원천봉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법폭력이라는 잣대에 ‘종북’ 딱지까지 붙일 조짐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기도한 통합진보당의 부활을 주장하고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까지 등장했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이 주도한 집회에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전 의원을 연결시킨 것이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북한의 대남공작조직 225국에 포섭돼 지령을 받은 목사가 민주노총 가맹조직의 간부 및 통합진보당 간부 출신 등과 지하조직 결성을 시도한 혐의로 국가정보원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국정원은 민주노총이 주도한 14일 집회와 이 목사 등이 북한으로부터 받은 지시 사이에 연관 관계가 있는지 조사 중이라고 한다. 민주노총을 북한과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를 찾아내겠다는 뜻이다. 

복면금지법을 이러한 ‘민주노총 적 만들기’ 과정의 일환으로, 민주노총 등 집회 시위를 많이 주도하는 시민사회 및 노동단체들에게 범죄자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한 여론전의 일환으로 봐야한다는 뜻이다.

   
▲ 지난 24일 국무회의를 주재 중인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나아가 복면금지법이 19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 해도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이 없다. 국회를 비판할 ‘꺼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회가) 맨날 앉아서 ‘립 서비스’만 하고 자기 할 일을 않는 건 말이 안 된다. 위선이다”라고 말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집권 4년차에 치르는 총선은 정권심판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이에 맞서 ‘국회 심판론’을 계속 쌓아가고 있다”며 “복면금지법이든 경제살리기 법이든 정부는 하자고 했는데 국회가 발목을 잡는다는 식의 논리를 계속 펼칠 것이며, 이를 통해 총선에서 정권 심판론을 방어하고자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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