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감시의 눈을 잃은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다. ‘천재소년’으로 불리던 송유근씨(19)가 내년 2월 최연소 박사가 된다는 보도가 최근 쏟아졌지만 25일 ‘과학동아’ 보도에 따르면 미국천문학회는 “송유근 논문이 지도교수인 박석재 연구위원의 2002년 논문과 거의 동일하다”며 논문 철회 결정을 내렸다. 

지난 4월 15일 SBS ‘영재발굴단’은 ‘수학천재’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송유근의 근황을 공개했다. 한국천문연구원 박사과정 중인 송유근은 아이들에게 “난 5살 때 곱셈을 했고 7살 때 미적분을 풀었다”며 “대학에 와서 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최근)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논문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천재소년이 박사학위를 눈앞에 눈 상황은 언론에게는 좋은 아이템이다. 지난 8월1일 ‘더팩트’는 <천재소년 송유근 근황 19세 소년으로 성장 “박사학위 준비한다”>는 기사를 통해 SBS의 4개월 전 방송내용을 전했다. 더팩트는 “올해 19세 송유근은 키 180cm의 청년으로 성장해 있어 주목을 받았다”며 “박사 학위를 앞둔 송유근은 유창한 영어로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는 등 여전히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한술 더 떠 MBN은 연예면에서 더팩트와 똑같은 내용의 기사를 내놨다. 어뷰징인 셈이다. 

이후 송유근은 ‘천재소년’에서 ‘최연소 박사’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 10월19일 국민일보는 <“천재소년, 잘 크고 있다” 송유근 첫 SCI논문 감탄>에서 “첫 SCI논문 ‘선대칭의, 비 정상성 블랙홀 자기권: 재고(axisymmetric, nonstationary black hole magnetospheres: revisited)’ 첫 페이지가 18일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회자됐다”고 보도했다.

   
▲ 지난 18일 YTN 보도화면 갈무리.
 

19세. 정규교육과정이라면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나이지만 송유근은 박사과정에 있으니 남들에 비해 빠르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연구실적은 나이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논문의 수준으로 평가돼야 한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는 지난 18일 <천재소년 송유근, 내년 2월 최연소 박사 된다>는 기사를 통해 11월17일 송유근이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됐다며 박사로 확정지었다. 2016년 2월, 18살 3개월의 나이로 송유근은 최연소 박사가 되는가 싶었다.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있는 한국에서 송유근이 19세의 나이로 박사과정 학생으로 논문을 쓴다는 사실은 대단히 높게 평가된다. 하지만 그의 논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송유근에 대한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송유근이 ‘천체물리학 저널’에 게재한 논문이 지도교수인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천문우주과학 박석재 교수의 지난 2002년 논문을 베꼈다는 주장이다. 

출판물을 인용할 때는 따옴표로 묶어 참고문헌에 명시해야 하지만 이 기본적인 사실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학문적으로 보면 정확하게는 ‘표절’이 아닌 ‘확장’이다. 이공계에서 논문은 프로시딩(proceeding)과 페이퍼(paper)로 나눠지는데 프로시딩이란 학술지에 게재하지 않은 논문으로 학술회나 워크샵 등에서 발표된다. 박석재 교수의 논문이 프로시딩이다. 

프로시딩을 기초로 논문을 작성하는 것을 ‘확장’이라고 하는데 ‘확장’은 ‘표절로 간주되진 않는다. 다만 이 역시 출처표시를 해야하는데 송유근의 논문은 확장판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책임은 박석재 교수에게 있다. 엄태웅 워털루 대학 연구원은 자신의 SNS에 ’송유근 논문, 그렇게 쓰면 안 된다‘는 글을 통해 이같은 내용을 지적했다. 

엄 연구원은 “송유근의 졸업 논문이 지도교수 논문의 재림이라는 것도 무척 아쉽다”며  “세상엔 재미있는 연구주제가 너무나 많은데, 13년 전 논문을 골라 그것을 팠어야 했는지 정말 아쉽다”고 했다. 또한 박석재 교수의 논문은 인용된 적이 없었는데 그 논문을 유일하게 인용한 사람이 송유근이라며 이번 사태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 25일자 과학동아 단독보도 화면 갈무리
 

박석재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프로시딩과 송유근의 논문이 비슷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논문보다 송유근의 논문이 더 뛰어나다며 사실상 표절 사실을 부인했다. 많이 들어본 논리였다. 작가 신경숙의 ‘전설’이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을 베꼈다는 지적에 대해 신경숙을 옹호하던 논리 중 하나는 “신경숙이 미시마 유키오보다 더 뛰어난 작가”라는 주장이었다.  

박석재 교수의 블로그를 보면 최연소 박사 제자를 만들려는 박 교수의 열망이 느껴진다. 이는 사교육 시장에 자신의 아이를 밀어 넣으며 명문학교를 갈망하는 한국의 뒤틀린 교육열과는 닮아있지만 이제 자신의 독립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학자로 단련하는 스승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황우석 박사가 마치 신체 장기를 복제해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의 구세주가 될 것처럼 만든 데 큰 책임은 언론에 있었다. 하지만 황우석 박사의 논문은 표절로 드러났고, 그 과정에서는 인권침해와 교수와 연구원 간의 추악한 갑을관계도 은폐돼 있었다. 

황우석 사태처럼 이번 송유근의 논문 사태는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논문을 들여다봐도 수식으로 가득 채워진 그 내용을 상세히 알 수 없다는 점과 성과가 좋으면 과정에는 문제가 좀 있어도 괜찮다는 한국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참사다. 이 참사에는 언론이 마지막 감시자이길 포기한 탓도 크다.

송유근은 지난 21일 경기도 과천에서 열린 과학영재아카데미 강연에서 “‘천재’란 건 누군가의 사후 업적을 평가할 때 쓰는 말”이라며 “그러니 난 천재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천체물리학이란 분야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뿐”이라며 과한 관심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당시 ‘겸손하다’는 평가가 이어졌지만, 이제 보면 당사자는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싶다.    

송유근의 논문이 미국에서 철회하라는 결정이 나 UST의 결정에 관심이 집중된다. UST에서 송유근의 박사논문을 철회할 경우 최연소 박사 타이틀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UST 관계자와 박 교수는 미국천문학회의 논문 철회 결정에 대해 “조만간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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