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치킨게임’이 7년째 반복되고 있다. 지상파방송은 케이블 업계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게 재송신 대가를 올려달라는 입장이지만, 케이블 업계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상파는 ‘콘텐츠’를, 케이블은 ‘망’을 쥔 덕에 힘의 균형이 팽팽했지만,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는 케이블이 서서히 밀리는 모습이다. 관건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다. 재송신협상의 주도권이 IPTV로 넘어가면 케이블은 사실상 붕괴되고, 장기적으로는 지상파 역시 통신에 끌려다닐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와 케이블, 왜 싸우나

재송신은 유료방송이 지상파의 방송을 받아서 다시 송출하는 행위다.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 도입 이후 케이블이 지상파방송을 재송신했고 지상파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2008년 7월, 암묵적인 합의가 깨졌다. 지상파에서 케이블TV방송협회에 처음으로 재송신료를 요구하며 저작권 대가가 지불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케이블협회는 이를 거절했고 결국 소송전에 돌입하게 된다.

쟁점은 저작권이 인정되는지 여부였다. 지상파는 “우리 채널을 무단으로 쓰고 있으니 저작권료를 지불하라”고 요구했고, 케이블 업계는 “지상파는 무료보편적서비스인데 저작권료를 받는 게 말이 안 된다”며 맞받아쳤다. 이들은 서로가 지상파 재송신을 통해 이익을 봤다고 주장했다. 지상파는 “케이블이 지상파를 재송신하면서 채널 사이에 홈쇼핑을 껴 넣어 막대한 이익을 봤다”고 주장했으며 케이블 업계는 오히려 “재송신 덕에 시청범위가 넓어지면서 지상파가 광고수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지상파의 재송신료 요구는 ‘콘텐츠 제값받기’의 일환이었다. 코바코 독점체제가 무너지는 등 지상파의 광고시장이 침체되면서 지상파는 유료방송시장에서 수익을 거둬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지상파가 ‘디지털’을 대상으로 재송신료를 요구하면서 “난시청 해소에 기여했다”는 케이블측 주장을 반박할 수도 있었다. 지상파가 IPTV 출범 직전 “지상파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점을 쟁점화해 케이블은 물론 새로 출범하는 IPTV로부터 재송신료를 받아내기 위한 부수적인 목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일러스트= 권범철 만평작가
 

법정만 서면 지상파 ‘연전연승’

지금까지 유료방송과 지상파는 67건(개별 사업자 기준)의 소송을 벌였다. 이 중 52건의 소송이 현재 진행 중이다. 소송이 협상과 병행됐기 때문에 대법원까지 가는 경우는 없었지만, 1심과 2심에서 법원은 연거푸 지상파의 손을 들었다. 지상파가 2009년 5대 MSO(복합종합유선방송사업자)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3건)에서 법원은 “케이블TV의 지상파 실시간 재송신이 지상파 방송사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을 통해 지상파는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에게 저작권을 이유로 재송신료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됐다. 

지상파는 케이블로부터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할 수 있는 판결까지 받아낸다. 지상파가 CJ헬로비전을 상대로 2009년 제기한 디지털상품 신규가입자 간접강제신청(6건)에서 법원이 “CJ헬로비전이 지상파 재송신을 하면 지상파3사에 각각 하루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한 것이다. CJ헬로비전에 한정한 소송이었지만, 사실상 다른 케이블업체 역시 언제든 같은 판결이 내려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12년 지상파가 티브로드와 현대HCN, CMB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서도 법원은 “케이블이 지상파 재송신시 하루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케이블이 지상파에 가입자 1인당 280원(1개 채널 기준)의 재송신료를 지급하기로 합의하며 1차 소송전이 막을 내렸지만 최근 다시 불 붙었다. 케이블 업계와 지상파가 맺은 재송신계약이 2014~2015년에 모두 종료되면서 지상파는 450원의 재송신료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지상파3사는 개별 SO와 남인천방송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24건)을 제기한 상태다. 지난 10월 지상파는 OTT 서비스인 티빙을 상대로 ‘재송신 중단’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지상파는 아날로그 방송에 대한 재송신료도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SBS와 지역 민방들은 각 지역 SO와 KT스카이라이프를 상대로 아날로그 가입자에 대해서도 재송신료를 지불해야 한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28건)을 제기했다. 이 28건 중 처음 내려진 지난 9월 울산법원 판결에서 법원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판단을 했다. 법원이 지상파 민영방송인 SBSㆍUBC(울산방송)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하며 “지상파가 케이블을 재송신해 부당이득을 얻은 것이 인정된다”고 판시한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쌍방기각이었지만 그동안 지상파의 ‘저작권 피해’에만 집중해온 판결과 달리 지상파의 ‘이익’이 있다고 본 것이다.

케이블 업계는 이 판결을 계기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분위기다. 현재 케이블TV방송협회는 “지상파가 케이블에 송출료를 줘야 한다”며 역공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업계와 학계는 물론 법원에서도 이 판결을 ‘예외적인 것’으로 분류한다. 지난달 OTT서비스인 티빙과 지상파의 재송신 소송 심문기일 조정 자리에서 CJ헬로비전측이 울산법원의 판결을 참고자료로 제출했지만 법원은 “기존의 판단과는 매우 다른 이례적인 것으므로 고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망’ 잃은 케이블, 제2의 블랙아웃은 없다

2011년 케이블 업계는 타협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막대한 배상금까지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블랙아웃(송출중단)’카드를 꺼내들었다. 전국 93개 SO는 2011년 11월28일 KBS2, MBC, SBS에 대한 HD방송 재송신을 중단했다. 이듬해 1월에는 케이블 업계에서 KBS2의 디지털과 아날로그 방송 송출을 하루 동안 중단하기도 했다. KBS 2TV 송출중단으로 1200만 가구가 KBS를 시청하지 못했다. 이를 통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됐지만 케이블 업계는 여야와 시청자의 비난을 받는 등 역풍도 만만치 않았다.

재송신 분쟁이 또 다시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면서 제2의 블랙아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블랙아웃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재송신분쟁이 시작된 2009년만 하더라도 케이블은 ‘망’을 쥐고 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유료방송 시장에서 케이블의 점유율은 빠르게 무너지는 추세다. 더욱이 SK텔레콤이 케이블 업계 1위인 CJ헬로비전을 인수하면서 시장의 주도권이 IPTV로 넘어갔다. 이후에는 도미노처럼 SO들이 IPTV시장으로 넘어간다는 우려가 나온다. IPTV업계 관계자는 “SK의 CJ헬로비전 인수 이후 LG도 다른 케이블 업계에 눈독 들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 지상파가 케이블에 재송신 대가를 요구하자, 케이블측은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상파를 끊는 초유의 블래아웃 사태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지상파의 태도도 이전보다 강경해졌다. ‘지는 해’를 상대로 지상파가 저자세로 협상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올해 방통위가 꾸린 재송신 협의체에 지상파는 불참을 통보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지상파에서 위원을 추천하지 않았지만 방통위가 대신 지상파를 대변할 수 있는 인사들을 선임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것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정작 방송협회 관계자는 “지상파가 참여한 바 없기 때문에 결과를 수용할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 

케이블 업계는 방송법 개정에 기대를 걸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최근 방통위가 재송신 분쟁에 ‘직권조정·재정’과 ‘방송유지재개명령권’을 갖는 방송법 개정안을 만들었으나 국회에서 ‘직권조정·재정’이 빠졌다. 케이블 업계가 블랙아웃을 하면 이를 재개할 권한은 방통위가 갖지만, 정작 분쟁에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케이블 업계가 블랙아웃을 강행하는 이유는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기 위한 것인데, 정부가 개입할 수 없게 되면서 법안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케이블TV방송협회 관계자는 “재송신 문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중재가 필요한 사안임에도 지상파의 반대로 인해 주요사항이 모두 빠졌다”면서 “원활한 합의가 불가능한 재송신 대가에 대해 정부가 합리적인 가이드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지상파 방송이 회원사인 방송협회 관계자는 “사적 협상에 관해 정부가 적극 개입하려는 것에 대해 시장 교란 우려가 있고 유료방송이 협상 자체를 회피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반대해왔다”고 지적했다.

   
▲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논의를 시작하자 지상파 3사는 지난 16일과 17일 자사뉴스를 통해 방송법 개정안을 비판하는 보도를 내보내는 등 저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시장 요동치는데, 정부는 땜질처방만

재송신 분쟁을 복기하면 정부는 늘 ‘땜질처방’을 했다. 재송신 분쟁은 2008년 벌어졌지만 방통위는 2010년 10월이 돼서야 제도개선 전담반을 만들고 대가 산정에 대한 실무협의체를 연다. 그러나 제대로 된 결론을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 됐다. 2011년과 2012년 블랙아웃이 벌어졌지만 방통위는 즉각적인 중재에도 실패했다. 최근 재송신 분쟁이 다시 불 붙자 방통위는 ‘지상파재송신협의체’를 만들고 적정한 재송신료를 책정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이 역시 제대로 된 결론을 짓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방통위가 사안을 적정한 재송신 대가산정을 목표로 접근하면서 큰 그림을 못 그리고 있기도 하다. 김동원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은 “대가산정은 누군가는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제각각인 해외사례를 인용해 반박도 가능하다”면서 “방통위가 여기에만 골몰할 게 아니라 진작 의무재송신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고 최소한 수신료를 받는 KBS2만이라도 의무재송신 채널로 지정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무재송신은 재송신료를 받지 않고 의무적으로 재송신하는 채널로 KBS1과 EBS가 해당된다. 이전부터 지상파3사를 의무재송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지난해 출범한 3기 방통위는 출범 때 “의무재송신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방통위가 어영부영하는 사이 시장상황이 급변했다. 지금은 지상파가 케이블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IPTV가 유료방송 시장을 삼키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케이블과 달리 통신3사에게 방송은 주력사업이 아니라 핸드폰과 TV와 인터넷을 묶어 파는 ‘결합상품’의 일부다. 방송만 틀어쥔 케이블처럼 재송신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김동원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은 “최근 통신3사가 모바일 IPTV에서 지상파를 뺐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라며 “CJ헬로비전을 SK가 가져가면 전체 유료방송의 3분의2를 IPTV가 가져간다. 케이블은 협상력을 크게 잃게 되고, IPTV에 종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 인수를 결정하면서 시장이 IPTV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용행태가 TV에서 모바일로, 실시간에서 비실시간으로 옮겨가는 것도 변수다. 이미 실시간 재송신보다는 VOD 대가산정 문제가 지상파와 유료방송 분쟁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상파가 아직까지는 콘텐츠 영향력이 큰 탓에 IPTV가 다소 밀리는 모습을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상파에 불리하다. CJ와 JTBC 등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의 콘텐츠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면서 지상파의 협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심영섭 한국외대 교수는 “지상파 플랫폼이 빠르게 무너지고, 케이블이 또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다. 그러다 예상보다 빨리 IPTV로 재편되고 있다”면서 “이처럼 시장이 통합되고 있으면 규제도 통합적으로 해야 하지만 정작 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로 나뉘어 버렸다. 부처가 나뉘면서 칸막이가 생기며 시장통합에 따른 준비를 하지도 못했다. 정책실패는 예견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케이블이 한때는 갑의 위치에 있었지만 지금은 약자이고, 장기적으로 보면 지상파에게도 불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이제 ‘망’은 사실상 통신이 가져갔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통신 주도의 시장에서 방송의 공공성을 어떻게 확보할지 미래부와 방통위가 고민해야 하는데 현재 상태로는 기대를 갖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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