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유감도, 어떤 위로도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공포와 위협이 대신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열린 국무회의에 참여해 11·14 민중총궐기 대회를 ‘불법 폭력 사태’라고 규정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박 대통령의 발언은 섬뜩함을 넘어 살벌하기까지하다. 박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살펴보자.
“구속영장이 발부된 민노총 위원장이 시위 현장에 나타나서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며 폭력집회를 주도했다”, “대한민국의 체제 전복을 기도한 통진당의 부활을 주장하고, 이석기 전 위원 석방을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까지 등장했다”, “특히 복면 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할 것”, “IS(이슬람국가)도 지금 얼굴을 감추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 “민주노총 위원장이 수배 중인 상황에서 공권력을 무시하고 계속 불법집회를 주도하는 것은 정부로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 “정부는 국민을 불안에 몰아넣고 국가경제를 위축시키며 국제적 위상을 떨어뜨리는 불법 폭력 행위를 뿌리뽑기 위해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서 대응해 나가야 할 것”, “이번에야말로 배후에서 불법을 조종하고, 폭력을 부추기는 세력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해서 불법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할 것”
서울 도심을 가득 메운 13만 시위대의 집회 및 시위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박 대통령은 시위대를 사실상 비국민 혹은 적으로 규정한 채 법과 공권력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박 대통령의 머릿 속에는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있는 권리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고, 이 기본권을 정부는 당연히 보장해야 하며, 집회 및 시위현장에서 벌어진 위법행위에 대해서만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 의해 처벌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다. 단지 박 대통령의 머릿 속에는 '내가 헌법이고 법이며, 거리에 나선 자들은 나를 거역한 자들이기 때문에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자들이므로 단호히 처벌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경찰이 발사한 물대포를 직격당해 의식을 잃은 60대 농민 백남기씨는 불법(?)집회에 참석해 위법(?)행위를 사람이므로 박 대통령의 관심 밖에 있다. 관심 밖에 있는 사람에게 유감과 위로와 사과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본디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원리 중 하나인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를 의미하며, 여기엔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이 헌법과 법률의 통제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법치주의가 주권자인 국민을 겁박하고, 위협하고, 제압하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가 아니라는 말이다. 불행히도 박근혜 대통령은 법치주의의 본질에 대해 전혀 모른다.
법을 수많은 비국민들을 제압하는 수단으로 동원하는 박 대통령을 보면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10년 전에도 시위에 참여했던 농민 2명이 공권력에 의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었다.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래와 같은 대국민 사죄를 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찰로 대표되는 공권력이 헌법과 법률의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대통령이었다. 또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의 통제를 벗어난 공권력의 남용에 의해 사망한 시민과 국민들에게 솔직히 사죄할 줄 아는 대통령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과잉진압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을 국가의 의무로 여기는 대통령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박근혜 대통령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비교불가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불행은 노무현 이후가 노무현의 발전적 지양이 아니라 철저한 반동이었다는데 있다. 대한민국에 드리운 반동의 그림자가 짙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