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 KBS 사장이 24일 취임식을 통해 22대 임기를 시작했다. 그에게 제기된 청와대 낙점설에 대한 우려에 비하면 무혈입성이라고 해도 될 만큼 조용한 임기 시작이었다. 똘똘 뭉친 여권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야권이 ‘청와대의 총체적인 승리’를 도왔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강동순 전 KBS 감사의 잇따른 폭로에도 불구하고 고대영 사장 임명은 청와대의 완벽한 승리였다. 이인호 KBS 이사장은 “우리가 고대영 사장을 받으려고 8개월 간 그 고생을 했느냐”고 볼멘소리를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임명권자의 입맛에는 맞췄다. 

이인호 이사장과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각서에 가까운 다짐을 받으며 청와대의 오더에 충실할 인물로 이사회를 꾸렸다. 이들은 사장 임명 과정에서 철통 보안을 지키며 고대영 후보를 무난하게 임명제청 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청와대 낙점설’에도 눈 깜짝하지 않았다. 언론시민단체들이 공개 질의한 사안에 대해서는 이인호 이사장은 “항간의 떠도는 소문”으로 치부하며 “대응할 필요 없다”는 답변을 보냈다. 

   
▲ 고대영 KBS 사장이 24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KBS
 

 

이태봉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사무처장은 “국정화, 노동정책을 비롯해 최근 이슈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대응은 ‘국민적 반대나 문제제기를 모른척 한다’는 것”이라며 “고대영 사장 임명도 박근혜 정부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 진영의 대응은 무기력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야당 추천 이사의 역할은 의미 있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7대 4라는 구조적 한계를 인정하다고 하더라도 작게나마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은 전략적 판단 ‘미스’였다. 

야당 추천 이사들이 최종 면접에 참석했던 것이 단적인 예다. 이들은 조대현 전 사장에게 4표를 몰아주면서 지난 1년간 그의 행정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만들었다. 동시에 여야 추천 이사들이 모두 참여한 이사회라는 명분까지 만들어 준 꼴이다. 

고대영 후보에 대한 청와대 낙점설이 제기되고 인사청문회가 끝난 후에야 야당 추천 이사들은 이사회 개최를 요구했다. 이인호 이사장을 비롯한 여당 추천 이사의 반대에 부딪혀 안건으로 상정하는 것은 결국 무산됐다. 내부 동력이 모자라면 외부로 이슈를 끌고 나와야 하는 데 그렇지 못했다. 

인사청문회는 맥없이 끝났다. 여당은 고대영 사장을 감싸기에 바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준비가 부족했다. 한 KBS 관계자는 “인사 청문 요청서가 접수되고 4일이나 지났는데 KBS에 자료 요청을 한 야당 의원들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언론시민단체 등이 24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앞에서 고대영 사장 반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야당 의원들의 무능력은 내년 총선을 앞둔 몸 사리기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한 야당 의원실 보좌진은 “정치인에게 언론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보도뿐만 아니라 농촌으로 갈수록 지역구 낙후 방송시설 교체 등 요구할 것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KBS 주 시청층은 고령층으로 굳어지는 추세다. 이를 감안하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의원 가릴 것 없이 KBS 사장에게 눈도장은 못 찍더라도 밉보이지는 말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KBS 내부 구성원은 갈렸다. 후보 시절부터 고대영 사장 ‘라인’이 있다거나 암묵적인 동의가 전제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강동순 전 KBS 감사는 사장 후보로 거의 모든 직군이 반대한 반면 고대영 사장은 많은 기자들이 임명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전했다. 

내부 동력이 모이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노보 특보를 내며 고대영 사장의 ‘청와대 낙점설’을 강하게 제기했지만 동력이 모이진 못했다. 한때 KBS본부와 KBS노동조합 사이에 논의됐던 총파업이나 인사청문회 당일 1일 파업 등은 성사되지 못했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지난해 길환영 사장 퇴임 당시에는 세월호 보도에 대한 분노가 청와대의 KBS 보도 개입 사건으로 집중되면서 사장 퇴임을 이끌어 냈지만 현재 국면에서는 국민적 관심사가 덜했던 측면도 있다”며 “여당 추천 이사회는 똘똘 뭉친 반면 야권이나 시민사회단체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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