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연거푸 소주잔을 들이켰다. 붉게 물든 얼굴에 눈물이 촉촉했다. 그는 "찌라시에 나오는 형편없는 인간과 술을 마셔줘 고맙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언론사 기자인 그는 회사 선후배들과 마찰을 빚었다. 며칠 되지 않아 그에 대한 '찌라시'가 퍼졌다. 그가 자신의 경력 사항을 부풀려 떠들고 다녔다는 내용이었다. 그 찌라시는 사실이 아닌 내용이 더 많았다.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아침마다 스마트폰용 메신저 응용 프로그램 '카카오톡(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 진동 소리가 울린다. 메신저 함을 확인하면 어김없이 찌라시가 당도해 있다.

동료 및 지인, 출입처 관계자가 보낸 것이다. 내용의 범위는 다양하다. 정치·경제·연예·스포츠·언론 등 분야를 넘나든다. 기업 내부 구조조정, 연예인의 사생활, 청와대 또는 정치권 인사, 언론사 내부 갈등, 특정 기자의 염문 혹은 추문 등등이다.

요즘 찌라시 앞머리 대부분에는 '받은 글'이라고 전제돼 있다. 어지간한 기자라면 찌라시의 디테일을 잘 알고 있겠지만,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찌라시 몇 개를 아래 옮긴다.

   
 
 

찌라시가 유포되는 속도는 가히 빛의 속도다. 현재 필자는 3인 이상이 모인 단체 카카오톡방(단톡방) 대여섯 군데에 참석해 있다. 단톡방 'A'에 찌라시 한통이 도착한 직후 다른 단톡방 'B'에 같은 내용의 찌라시가 올라오는 식이다. 유포되는 과정에서 내용이 추가돼 찌라시 몸집이 커지기도 한다. 확대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많게는 하루에 내용이 다른 10여개의 찌라시를 받기도 한다.

과거의 찌라시는 ‘소수들’만 위한 고급 정보였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여의도 증권가에서 속칭 '찌라시 모임'이란 게 있었던 모양이다. 전국 증권사 지점에서 취합한 정보들을 대기업 정보팀 또는 대관팀, 검찰·경찰,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공유하는 자리였다. 고급 정보가 없는 사람은 이 모임에 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정보를 주고 그 대가로 다른 이로부터 정보를 받았던 것이다. ‘찌라시 진입 장벽’이 높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몇 년 뒤 에프엔메신저 등 인스턴트 메시지 서비스가 증가함에 따라 상황이 급변한다. 소수만 주고받던 정보들이 이 서비스에 힘입어 불특정 다수에게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다. 철통같은 진입 장벽은 무너져 은밀한 정보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과거와 달리 너도 나도 찌라시를 받고 있다. 그저 일반 시민 사회에까지 양성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업계 종사자나 기자 같은 콘텐츠 생산자 사이에서 찌라시는 더 이상 ‘새로운 것(News)’이 아니다. 카카오톡 보급화가 찌라시 ‘유통 활성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카톡, 카톡, 카톡.’ 찌라시가 디지털화했다는 의미다. 요컨대 스마트폰 시대가 찌라시의 개념을 바꾼 것이다. 과거 찌라시는 여러 장의 A4 용지를 빼곡히 채운 정보들로 이뤄졌다. 이제 찌라시는 ‘받은 글’이라는 제목 아래의 간단하고 명료한 문장들(보통 1000자 ~ 1800자)로 구성됐다. 카카오톡 등 모바일 정보 유통망에서 퍼지기 딱 좋은 형태다.

물론 글로벌 규모 수준의 대기업 정보팀은 여전히 아무나 넘볼 수 없는 정보들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그룹은 2011년 김정일 북한 주석의 사망 사실을 언론이나 정부가 접하기 앞서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있다. 삼성을 포함해 다른 대기업들도 인수합병(M&A) 등 관련 실무자들만 아는 업계 고급 정보를 취합한다는 내부 전언도 들린다.

디지털 시대에도 망하지 않고 성업 중인 정보지 업체도 있다. 이들 업체는 찌라시를 A4 용지 묶음으로 만들어 고객에게 직접 배송한다. 이 정보들은 기업 윗선 일부에 보고될 뿐 철저한 보안 유지로 유출되지 않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전략이 시장에 먹힌 사례이다.

디지털 시대의 찌라시에는 명과 암이 존재한다. 일단 암. 찌라시가 기자들 또는 홍보 관계자 사이에서 대중화됐음에도 내용의 신뢰성은 오히려 추락했다. 올 여름 '구글의 LG전자 인수가 임박했다'는 내용의 찌라시는 요즘 찌라시가 어느 정도 수준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업계 종사자라면 이 얘기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허위 사실인지 잘 알 것이다.

그래도 과거 증권가 정보지(찌라시)는 1차 게이트 키핑을 거쳐 허위 사실이나 과장된 내용이 걸러졌다. 이제는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들이 무작위로 확대 재생산돼 사실 자체가 왜곡되거나 부풀려진 경우가 많다. 이렇다보니, 찌라시 내용을 기사화하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기사화했다 말 그대로 ‘찌라시 기자’가 되기 때문이다(놀랍게도 진짜로 기사화하는 기자, 언론사가 있기도 하다).

과거에는 찌라시가 특정 소수자 사이에서 고급 정보 공유의 장을 만들었다. 이제는 주가 조작, 경쟁사‧정적 견제, 내부 비리 폭로 등으로 그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찌라시를 가장 많이 제조하는 집단 중 하나가 언론이다. 언론사 구성원끼리 공유되는 정보보고는 내부 기자를 통해 외부(찌라시)로 유포되기도 한다. 올해 업계의 관심을 끈 배우 이시영의 음란 동영상 찌라시도 현직 기자가 만들었다. 이 기자는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법적 처벌을 받기도 했다.

찌라시가 악용되는 사례가 비일비재다. 조직, 특히 언론사 내부의 정적을 견제하기 위해 부정적인 사실만 골라 부풀려 찌라시로 유포하기도 한다. 기업이라면 경쟁사를 흠집내기 위한 목적으로 상대의 내부 비리나 어두운 조직 문화를 폭로하듯 찌라시를 제조‧유포한다.

비판적인(또는 악의적인) 기사를 일삼는 기자의 위세를 꺾기 위해 만들기도 한다. 올해 초 모 일간지 산업부 부장(데스크)에 대한 찌라시가 '다시' 돌았다. 지난해 돌았던 내용이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나돌았다. 그 언론사가 연일 모 기업에 대한 비판 기사를 쏟아낸 직후였다.

국내 10대 기업 관계자는 “아무리 악의적인 기사라도 기업 입장에서는 웬만하면 그냥 당할 수밖에 없다”며 “기사를 쓴 기자나 그 기사를 지시한 데스크를 대상으로 찌라시를 만들어 대응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찌라시의 순기능도 분명 있다. 올해 한 일간지 기자가 출입처 기자실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을 대상으로 '갑질' 행사를 했다는 내용의 찌라시가 나돌았다. 급속도로 퍼져 해당 기자는 순식간에 기자들 입방아에 올랐다. 그 지리시는 '사실'로 판명돼 후에 미디어오늘이 해당 사건을 보도하기에 이른다. 찌라시가 일종의 신문고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럼에도 찌라시 자체에 대해 고운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단톡방에 뜬 찌라시를 두고 말들이 오갈 때가 있다. 타인의 사생활이 담긴 찌라시라면 말들이 더욱 춤을 춘다. 몰래카메라로 사생활을 엿보고 즐기는 관음증 환자와 다른 점을 찾기 힘들다.

감정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제 배우 최진실도 자신에 대한 증권가 찌라시가 확산되면서 자존감이 무너져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변태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 마스터베이션은 당사자에게 죽음을 고민하게 할 만큼 수치심을 준다. 무엇보다 찌라시 제조 및 유포는 법적 처벌 대상이다. 내용과 유통 방식에 따라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 통신법 위반 등의 혐의가 적용된다.

기자들에게 찌라시를 무시하라고 권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업계 흐름을 파악하는 차원에서 자리시를 챙길 필요가 있다. 신문고 같은 찌라시의 긍정적인 효과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기자라면 거의 모두가 읽는 찌라시에서 그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자는 '새로운 것', 즉 단독 기사를 써야 하는 책무를 가진 직업인이다. 2인 이상 공유된 찌라시는 그것이 일정 부분 사실이라도 뉴스 보도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요즘 찌라시는 일단 2인 이상이 공유하면 그 내용이 삽시간에 불길 번지듯 수 십 명, 수 백 병, 수 천 명에게 퍼진다. 내가 받은 찌라시는 이미 남이 한 번 훑었을 가능성이 크다.

정보란 유출 보안이 철저하게 유지됐을 때 가치를 지닌다. 이런 정보가 비로소 세상에 공개됐을 때 빛을 뿜는다. 저 혼자만 아는, 업계를 뒤흔들 만한 고급 정보를 찌라시로 만들어 돌리는 기자는 드물다. 언론사 내부 사정으로 기사화가 무산돼도, '물 먹기 싫어' 아예 정보를 자체적으로 폐기하기나 친한 타사 기자에게만 그 정보를 주는 게 업계 특성이다.

개인적으로 찌라시에 집중하는 기자를 기자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만드는 데 주력하는 기자도, 유포에 열 내는 기자도, 그 정보에 몰입하는 기자도. 그런데 바로 앞 문장을 쓰고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괜히 찌라시 ‘제조자’들의 심기를 건드려 필자에 대한 찌라시가 돌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다. 내 등 뒤 목소리가 서늘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털어도 먼지 안 나오게 '떳떳(!)하게 살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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