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자 한국일보 지면에는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이후 현 정부의 불통을 풍자하는 만평이 실렸다. 해당 만평엔 경찰이 집회 진압 과정에 사용했다가 농민 백남기(69)씨를 의식불명 상태로까지 이르게 한 물대포와 경찰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만평에서 ‘소통’이라고 쓰인 물대포는 농민이 아닌 경찰의 귀를 향하고 있다. 결국 ‘다른 용도’로 쓰인 물대포는 집회 참가자들과 평화적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경찰을 풍자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일보 배계규 화백(편집위원)이 그린 이 만평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많은 공감을 받았고, 한국일보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160여 명이 ‘좋아요’를 누르기도 했다. 경찰 차벽과 폴리스라인으로 꽉 막힌 광화문 광장과 물대포로 집회 참가자들과 충돌을 빚은 경찰의 ‘불통’을 신랄하게 지적하는 만평에 독자들은 ‘속 시원함’을 느꼈다.

   
지난 18일자 한국일보 만평
 

그런데 만약 귀에 물대포를 맞고 있는 대상이 경찰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었다면 어땠을까. 사실 이날 민중총궐기에선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일방적인 한국사 국정화 추진과 언론 장악, 쉬운 해고로 상징되는 노동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으므로 불통의 주체는 경찰보다는 박 대통령이라고 보는 게 더 적합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일보도 처음 이 만평의 주인공을 경찰이 아니라 박 대통령으로 그렸다. 18일자 신문과 현재 한국일보 홈페이지, 포털 전송 뉴스에는 모두 경찰이 물대포를 맞고 있는 그림이지만, 미디어오늘 추적 결과 원래 이 만평에서 풍자한 불통의 대상은 박 대통령이었다. 

한국일보가 17일 오후 5시15분 첫 등록한 만평에는 살수차가 경찰이 아닌 박 대통령의 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었고, 박 대통령은 이 만평에서 주름진 얼굴로 눈을 감은 채 묘사됐다. 현재 이 만평 원본은 내려갔고, 경찰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땀을 흘리며 물대포를 맞고 있는 장면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한국일보 홈페이지상에는 만평의 최초 등록 시간과 수정 시간이 같았다. 포털 뉴스 다음엔 오후 5시24분 입력, 7시47분 수정으로, 네이버엔 5시25분 입력, 최종수정 7시48분으로 나온다.

   
지난 17일 한국일보 홈페이지에 올라온 만평 원본.
 

미디어오늘은 배계규 화백과 한국일보 측에 그림의 주인공이 박 대통령에서 경찰로 바뀐 이유에 대해 물었지만 만평처럼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풍자의 대상이 바뀌긴 했지만 정부의 불통을 지적하고자 한 만평의 본래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한국일보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배 화백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마지막에 나간 게 결과물이고, 그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다. 그 이전에 것은 전부 내부의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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