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노동개악을 위한 ‘5대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도 ‘노동개혁’의 근거가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19대 국회가 아니라 총선 이후 진짜 밀어붙이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당정청은 지난 22일 정책조정협의회를 갖고 노동 관련 5대법안을 11월 말까지 일괄 처리하기로 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당정청은 노사정 대타협을 반영한 법안과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법안 등 노동개혁 5개 법안이 일괄 처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며 “근로기준법, 산재보호법 등은 이미 노사정 대타협에서 합의한 내용을 담았다. 기간제, 파견제법도 노사정 합의를 반영한 만큼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고 밝혔다

노동5대 법안 등을 예산안과 연계시키겠다는 전략도 제시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야당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정부 원안대로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12월 2일 본회의에 정부 원안이 자동 부의돼 처리된다는 점을 들어 야당을 압박한 것이다.

   
▲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왼쪽)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5대 노동개혁 법안 관련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새누리당은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도 5대 법안 통과의 근거로 삼는 등 갖은 논리를 총동원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동개혁 5대 법안 처리 등 현안이 산적해있다. 여야는 정쟁과 정치공세를 멈추고, 국민만 바라보면서 당면한 민생과 경제현안들을 처리해나가야 하겠다”며 “민생최우선이야말로 화합과 통합을 마지막 메시지로 남기고 떠나신 김영삼 대통령을 진정으로 애도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신의진 새누리당 대변인은 23일 현안브리핑에서 “정치권이 진정한 화합과 통합의 정치로 산적한 민생 현안들을 처리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그분을 애도하는 길이다. 지금 정치권은 김 전 대통령의 유훈을 이어 받아 정쟁을 멈추고 국민만 바라보며 당면한 노동개혁, 경제활성화 법안 등의 처리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여당이 노동개악 반대를 주요 의제로 내세운 민중총궐기 집회 참가단체 및 참가자들을 사법처리하고 민주노총을 압수수색한 것 역시 노동개악을 강행하기 위한 조치라는 관측이 나온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3일 상무위원회에서 “지난 주말 경찰은 민주노총과 산하노조 여러 곳에 대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압수수색을 기습적으로 진행했다. 민주노총에 폭력단체 이미지를 덧씌워 국정화 강행 이후 높아진 비판적 여론을 희석시키고, 노동개악 강행을 앞두고 가장 강력한 반대자를 사전에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5대 법안 중 가장 큰 논란이 예상되는 법안은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기간제법과 뿌리산업까지 파견을 허용하는 파견법이다. 이들 법안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공공성이 있는 분야까지 비정규직을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9월 15일 발표한 노사정합의문에도 포함되지 않는 내용이지만 새누리당은 노사정위 전문가그룹이 국회에 제출한 검토의견을 토대로 입법을 추진 중이다.

민주노총은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의 기간제‧파견법 개악안은 한국사회를 재앙으로 몰아넣을 판도라의 상자”라며 “청년 노동자들은 열정 페이를 강요받으며 4년마다 해고되는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장년 노동자들은 전문직 파견 허용으로 파견 노동자가 되거나 조기 퇴출 위협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총도 기간제법, 파견법을 추진하면 노사정합의 파기로 간주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현재 여야 간의 큰 입장차로 환경노동위원회 내의 논의는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법안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처리하자는 입장이지만 새누리당은 5대 법안 패키지 처리를 고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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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 민주노총 공공노동자 파업대회 참가자들이 정부의 노동정책을 규탄하며 청계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한 야당 환노위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포함된 통상임금 사안은 이미 제출된 법안도 있고, 출퇴근 시 산재를 인정하는 산재보험법의 경우 야당에서 제출한 비슷한 법안도 있다.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높이되 문턱까지 높이는 고용보험법은 노동부에서 사활을 걸고 있는 것 같지 않다”며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출퇴근시 산재 적용은 동의할 수 있고, 통상임금과 근로시간(근로기준법 개정안) 문제는 논의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늘리는 기간제법, 파견법은 논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새누리당이 법안을 (개별 처리할)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반복적으로 문의했으나 새누리당은 패키지를 주장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법안 하나하나를 다루면 처리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데도 패키지를 고집하면서 합의도 되지 않은 기간제법, 파견법까지 포함시키는 데에는 정치적인 노림수가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법안 처리보다 이슈화가 목적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19대 국회에서는 노동 5법을 처리하기 어렵다. 환노위의 구성이 여야 동수인데다 위원장까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김영주 의원)이다. 새누리당은 환노위 위원을 한 명 더 늘리는 방안까지 추진했다 철회했으나 애초에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방안이었다. 상임위 인원 증원을 위해서는 국회 운영위원회에 법사위원회, 본회의를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5대 법안을 토대로 ‘노동개혁’을 의제화 시킨 다음 총선 승리 이후 5대 법안 처리를 도모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총선 이후 법 개정이 필요 없는 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 지침에 대한 법제화에 나설 수도 있다.

야당 환노위 관계자는 “이번에는 그냥 간보는 것 같다. 총선에서 이긴 다음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려 할 것”이라며 “지금 환노위는 8대 8 동수인데다 은수미, 장하나, 심상정 등 노동 관련해 야당의 베스트 멤버들이 포진하고 있어 밀어붙이기 힘든 조건이다. 총선 승리라는 이니셔티브를 쥐고 환노위 구성까지 변화시켜 밀어붙이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은수미 의원 역시 “총선 끝나고 밀어붙일 것이라 200% 확신한다. 노동 관련 법안처리를 못했다면서 법안처리를 할 수 있도록 새누리당에 표를 달라고 이야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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