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내부자들’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 ‘내부자들’은 ‘극중 내용이 허구’라며 ‘혹시라도 극중 내용과 현실이 같다면 우연의 일치’라는 자막으로 끝난다. 그럴수록 영화 속에서 현실과 비슷한 ‘우연의 일치’를 찾게 된다.

국민의 대표라는 대선후보 급 국회의원은 장의 차량 같은 커다란 검은 차를 타고 동료의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차에 오르는 모습이나 ‘신문’과 ‘일보’로 나뉘는 한국의 언론에서 극중 ‘조국일보’에 보이는 ‘복지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한국 현실과 싱크로율을 높인다. 검찰 출신의 청와대 민정수석이 부장검사를 만나 압력을 행사하거나 은행 불법대출이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가는 장면 역시 관객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내부자들’은 정치권-검찰-재계-조폭으로 이어지는 권력 내부자들의 먹이사슬 이야기다. 청와대와 광화문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조국일보’에서 “말은 곧 권력이며 힘”이라며 권력을 ‘설계’하는 유명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분), 대통령을 노리고 있는 정치인 장필우(이경영 분), 조국일보 광고주이자 장필우에게 뇌물을 준 미래자동차 오 회장(김홍파 분)은 ‘권력 내부자’다. 더러운 이들의 뒷일을 담당하던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 분)와 빽도 학벌도 없는 소위 ‘족보 없는’ 검사인 우장훈 검사(조승우 분)가 내부자들에게 균열을 내는 복수극이다.  

   
▲ 영화 '내부자들' 포스터
 

별장 성접대 “쌍팔년도 채홍사도 아니고”

권력 내부자들은 오회장의 별장에서 오회장, 집권여당의 유력대선후보 장필우, 이강희 등이 모여 섹스파티를 벌인다. 여기에 여성들을 선별해 보내는 채홍사 역할을 안상구가 맡는다. 안상구가 “쌍팔년도 채홍사도 아니고”라고 뒷일만 담당하는 데 불만을 내비치다가 오회장의 비자금 관련 내용을 언급한 사실이 도청돼 손이 잘린다. 

영화에서는 여성들을 나체로 대기하게 하거나 ‘독특한 방식’으로 폭탄주를 제조해 마시는 등 난잡했던 술자리가 파티가 끝나면 잠자리가 이루어졌다. 박정희의 안가 술파티에 중앙정보부가 채홍사 역할을 하며 기생을 선발했던 일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육영수 여사가 기생파티에 격분해 당시 박정희의 술친구였던 조선일보 사주 방일영의 집에 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2013년 3월 당시 논란이 됐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사건’도 떠오른다. 이 사건에는 성접대 관련 영상이 있는데 해당 영상에 나오는 여성이 자신이라고 밝힌 이아무개씨가 별장주인이자 건설업자인 윤아무개씨에게 수년간 고위층을 대상으로 한 성접대를 강요받았다고 폭로했다. 또한 이씨는 별장 뿐 아니라 서울 강남의 모처에서도 김학의 전 차관에게 지속적으로 성접대를 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영화 내부자들에서는 이강희 등의 술자리 영상이 SNS 등을 통해 전 국민에게 퍼지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국면이 전환된다. 그러나 김학의 전 차관의 경우는 해당 동영상이 국과수 음성분석 판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고,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 영화 '내부자들' 포스터
 

언론 권력층에 대한 성접대 사건으로는 배우 장자연씨가 성상납, 술접대, 골프접대 등의 행위 관련자의 이름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다. 당시 장씨는 50여통의 편지를 통해 자신이 강압적으로 31명에게 성상납, 술접대 등 관계를 가졌다고 밝혔고, 이 명단에는 유력 언론계 인사도 포함돼 있었다.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에 대해 조선일보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글이냐 똥이냐”

영화에서 권력층 내부에 있는 자들이 신문기사를 읽고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노동권 보장이나 복지확대에 대한 기사에 대해 “종북세력이냐”고 화를 내며 신문을 접는 사람은 해당 신문 광고주인 미래자동차 오회장이다. 그러자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의 명대사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국민들의 비판이 쏟아지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민들은 금방 잊는다’고 말하며 외면했던 태도는 한국 기득권층의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권력을 옹호하는 기사는 글이고 나머지는 똥이라고 말하는 내부자들의 모습 역시 한국사회의 단면이다. 이인호 KBS 이사장은 낙마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온누리교회 강연에 대해 “교회 강연을 보고 감동받았다”며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문창극 전 후보자는 중앙일보 대기자 출신으로 교회 강연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며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른 것이다.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것이 조선 민족의 DNA로 남아있다”고 말한 사실이 밝혀져 많은 비판을 받았다.  
 
불법도청은 필수

재벌을 상징하는 미래자동차 조상무는 “청소를 시켰으면 청소만 해야지 왜 쓰레기를 훔치냐”며 정치깡패 안상구가 불법 비자금 조성 사실에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응징한다. 안상구는 “도청했냐?”며 분노하지만 이들 사이의 불법도청은 계속 이어진다. 

삼성 X파일 사건이 연상된다. 지난 2005년 7월 당시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도청 내용을 담은 90여분짜리 테이프를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과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이 신라호텔에서 1997년 대선 당시 후보들에게 돈을 주기 위해 공모하고 검찰들에게도 돈을 줬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사건은 내부자들의 구도처럼 한국 언론-재계-정치권-검찰의 유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대선 주자 “비정규직 법안 목숨걸고 막고 있다”

이외에도 ‘깨알같은’ 장면들은 더 있다. 재벌 회장이 “비정규직 법안은 어찌됐냐”고 묻자 여권 대선주자가 “목숨 걸고 막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이번 회기에는 넝마가 될 것”이라고 답하고, 논설주간이 “너덜너덜?”이라며 농담을 덧붙이는 장면은 현재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개악을 연상하게 한다. 

   
▲ 영화 '내부자들' 포스터
 

영화에서 장필우 의원은 자신의 부정이 드러나자 정치생명을 걸고 돈을 받지 않았다고 국민들을 향해 선언하는 모습은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정치자금을 건낸 사람 리스트에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등장하자 이 전 총리는 “목숨을 내놓겠다”고 말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장필우 대선후보가 후보수락 연설에서 자신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모두 하나가 돼야 한다는 말을 하는 모습은 ‘국민통합’을 외쳤던 박근혜 대선후보를 떠올리게 했고, 장필우 후보의 뒤로 보이는 빨간색 배경은 현 여당을 풍자하는 듯 했다.  

“잘하지 그랬어. 아니면 잘 좀 태어나든가”

영화는 이병헌과 백윤식의 탄탄한 연기로 130분의 러닝타임을 무리 없이 소화한 측면도 있지만 중간 중간 나오는 가슴 아픈 대사 덕분에 관객들을 붙잡는다. 

경찰 출신으로 지방대 학벌을 가졌는데 '빽'도 없는 우장훈 검사(조승우 분)가 내쳐지는 장면이 있다. 우 검사는 상관 앞에 무릎을 꿇으며 “조직을 위해 개처럼 일했는데 한번만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냉랭하다. “그러게 잘하지 그랬어. 아니면 잘 좀 태어나든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흙수저들이 신분상승의 길마저 막히고 있어 절망적인 한국사회 현실이 잘 나타나있다. 

영화 ‘내부자들’은 윤태호 작가가 지난 2012년 한겨레에 연재하다 중단된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으로 극중 우장훈 검사 캐릭터는 웹툰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지난 22일 현재 누적관객수 111만명을 돌파하며 ‘검은사제들’을 누르고 1위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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