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까이는 한국 기자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우라까이는 ‘베껴쓰기’를 의미하는 언론계 은어인데, 보통 남이 쓴 기사를 베낄 때 이 단어를 쓴다. 이외에도 ‘보도자료 우라까이’도 있다. 상당수의 언론사 기자는 매일 출입처에서 주는 자료를 살짝 단어를 바꾸고 적당히 내용을 덜어내는 작업, 즉 우라까이를 한다.

한국에 우라까이가 있다면 영미권 국가에는 ‘처널리즘(churnalism)’이 있다. 제품을 대량 생산한다는 의미의 영어 단어 ‘천 아웃’(churn out)을 저널리즘과 합친 용어다. 보도자료 우라까이와 큰 차이 없다. 자료 배포 집단도 관공소, 기업, 시민단체 등으로 한국과 비슷하다. 아래 ‘처널리즘’의 사례를 보면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영국 언론이 보도하는 모든 기사 중 약 80%가 처널리즘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는 분석이 있다. 영국 탐사보도 전문기자 닉 데이비스가 2008년 펴낸 책 ‘편평한 지구 뉴스(Flat Earth News)’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기자가 독자적으로 취재해 보도한 ‘단독성 기사’는 1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에서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찍는 대중지 ‘더선’은 1면 중 상당수가 ‘홍보실 관계자가 썼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보도자료 의존도가 높다.

국내 사정도 다르지 않다. 주요 신문사는 원고지 200자 기준 4 ~ 5매 정도 분량의 자료 기사를 매일 같이 싣는다. 보도자료 기사에 기자가 자체적으로 취재한 내용을 붙여 몸집을 키운 ‘기획 + 보도자료 기사’도 허다하다. 규모가 작은 신문사의 경우 보도자료와 기획기사를 모두 써야 한다. 업무적 부담 때문에 우라까이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름없는 신문사의 경우 지면을 채우기 위해 보도자료를 분량 줄임없이 그대로 싣기도 한다.

   
'처널리즘'은 대량 생산을 의미하는 'chun out'과 저널리즘의 합성어다.
 

우라까이든 처널리즘이든, 양산 증가의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돈’이다. 광고주, 특히 기업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영미 언론사도 수익의 적지 않은 부분을 광고에서 채운다. 지난해 10월 영간 일간지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올해 영국 주요 신문사의 광고 수익은 우리 돈으로 2조5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대가성으로’ 기업 등의 사실상 홍보자료인 보도자료를 기사화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지면이 꽉 차면 온라인에서라도 보도자료를 기사화한다. 국내의 경우 기사가 부족해 ‘지면 막기용’으로 보도자료 기사로 채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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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현장 취재로 요약되는 전통 저널리즘 보다 수익을 추구하는 온라인 매체의 확산도 처널리즘 양산을 부추겼다. 하루에 여러 건의 기사를 처리해야 하는 업무적 부담과 기자 사회에 만연한 일선 기자의 게으름도 처널리즘 양산의 주된 원인이다.

주목할 만한 건 처널리즘에 상응하는 새로운 저널리즘이 움 트고 있다는 것이다. 로봇이 기사를 쓰는 ‘로봇 저널리즘’이다. 저장된 데이트를 기반으로 알고리즘(문제 해결을 위해 명령들로 이뤄진 일련의 순서화된 절차) 방식을 통해 기사를 작성하는 식이다. 일부 해외 언론사에서 이미 로봇 저널리즘을 도입해 실행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로봇은 이미 보도 자료나 온리인상의 실시간 검색어 기사를 베껴쓰는 수준에 이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대다수 국내 기자들은 로봇 저널리즘을 남의 일 보듯 한다. 자신들의 밥벌이를 위협할 만하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협할 만한 가능성은 충분하다. 어차피 보도자료를 우라까이하는 것이나, 감정 없는 로봇이 기사를 쓰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로봇 저널리즘은 정확한 수치를 근거 하므로, 향후 발전을 거듭하면 사실을 나열하는 수준의 정교함은 오히려 ‘인간’ 기자가 쓴 것 보다 나을 수 있다.

언론사 경영인을 꿈꾸는 한 선배는 이렇게 말한 적 있다. “훗날 언론사를 차리면 속보 뉴스나 보도자료는 로봇한테 맡기고, ‘인력’으론 탐사 보도만 할 것이다.”

   
로봇 저널리즘의 사례.
 

말하자면 로봇 저널리즘으로 보도 자료 등을 처리해 수익을 올리고, 특종을 발굴하는 탐사보도를 통해 해당 언론사의 브랜드 가치를 키운다는 전략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유력한 미래의 언론사상으로 본다.

로봇 저널리즘 시대가 오면 대규모 해고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자들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대중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시대일수 있겠다. 그토록 원하는 ‘발로 뛰는 기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특종 기사나 묵직한 울림을 남기는 심층 분석 기사는 로봇이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다. 취재원과의 감정 교류로 신뢰를 쌓은 뒤, 정보를 취해 기사화하는 방식의 전통 저널리즘은 ‘타인과 소통이 가능한’ 기자만이 할 수 있다. 모든 근본은 사라지지 않듯, 전통 저널리즘은 영원할 것이다. 로봇 저널리즘은 우라까이를 일삼는 기자에게 비극이겠지만, ‘기레기’를 개탄하는 독자에게는 희극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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