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에서 여자가 전화를 했는데 손 이사장이 청와대 전화를 받았다고 그래서 펄쩍 뛰었어요.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딱 잘랐습니다. 유동성이란 건 마지막까지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다 아는데. 아휴 참내. 그런 사정인거 같습니다.”  

지난달 6일, 이인호 KBS 이사장과 통화가 끝난 직후였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전화로(아마도 유선전화로) 어딘가와 통화하는 내용이 들려왔다. 마치 이건 지난 2012년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당시 MBC 기획홍보본부장의 비밀 대화를 엿들은 한겨레 최성진 기자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전화 상대방은 이 이사장의 전임 이사장이었던 손병두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인 듯. 이 이사장은 상대방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하여튼 그따위 일은 없다고 딱 잡아뗐어요. ‘청와대에서 했다는 건 말도 안 되고 됐을 리도 없고 전혀 아니다, 손 이사장이 그렇게 말했을 리도 없고 전혀 아니다, 그 따위 소리 하지 말라’고 딱 잡아뗐어요. ‘누구를 만났다 안 만났다 답할 이유도 없다, 손 이사장도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잡아뗐다’는 건 흔히 아는 것을 모른다고 하거나 한 것을 안 했다고 할 때 쓰는 말이다. 뭘 잡아뗐다는 것일까.

   
이인호 KBS 이사장.
ⓒ노컷뉴스
 

당시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미디어오늘은 청와대가 고대영씨를 KBS 차기 사장 후보로 낙점했다는 제보를 확보하고 취재 중이었다. KBS 사장은 대통령이 최종 선임하지만 엄연히 공모 절차를 거치고 이사회에서 표결로 결정한다. 올해부터는 인사청문회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공모도 시작하기 전에 청와대가 미리 낙점을 하고 이사회에 '오더'를 내렸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보는 매우 구체적이었다. 추석 연휴 때 청와대 모 수석이 이인호 이사장과 접촉해 “고대영이 대세”라며 “고대영을 받기 위해 이사회를 다잡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기자는 이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손병두 전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믿을만한 취재원의 제보에 따르면 청와대가 고대영을 찍어 내려 보냈고 고대영이 썩 내키지 않았던 이인호 이사장이 손 전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손 전 이사장과 이 이사장은 모두 고대영 후보의 청와대 낙점설을 부인했다.

이 이사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청와대 수석을 접촉했다는 그런 추측은 자유롭게 할 수 있겠지만 상식 수준에서 되는 일은 아니지 않나. 그런 질문에 답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지만 미디어오늘이 원치 않게 엿들은 손 이사장과 통화에서는 “그런 일은 없다고 ‘잡아뗐다’”고 말했다.

지난달 6일은 사장 공모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고 실제로 지난달 26일 KBS 이사회는 고대영 후보를 단독 사장 후보로 결정한다. 그것도 여권 추천이사 7명 전원 찬성으로. 제보 내용이 맞다면 사장 공모는 요식 행위였고 이미 공모 전부터 낙점이 끝난 상태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유력 후보였으나 막판에 탈락한 강동순 KBS 전 감사는 지난 12일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추석 연휴 때 김○○(청와대 수석)이 (이인호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고 고대영이가 (청와대 지명 후보로) 내려가는 경우를 검토해 달라고. 이인호 이사장이 (청와대 수석에게) 전화 받았다는 거를 누구한테 이야기 했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고대영 KBS 사장 후보의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16일,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이인호 이사장과 통화가 다시 생각난 건 과연 이 이사장이 ‘잡아뗐다’고 말한 그게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유동성은 마지막까지 있”겠지만 유동성이 있다는 건 이미 뭔가가 결정됐다는 의미다. 고대영의 청와대 낙점설은 사실일 거라는 강한 심증이 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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