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과 박인숙 의원이 초재선모임인 ‘아침소리’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의 모든 중·고교에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하도록 한 것과 관련해 친일인명사전과 민족문제연구소를 두고 “통합진보당과 아주 흡사한 패러다임을 가진 단체”라고 색깔공세를 펼쳤다. 이어 10일에도 새누리당 황진하 사무총장 역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반박한 역사강사 심용환 깊은계단 대표의 기고문이다.

1. 통합진보당과 흡사하다?
답변> 무슨 의미입니까? 전교조면 빨갱이, 통합진보당이면 빨갱이. 이런 식으로 프레임을 짜서 접근하겠다는 주장 밖에 더 되나요? 뭐 신선한 건 없나요? 이제 ‘친일’을 이야기하면 빨갱이입니까? 그랬던 적이 있었죠. 언제? 반민특위 당시 수많은 친일파가 끌려와서 자신들은 반공투사인데 억울하게 친일파로 몰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킨 이승만 역시 반공이라는 이유로 친일 문제를 덮어버리고 말았죠. 역사를 반복하고 싶은 건가요?

2. 장면정부까지 친일파 정부로 규정하고 있다? 
답변> 새정치민주연합을 끌어들이고 싶은 논리로 보이네요. 언제 친일인명사전에 장면정부를 친일파 정부로 규정했죠? 하지만 분명히 얘기할 것은 얘기하죠. 장면의 민주당 정부의 전신은 한국민주당(한민당)이었습니다. 초기 김병로나 원세훈 같은 뛰어난 인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지주, 산업가들이 많이 참여했으며, 김성수-송진우 등 친일이력을 가졌던 인물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이미지가 좋지 못했고 하부 조직도 없다시피 했죠.

더구나 한민당은 초기에는 임시정부 추대론을 외치며 여운형, 안재홍 등과 다투었으나 이 후 미군정이 들어오자 적극적으로 미군정에 붙었고 이승만이 세력을 강화시켜나가자 이승만과의 유착관계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결국 자유당 창당 전후로 이승만에 의해 제거 되면서 민주당이라는 이름의 정통 야당이 된 것 아닌가요?

민주당의 혼란한 당정체성, 민주당 안에 상존했던 친일 문제 이런 것들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고, 친일을 친일이라고 말하면 죄가 됩니까? 해방 공간에서 끈임 없는 기회주의적 행동으로 김병로 등의 초기 거두들이 탈당했던 정당을 비판한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거죠?

3. 백년전쟁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공격한 거다?
답변> 백년전쟁의 핵심 내용은 딱 한 가지입니다. 이승만과 박정희 ‘신화’가 올바른가 틀린가를 건드렸을 뿐이죠. 서중석, 주진오 등 학계의 명망 있는 교수들이 직접 자문했고 인터뷰까지 했습니다. 그들의 연구 성과가 마음에 안 들면 연구 성과로 상대해야 하는데 연구 성과도 없으면서 정통성 운운하는 저의는 대체 무엇입니까.

영화의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승만은 하와이 망명 시절 박용만 등과 갈등하며 하와이 사회를 분란에 빠뜨렸습니다.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으로 성실하게 활동하지 않았고 국민대표회의의 갈등을 방치했고 주로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임시정부 운영에 큰 곤란을 일으켰죠. 결국 임시정부가 국무총리령으로라도 사무를 처리하려하자 아무 도움도 안주던 이승만은 미국에서 들어오던 독립운동 자금줄을 끊었습니다. 그밖에 독립운동사에서 이승만 신화의 허실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 사진=하태경 의원 페이스북
 

이것이 대한민국 정통성과 무슨 상관입니까? 이승만이 곧 대한민국입니까? 여기가 북한인가요? 북한이 김일성주의로 무장했다고 우리도 ‘이승만주의’로 무장해야 한단 말입니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우상숭배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4. 백선엽, 김성수, 백낙준, 박정희 대통령을 민족반역자라고 부르면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6.25전쟁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냐?
답변> 친일인명사전 한번이라도 읽어봤나요? 친일파 규정은 엄격합니다. 친일의 정도와 등급을 구분하며 친일행위를 분명히 명시하여 그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죠. 아무나 싸잡아서 빨갱이다 식으로, 아무나 싸잡아서 나쁜 놈들, 친일파 이런 식으로 서술하고 있지 않답니다.

백선엽의 경우 본인 스스로 인정했고 일본판 자서전에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듯 해방 전에 간도특설대 등에서 친일 군사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적극 사죄한 적도 없지만 적극 부정한 적도 없죠. 박정희 역시 대구 사범학교에서 고도의 교사 훈련을 받았고 펑텐-신장으로 이름을 바꾼 만주군관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고 이 후 중일전쟁기 동안 만주국 장교로 활동하였습니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죠. 이 내용은 조갑제의 저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김성수나 백낙준 같은 교육계 인사들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적극적인 부일협력을 한 것 또한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고 이를 확인시켜주듯 김성수 관련 건은 재판을 통해 판결까지 받은 상태입니다. 또 다른 친일파이자 한국 여성 교육의 상징인 김활란 역시 개인적으로 자신의 죄를 통탄한 적이 있다는 간접 진술 말고 무엇이 남아 있나요? 아니라면 증거를 대보세요.

그리고 친일 행위를 정확하게 기술하면 그것이 민족 반역이 되는 건가요? 민족정기를 되살릴 수 있는 귀한 노력 아닌가요?

   
▲ 새누리당 황진하 사무총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서 연한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제공
 

더구나 6.25전쟁은 대체 왜 나옵니까? 이광수가 문학가로 훌륭한 것과 친일파인 것을 왜 별개로 나눠 생각하지 못하나요? 백선엽이 친일파라는 것과 6.25전쟁 당시 국군 사령관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왜 구분해서 사고를 못하는 거죠?

더구나 전쟁영웅이라는 이미지가 가득하고 실제 중요한 전과도 있었지만 당시 국군의 무능력함,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맥아더나 리지웨이 같은 미국 사령관들이 통탄하지 않았던가요? 대체 뭘 어떻게 가르치란 말입니까?

5. 누가 편향 세력인가. 하태경 본인이 편향세력 아닌가? 
답변> 대체 누가 편향 세력입니까? 역사 연구하고, 친일 문제 고발하며, 제대로 된 역사박물관 만들고 싶어 하고, 위안부들을 위해 싸우고, 야스쿠니 신사 문제 두고 다투고 하면 그게 편향 세력입니까?

과거 극좌파에 있었다가 전향했고,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편향적으로 다루는 본인이 편향 세력 아닌가요? 왜 사람을 근거 없이 함부로 몹니까? 남을 몰기 전에 본인의 생각부터 정확하게 세상에 드러내어주세요. 검토 좀 해봅시다. 

6. 나라 사랑?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답변>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잘못을 고발하고, 문제점을 고치고, 민족정기를 세우는 것이 왜 나라 사랑이 아닌가요?
그러면 죄를 은폐하고, 잘못을 덮고, 기득권을 유지시키고, 민족정기를 흐트러뜨리고, 자녀들에게 기회주의가 성공하는 것이고, 나만 위해 잘 살고, 가능하면 권력자에게 붙어먹어 살라고 가르치는 게 나라 사랑입니까? 무엇이 나라 사랑이란 말입니까?

7. 을사조약을 비판한 시일야방성대곡 장지연 선생은 친일파로 규정하고 일제 침략 선봉장에 선 김일정 동생 김영주의 이름은 사전에서 빠졌다?

답변> 장지연은 일제 말기 친일논설 중 두 편정도 문제가 됐죠. 논란이 있었지만 일단 친일명단에 들어가 있고요. 장지연의 인생 전체를 다 친일로 규정한 게 아니라 일제 말 언론인으로 부일협력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들어간 것이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여전히 논쟁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죠. 

그리고 누락된 사람은 많아요. 인명사전이 국가의 지원이 아닌 상태에서 민간의 자발적 지원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전히 탐구하고 연구해야 할 대상들이 많죠. 여러 명이 빠졌다면 김무성 아버지 김용주부터 시작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해 연구할 수 있게 국가가 지원해 줬으면 좋겠네요.

2009년 국가 주도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 발간할 때도 가장 반발했던 정당이 새누리당입니다. 박정희를 비롯해 다양한 인물에 대한 심화연구가 새누리당이 사사건건 방해해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는데 이제 와서 친일인명사전의 한계를 운운하는 거 자체가 너무 웃기네요.

추가로 새누리당이 친일문제에 대해 회피하는 주요 논지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일제시대 때 일제와 협력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 어디 있었겠느냐 - 일명 물타기론. 둘째는 군대 소위 정도 수준의 하급 관료들이 어떻게 친일파라고 말 할 수 있느냐 - 논지 왜곡입니다. 새누리당은 이런 논리로 친일인명사전 제작과정을 방해했습니다. 

실제로 친일인명사전은 5000명 미만의 사람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친일의 범주와 내용을 정확히 규정한 상태에서 진행된 프로젝트거든요. 그리고 군대 말단의 소좌, 학교의 교사, 면사무소 서기, 경찰 등은 일제의 하부 구조로 실제로 독립군토벌, 위안부, 징용 수집 등 적극적인 부일협력을 죄를 면피할 수 없죠. 물론 이들을 다 단죄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도덕적 책임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새누리당의 논조는 완전 흑색선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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