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 중앙일보 사회부장의 ‘시시각각’ 칼럼이 나오는 날이면 타사 기자들이 너도나도 페이스북 링크를 걸기 바쁘다. ‘권석천 칼럼’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기자들이 돌려가며 읽는 거의 유일한 칼럼이다. 권석천은 중앙일보 5년차 이하 주니어 기자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선배다.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은 권석천을 가리켜 “나는 그의 팬이다. 아니, 그는 내가 팬인 거의 유일한 글쟁이다”라고 말한다.

가로 14.3cm, 세로 25.2cm의 지면을 위해 권석천 만큼 고민하는 기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레미제라블’자베르 경감의 눈으로 힘 있는 자의 편에 서 있었던 이명박 정부 5년의 법질서를 들여다보고, ‘생각할 사’, ‘슬퍼할 도’를 사용해 영화 ‘사도’의 얼개를 따라가며 “공직에 있다는 자들이 자기 자식 대신 남의 자식을 뒤주에 가두려는 오늘의 현실이 더 기막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무릎을 치게 된다. 그는 대중에게 흡입력 있는 칼럼을 위해 형식의 파괴를 주저하지 않는다. 

권석천 칼럼의 매력은 고민과 고민으로 다음어진 문장에 담긴 ‘송곳’같은 비평이다. 2년 전 조선일보가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를 지휘하던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을 제기했을 때, 권석천 칼럼은 당시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명명했다. 검찰총장 흔들기에 분노하는 검사들을 향해선 “여러분이 진정 분노해야 할 대상은 ‘총장 한 사람만 바꾸면 검찰 조직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 권석천 중앙일보 사회부장의 칼럼모음집 '정의를 부탁해'. 동아시아. 15000원.
 

통합진보당 해산 당시에는 “그들(통진당)을 해산시키더라도 그들의 생각까지 해산시킬 수는 없다. 그들의 생각은 정부가 아니라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평가되고 걸러져야 한다”며 소신을 밝혔다. 박근혜정부의 강력한 무기가 된 종북 이데올로기를 두고선 “‘종북’이란 이름의 유령이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의 칼럼은 출입처가 던져주는 단편적 사실에 기대어 상사의 눈치를 적당히 보며 지면을 채우는 동시대의 기자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권석천 기자가 최근 중앙일보 ‘시시각각’ 칼럼 모음집 ‘정의를 부탁해’(동아시아, 15,000원)를 출간했다. 수년 간 한국사회에서 등장했던 사건 사고가 그의 생각과 문장으로 담겼다. 저자는 서문에서 “직업적으로 글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우면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거리엔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참아가며 살아가는, 수많은 분들이 있다”고 적었다. 책의 말미에선 “같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어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우린 결국 서로에게 정의를 부탁해야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서울대 법학 전공/1990년 경향신문 입사/2007년 중앙일보 입사/법조팀장‧논설위원 역임’과 같은 이력은 그를 설명하는데 충분치 않다. 그는 20년차 아래 후배를 사석에서 만나는 자리에서도 ‘꼰대스러운’ 격식을 갖추지 않고 늘 겸손하며 젊은 세대의 고민을 경청한다. 오늘날 ‘기레기’에 실망하고 지친 독자들이 언론인에게서 희망을 보고자 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덧. 권석천 칼럼은 중앙일보 지면에서 ‘송곳’처럼 등장한다. 중앙일보 사설 논조와 다를 때도 있다. 이런 기묘한 부조화는 그의 칼럼을 돋보이게 한다. 중앙일보는 김진 칼럼과 권석천 칼럼을 같은 날 지면에 배치한 날도 있다. ‘중도’를 지향하는 신문사의 전략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가끔씩 중앙일보의 ‘정체’를 헷갈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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