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언론 시장은 재래시장에 가까웠다. 언론사를 그릇 공장이라고 가정해 보자 시장 골목에서 저마다 가게를 차리고 그릇을 팔았다. 품목도 다양했다. 목기를 파는 가게, 옹기를 파는 가게, 도자기를 파는 가게(전문지) 등이 있었다. 목기,옹기, 도자기를 모두 파는 가게(종합지)도 있었다. 대부분 수십년의 전통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품질도 기준 이상이었다. 당시 그릇은 아무나 만들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릇을 사기 위해서는 시장에 가야만 했다. 시장에 사람들이 붐비니 그릇 가게 옆에 임대료를 내고 들어오는 다른 업종들도 넘쳤다. 시장을 중심으로 돈이 돌았다. 그런데 신도시(인터넷)가 개발되면서 대형마트(포털)가 생겼다. 사람들은 신도시로 이사를 갔고 대형 마트는 세상의 온갖 것을 가져다 팔았다. 그 중에는 적은 자본으로 만들 수 있는 플라스틱 그릇(뉴미디어)도 있었다. 수제 그릇을 만드는 사람들도 생겼다.(블로거) 이들이 불티나게 팔리자 시장에서 그릇을 팔던 그릇 공장들이 대형마트에도 납품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장 점포에서 세트로 팔리던 그릇들을 대형마트에서는 그릇 코너에 입점해 낯개로 팔 수밖에 없었다. 상표는 거의 가려진 채. 가격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시장에 오는 손님들도 뜸해졌고, 그릇 가게는 점점 어려워졌다. 더불어 공장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어떤 그릇 공장들은 아예 일회용 그릇을 만들어(어뷰징 낚시 기사) 마트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그릇 공장들에 대한 브랜드 가치가 바닥으로 치달았다. 그릇 공장들이 살아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플랫폼이 될 것인가, 퍼블리셔가 될 것인가?

기존 환경에서 언론사들은 플랫폼(시장)과 퍼블리셔(공장)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었다. 퍼블리싱(신문 제작)을 기반으로 플랫폼(광고)에서 이익을 얻는 방식이었다. ‘언론의 위기’라 불리는 현상의 본질은 언론이 플랫폼의 지위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단순하다. 다시 플랫폼의 지위를 찾아오면 된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언론사들의 포털 철수다. 단, 전면적으로.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언론사들이 대동단결할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대체 가능한 상품이 너무 많다. 2004년 KT가 ‘파란’이라는 이름의 포털을 런칭하면서 4대 스포츠지 독점 계약을 했던 적이 있다. 포털에서 소비 비중이 높은 스포츠/연예 콘텐츠를 독점해 후발 주자로서의 약점을 극복하고자 한 과감한 투자였다. 하지만 그 결과 ‘오센’, ‘마이데일리’ 등 포털 기반 신생 스포츠/연예 매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네이버, 다음에 콘텐츠를 납품하며 급성장했다. 스포츠신문을 발행하지 않던 기존 언론사들도 스포츠/연예 콘텐츠를 강화해 독자 영업에 나섰다. 결국 파란의 독점은 무너졌고, 기존 4대 스포츠전문지는 자신들의 입지만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2008년 ‘조선-중앙-동아’가 다음에 뉴스 공급을 중단한 일이 있었다. 그 때 다음 이용자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다음에 조중동 기사가 없다는 걸 눈치 챈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 현재 msn 홈페이지. 중앙일보가 한 때 MSN과 손을 잡고 플랫폼이 되려 했으나 실패했다.
 

스스로 플랫폼이 되는 것도 쉽지 않다. 중앙일보가 한 때 MSN과 손을 잡고 플랫폼이 되려 했으나 실패했다. 구글도 기를 못 펴는 곳이 한국의 포털 시장이다. 반면 급성장을 하는 뉴미디어들은 모두 퍼블리셔의 역할에 충실하다. 미국의 버즈피드는 자체 플랫폼은 신경쓰지 않는다.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최대한 널리 퍼뜨려 개별 콘텐츠 자체를 플랫폼으로 만드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의 벤치마킹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피키캐스트, 위키트리 등도 마찬가지.

언론사들이 플랫폼이 될 수 없다면 퍼블리셔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플랫폼 활용을 극대화 해야 한다. 네이버 다음 중심이던 플랫폼 시장도 페이스북 같은 강력한 SNS가 등장하면서 다변화되고 있다. 특히 모바일이 콘텐츠 소비의 중심이 되면서 플랫폼 시장도 일대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기존의 포털들도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각 플랫폼과 서비스 특성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해 확산에 주력해야 한다. 일부 언론사들이 인터랙티브 뉴스, 카드 뉴스, 인포그래픽, 동영상 뉴스 등을 내놓고 있지만 ‘부가 서비스’ 수준에 그치고 있다. 여전히 대부분의 콘텐츠는 신문 제작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디지털 퍼블리싱 기사는 400자, 800자 등 분량 제한을 디지털 특성에 맞게 다시 짜야 한다. 지면 계획 분량으로 디지털까지 멀티유즈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디지털 편집부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여기서 말하는 디지털 편집부는 ‘어뷰징’ 팀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개별 플랫폼의 특성을 연구해(신규 플랫폼 발굴 포함) 이에 맞는 콘텐츠 전략을 세우고, 이를 재가공하기 위한 기술을 갖춘 편집 인력을 적극 영입해야 한다. 콘텐츠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신문사가 라디오(팟캐스트), 방송(동영상)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종합 콘텐츠 퍼블리셔가 돼야 한다.

2. 언론사 스스로 광고회사를 차려라.

‘디지털 퍼스트’ 성공의 관건은 디지털 영역에서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언론사 내부에서 언제나 찬밥 신세인 영업 부서의 체질 변화를 위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언론사들이 대행사 의존 영업 방식에서 탈피해 스스로 광고회사가 돼야 한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게시물마다 ‘도달률’을 표시하며 운영자에게 “하루 5달러면 도달률을 얼마까지 끌어 올릴 수 있다”고 끊임없이 유혹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은 기본적으로 광고회사이다. 이들 회사처럼 언론사도 홈페이지 방문자수, 페이지뷰 같은 구닥다리 지표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자사 콘텐츠의 확산성이 얼마나 되는지 지표를 개발하고 데이터를 수집해 광고주에게 광고의 효과를 계량해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대행사에 끌려 다니니 선정적 광고와 기사면을 파고 드는 광고만 넘쳐나는 것이다. 광고기법도 직접 개발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네이티브 애드’ 제작 부서를 만들어 광고형 디지털 콘텐츠(동영상을 포함해)를 직접 제작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 다양한 광고 상품을 개발해 광고주들을 유혹해 디지털 수익을 극대화 해야 한다.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최첨단 디지털 광고 기술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3. 사고 싶은 신문을 만들어라.

종이신문 제작 방식의 전면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더이상 백화점식의 신문을 만들어서는 경쟁력이 없다. 과거 종이신문만 있던 시절 기자들에게는 특별한 사명감이 있었다. “내가 쓰지 않은 뉴스는 우리 독자에게 세상에 없는 일이다.” 지금은? 뉴스의 홍수시대이다. 아침에 신문을 펼쳐보면 온통 ‘어제 본 뉴스’가 한가득이다.(방송사 메인뉴스도 마찬가지) 안 봐도 뻔 하니까 안 팔리는 거다. 스트레이트 뉴스는 디지털 확산에 집중하고 신문은 ‘매일 나오는 잡지’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면 계획은 ‘기획’과 ‘탐사’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주요 언론사 취재 인력이 기본 200명은 넘는다. 사회 전분야에 취재처를 두고 있다. 전문가 네트워크(필진)도 풍부하다. 1인 미디어가 따라올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한 가지 이슈에 집중해 부서별로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해석을 담은 커버스토리로 16면, 아예 32면을 채워보라. 독자들은 “오늘은 어떤 이슈를 다룰까” 매일 아침 기대하며 눈을 뜨게 될 것이다. 탐사보도에도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 걸죽한 탐사보도물을 낸다는 각오로 탐사보도 팀을 6개 꾸려 6개월 짜리 취재를 보장해 돌려보라. 특종이 쏟아지고 저널리즘의 질적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까. 또한 종이신문은 매체의 장점을 극대화 하는 편집을 구사해야 한다. 작은 모바일 화면에서 어떤 사안에 대한 종합적 시각을 전하기 어렵다. 인포그래픽과 일러스트레이션, 사진 등 시각적 요소도 적극 활용해 대판 사이즈의 장점이 극대화 되는 편집을 해야 한다.

‘디지털 퍼스트’라고 해서 종이신문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잘 할 수 있는 것부터 잘 해보자. 지금의 신문은 하루 지나면 가격이 0원이 된다.(무분별한 디지털 발행으로 신문을 배달되기도 전에 0원으로 만들기도 한다.) 재화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제 신문을 플랫폼이 아닌 제품으로 여겨야 한다. 퀄리티를 높여 사고 싶은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한 번 사면 버리기 아까운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신문 구독료도 올릴 수 있다. 광고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면 개편으로 떨어질 광고라면 어차피 떨어질 광고다. 과감해야 한다. 이 정도 개혁은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 pixabay
 

4. “우리는 좋은 언론입니다”라고 떠들어라.

브랜드 홍보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기레기’(기자 쓰레기)라고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런데 예전에는 ‘기레기’가 없었나? 콘텐츠 홍수 시대에 ‘기레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쓰레기에 묻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언론은 있다. ‘좋은 기사를 쓰면 독자들이 알아서 찾아오겠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기레기가 아닌데”라며 속으로 끙끙 앓으며 남 탓만 하고 있으면 아무도 안 알아준다. 콘텐츠 홍수 시대이기에 오히려 양질의 콘텐츠가 주목을 받을 기회가 높아지고 있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홍보 활동을 해야 한다.

불량품을 구별하는 ‘KS’나 ISO’ 인증 마크 처럼 객관적인 ‘좋은(혹은 양심적) 언론’ 지표를 만들어 인증을 해야한다. 이를테면 어뷰징을 하지 않는 언론, 보도자료 싱크로율이 50% 미만인 언론, ‘충격 고로케’의 예처럼 낚시질 금기 단어 제목 사용 비율 50% 미만인 언론 등 객관적 평가 지표를 만들어 인증 마크를 부여하는 건 어떨까. 인증 기관은 ‘좋은 언론’들이 연합해 만들고, 이 기관에서는 어뷰징과 낚시질 감시.감독을 한다. 더불어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수용자 교육) 사업을 벌여 독자들의 좋은 언론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고 소비를 늘리도록 선도해 가야 한다.

5. 사옥이라도 팔아 투자하라.

이밖에 개선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참고로 ‘디지털 유료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금과옥조 참고서로 떠 받드는 뉴욕타임스나 가디언 같은 경우에는 디지털화가 지리적 제약을 뛰어 넘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영어 사용자만 6억 명이 넘는다. 이에 비해 국내 언론시장은 확장성이 떨어진다. 해외 시장(한글을 쓰는 교포)이 수십 배 더 큰 것도 아니다. 이념적 지형도 확장성을 저해하는 장애물이다. 조선일보를 보는 사람이 한겨레를 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경향신문을 보는 사람이 동아일보를 볼 가능성도 없다. 저 집에서 어떤 신문을 보는지만 봐도 주인장의 정치적 성향을 알 수 있는 사회다. 그렇다고  ‘중도로 수렴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에게 ‘중도로 가라’고 주문하는 것과 똑같다. 다만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성찰은 필요해 보인다. 점점 심화되는 문제 중 하나는, 언론이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듣고 싶은’ 얘기만 들려준다는 것이다. 논조와 성향은 지키돼 보다 폭넓은 의견을 담을 수 있는 창이 돼야 한다. 독자들과의 소통도 지금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먼저 독자를 알아야 하고 소통도 강화해야 한다. 그냥 소통하라는 게 아니다. 시장과 여론의 지형을 정확하게 읽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상의 제언을 다시 그릇 공장의 비유에 대입해보자. 시장의 권력은 신도시의 대형마트에 넘어간지 오래다. 여기에 친구들끼리 물건을 주고 받는 벼룩시장(SNS)이라는 새로운 시장까지 성황이다. 재래시장은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그릇공장들은 이제 좋은 그릇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플라스틱 그릇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새롭게 생겨나는 다양한 장터에도 적극 파고 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싸구려 일회용 그릇을 양산해서는 안 된다. 다른 그릇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인증 마크도 개발해 붙여야 한다. 브랜드 홍보에도 투자를 해야 한다. 재래시장에서 팔던 그릇은 고급화 전략을 택해야 한다. 차별화를 통해 그릇 구매층을 다시 가게로 불러들여야 한다. 가게 리모델링도 하고 고급 그릇은 함부로 대형마트에 내놓아서는 안 된다. 새 그릇을 꾸준히 개발할 기술 인력도 영입해야 한다.

이와 같은 혁신을 위한 전제조건은 조직 개편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디지털 부서, 영업 부서 인력을 대폭 확충해야 하지만 기존 인력을 감축할 수도 없고 자금도 빈약하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예전의 약한 경쟁 시장에서는 열댓개 업체들의 과점이 가능했지만, 요즘과 같은 치열한 경쟁 시장에서는 1~2등을 제외하고는 도태될 것이다. 콘텐츠 홍수 시대에서는 좋은 콘텐츠가 오히려 빛을 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도약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족벌 언론이면 사주가 땅이라도 팔아 돈을 내놓고, 우리사주 회사이면 사원들이 돈을 내 증자를 하고, 사옥이 있으면 사옥 팔고 모바일 오피스로 전환이라도 해야 한다. 이것도 아니면 독자들로부터 펀딩이라도 받을 결기를 보여야 한다. ‘문 닫을’ 각오로 임하라. 당신의 언론사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라면 독자들이 문 닫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13년 동안 언론판에 몸 담았고, 그후 1년 반 이용자로서 언론 밖에서 언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모두들 위기라고 하지만 돌파구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8회에 걸쳐 ‘한국언론,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대자보 쓰듯 외쳐 봤습니다. 연재는 이번 회가 마지막입니다. 언론의 존재 이유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잘 알 것입니다. 여러분 조직에 진정한 혁신이 이뤄지기를, 생존하기를, 언론의 자존감을 되살리기를 바랍니다. 필자 주)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