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과잉시대입니다. 뉴스는 넘쳐나지만 이를 소화할 방법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미디어오늘이 넘쳐나는 뉴스에 체하지 않고 뉴스를 꼭꼭 씹어 소화시킬 수 있도록 뉴스 읽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뉴스 파파라치는 전체 6부로 진행됩니다. 1부 "기레기와 찌라시 전성시대"에서는 뉴스가 신뢰를 상실한 시대를 진단합니다.

‘유병언 창조경제’가 ‘배용준-박수진 결혼’을 덮다

지난 5월 미디어오늘 기자들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든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발단은 5월 14일자 미디어오늘 단독기사 <유병언 계열사에 ‘창조경제’ 지원금 67억 들어갔다>였다. 기사의 ‘야마’(핵심)는 간단하다. 세월호 참사의 주범으로 꼽혀온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계열사와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구조업체인 언딘에게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자금이 100억 원 이상 지원됐다는 거다.

이 기사는 중요한 소식이긴 했으나 미디어오늘 온라인 홈페이지의 ‘탑’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현금이 지원됐다기 보다는 대출 지원 성격이고 워낙 창조경제 지원금이 여기저기 뿌려진 탓에 유병언에게 특별히 특혜가 집중됐다고 보기는 다소 애매한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누리꾼들이 이 기사를 엄청난 뉴스로 만들어줬다. 

이 과정에서 ‘음모론’이 있었다. 유병언 계열사와 언딘에 창조경제 자금을 지원했다는 이 기사를 덮기 위해 굵직한 연예뉴스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음모론이다. 마침 이날 배우 배용준과 박수진의 결혼 사실이 보도됐다. 많은 누리꾼들은 이 소식이 미디어오늘 기사를 덮기 위한 기획성 기사라 주장했다. “묻혀선 안 되는 뉴스”라며 미디어오늘 기사를 퍼날랐다. 

“배용준으로 별로 효과가 없었나. 엉뚱하게 연인 사이였다는 황정음, 김용준이 결별했다는 소식도 연합뉴스가 단독으로 열심히 타전 중! 계속 덮어봐. 사람들은 연예인 이불이 덮은 게 뭔지 더 열심히 볼 테니”
“이젠 다들 알죠. 연예인 특종이 뜨면 뭔가 있다는 것을!”
“이 나라, 연예인을 너무 마구잡이로 갖다 쓴다. 애네들이 감추고 싶은 게 배용준급 사건이란 것에 대한 힌트까지 준 셈이다”

급기야 유병언, 창조경제, 언딘이라는 검색어가 배용준, 박수진을 이기고 네이버와 다음 모두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 2위를 차지했다. 실시간 검색어에 민감한 우리 언론은 수백 건의 인용보도와 어뷰징(동일 검색어 기사 반복전송) 기사를 쏟아냈다. 5월 18일 오전 기준으로 구글에서 유병언 창조경제를 검색하면 관련 뉴스가 106건인데. 배용준, 박수진의 결혼과 유병언 창조경제 자금 지원을 엮은 기사는 560여건에 달했다. 

   
▲ 디스패치 기사 갈무리.
 

연애매체들이 이런 정치사회 기사를 받아쓰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기사를 쓴 기자는 농반진반으로 “배용준, 박수진씨에게 미안할 정도”라는 말을 남겼다. 결과적으로는 ‘유병언 창조경제’ 기사가 배용준과 박수진의 결혼 소식을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열띤 반응을 보면서 매우 당혹스러웠다. 뉴스에 대한 거대한 불신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뉴스를 뉴스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특히 연예인 열애설이나 결혼설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뭘 덮으려고 터트렸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올해 3월 연예매체 디스패치가 수지와 이민호의 열애사실을 보도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 많았다. 같은 날 이명박 정부 때 한국광물자원공사가 해외자원개발 29곳에 일반융자 형식으로 2822억 원을 빌려줬다는 소식이 알려졌는데, 사람들은 수지와 이민호의 열애설 기사로 ‘이명박의 2000억 횡령’을 덮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엄밀히 말해 ‘횡령’도 아니었고 수지와 이민호 열애설로 덮을 만한 큰 뉴스도 아니었지만 이런 음모론은 실시간 검색어를 차지할 정도로 퍼져나갔다.  

관련 기사 : <이명박 비리 덮으려 수지·이민호 열애 기사 터뜨렸다고?>

이런 음모론은 매우 보편적으로 퍼져 있다. 내가 기자라는 것을 아는 지인들은 만날 때마다 각종 ‘음모론’에 대해 묻는다. (기자가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음모론의 일종이다.) 한 지인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디스패치가 국정원이랑 관련이 있나요?” 나는 “국정원은 디스패치처럼 유능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연예뉴스를 둘러싼 음모론은 인터넷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유형의 음모론이라 볼 수 있다. 원래 음모론은 폐쇄적인 사회에서 발생한다. 누가 죽었는데 원인을 전혀 알 수 없거나, 갑자기 사람들이 실종됐는데 아무도 이를 모를 때 음모론이 돈다. 흔히 이를 ‘유언비어’라 부른다. 

하지만 요 근래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음모론은 ‘개방된’ 인터넷 공간이라는 환경 덕택에 빠르게 확산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중국의 프리랜서 작가 테거는 저서 '대중은 왜 음모론에 끌리는가'에서 “(중국이) 1990년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동서양의 문화와 이해관계, 가치관이 충돌하고 인터넷의 빠른 보급으로 음모론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음모론이 네티즌은 물론 전체 여론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음모론의 사유방식이 주류가 되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유병언 창조경제 지원금 기사가 ‘이 기사가 묻히고 있다’고 믿는 누리꾼들에 의해 배용준, 박수진을 제치고 검색어 1위를 차지한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사람들은 왜 이런 음모론을 믿을까?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론을 믿는 이유로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는 이유를 제시한다. 미국이 권력 유지를 위해 전 세계인을 상대로 도청을 실시하고 있다는 의혹은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시나리오였으나 스노든의 폭로로 사실이 됐다. 

굳이 미국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많은 이들이 민주화 이후 그래도 정부기관이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하거나 민간인을 사찰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두 가지 사건 모두 이명박 정부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2011년 재보선 선거를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가 장애를 일으켰는데,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바뀐 투표소 검색을 못하도록 홈페이지를 마비시킨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의혹은 현실이 됐다. 디도스 공격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을 몇 달 앞두고, 한 SNS 분석 전문가로부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현상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트위터에 문재인 후보나 민주당을 비난하는 글들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주말이 되면 모두 사라진다는 거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주말에 쉬는 걸 보니 공무원들인가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음모론이 현실이 되는 세상이다. 

   
▲ 웹툰작가 이말년 만화.
 

그리고 많은 언론이 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음모론이 현실인지 아닌지 밝히지 못한다. 그저 이런 의혹이 떠돌고 있다며 어뷰징을 하고, 정부가 ‘아니다’고 다그치면 이를 받아쓸 뿐이다. 꼰대선생처럼 인터넷에 괴담이 많아서 문제라고 다그치는 언론도 있다.

음모론을 믿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세상은 엿 같은 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책임은 누가 졌나? 국책사업 한답시고 수십조를 땅에 버려도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음모론은 명쾌한 해답을 제공한다. “사실 세상은 이런 음모를 추구하는 특정 집단 때문에 이렇게 엿 같아진 거야. 책임은 악마 같은 그들에게 있어” 사실 문제는 특정 개인이나 사람이 아니라 어떤 구조일 수도 있고, 나 자신도 공범일지 모른다. 하지만 음모론은 누군가가 음모를 꾸몄기 때문에 세상에 이렇게 됐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언론은 다시 한 번 무능을 드러낸다. 누가 잘못했는지,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A가 진실을 숨기고, B가 파헤치려 하는데 이 소식을 다루며 A와 B의 공방으로 처리한다. 진실은 사라지고 공방만 남는다.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파헤쳐 대안을 모색하기보다 세월호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기 바쁘다.

사실과 진실의 오묘한 조화, 찌라시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찌라시’에 대한 호기심이다. 어디 가서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면 ‘내가 무슨 찌라시를 읽었는데 진짜냐’고 묻는 일반인(기자가 아닌 사람들)을 참 많이 봤다. 

사람들이 찌라시를 궁금해 하는 이유는 기사에 나오지 않는, ‘비공식’화된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찌라시가 무서운 이유는 찌라시에 거짓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진짜라고 믿을 만한 디테일한 정보가 담겨있기에 사람들이 찌라시를 사실이라 믿지만, 거짓이 섞여 있기에 잘못된 정보가 유포될 가능성이 높다. 

하루는 모 언론의 부장급 기자가 술자리에서 넋두리를 했다. 해당 언론사에서 기사를 두고 후배와 선배 간 다툼이 벌어져 고성과 욕설이 오갔고 선배기자가 핸드폰을 집어던졌다는 찌라시가 돌았는데, 찌라시에 자신이 악랄한 기자로 묘사가 됐다는 거다. 기사에 대한 가치판단이 달라 그냥 말다툼을 좀 했을 뿐 핸드폰을 집어던진 일은 없다고 했다.  

억울해하는 기자의 설명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이 찌라시를 본 사람들은 몇 월 며칠 무슨 기사를 두고 다퉜다는 디테일한 정보를 보고 찌라시가 사실이라고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마 ‘핸드폰을 집어던졌다’는 정보가 아니었다면 “싸울 수도 있지”라고 그냥 넘겨버렸을 것이다. ‘핸드폰을 집어던졌다’는 정보는 ‘다퉜다’는 팩트에 기반한 사소한 거짓일 수 있지만, 해당 찌라시를 읽는 사람의 뇌리에 박힌다는 점에서 결코 사소하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찌라시와 음모론은 동전의 양면이다. 전상진 교수는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해석 장애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음모론은 공식적 설명과 동등한 지위를 누린다”고 지적한다. 찌라시가 만연해 무엇이 진실인지 모를 때 음모론이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찌라시에 나오는 미확인정보들은 ‘내가 모르는 진짜 무언가가 있다’는 음모론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의 한 장면.
 

음모론과 찌라시 그리고 뉴스 읽기 

세상이 말세라 사람들이 음모론과 찌라시에 빠져 있다고 한탄할 생각은 없다.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어야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음모론과 찌라시를 좋아하는 이들은 적어도 뉴스를 의심하는 독자들이기 때문이다.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으려면 뉴스 그 자체보다 뉴스가 나온 맥락, 시기를 잘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의심해야 한다. 음모론과 찌라시를 소비하는 대중은 일단 뉴스를 의심한다. 그리고 그 뉴스가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배후는 없는지 의심한다.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2011년 4월 21일 서태지와 이지아가 결혼했다 이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55억 원의 위자료 및 재산분할 소송을 하고 있다는 핵폭탄급 보도였다. 대중은 이 뉴스를 뉴스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법원이 중요한 판결을 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2007년 대선 무렵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약점이던 ‘BBK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이 이명박 후보의 동업자였던 김경준을 회유 협박했다는 내용의 시사인 보도가 허위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사람들은 이 판결을 덮기 위해 누군가 갑작스레 서태지-이지아건을 터트렸다고 의심했다. 이 음모론의 근거는 두 사건의 연결고리라 할 수 있는 ‘법무법인 바른’이었다. BBK사건을 맡은 법무법인 바른이 서태지-이지아 소송에서 이지아 측 변호도 맡았다는 점에서 이 사건의 기획성을 의심한 것이다. 

대중은 서태지-이지아 결혼설이라는 초대형 이슈에 휩쓸리지 않고 이 보도가 왜 하필 지금 나왔을지에 대해, 그리고 보도의 의도에 대해 의심했다. 그리고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BBK사건에서 그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는 기본이다. 

하지만 뉴스를 의심하는 시선이 음모론과 찌라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지는 권력층의 여론 통제 수단으로도 활용되기 때문이다. 영화 '찌라시'에는 권력층의 부패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찌라시에 여배우의 사생활에 대해 흘리는 청와대의 모습이 등장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음모는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낸 음모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음모론과 찌라시가 아닌, 뉴스를 분석적으로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뉴스가 넘쳐나는데도 사람들이 뉴스 대신 음모론과 찌라시를 믿는 지금,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는 방법이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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