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반대는 언젠가 적화통일이 될 것이고 그들의 세상이 됐을 때를 대비해 아이들에게 미리 교육을 시키겠다는 불순한 의도다”

극우 어버이단체 활동가의 말이 아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의 말이다. 집권여당이 앞장서서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여론을 ‘종북 프레임’으로 공격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듯 보수언론인 문화일보에서 북한이 친북단체들에게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라는 지령을 내렸다는 내용의, 확인이 어려운 보도가 나왔다.

보수세력이 ‘종북’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밀양 송전탑에 반대해도 종북세력이고, “북한 사람들이 멋지게 대동강맥주를 마신다”고 말해도 종북이다. 전교조, 지방자치단체장, 문화예술인 등 종북의 굴레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씌워진다. 

한국사회의 만연한 종북 프레임의 문제점을 짚는 토론회가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렸다. ‘통일의 꽃’에서 ‘종북의 상징’으로 낙인찍힌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주관했다. 임 의원은 “89년 임수경 방북사건으로 재판받았을 때 종북이라는 용어가 없었다.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적용되던 친북용공좌파라는 단어들만 있었다”며 “그런데 21세기에 일반 대중을 표적으로 한 종북이라는 굴레가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민중의소리
 

진보진영 내부에서 등장한 ‘종북’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상대편을 옭아매는 흔한 수사가 됐다. 김보근 한겨레 평화연구소소장은 네이버 뉴스검색에서 ‘종북’이라는 키워드로 1995년부터 2015년까지 1년 단위로 검색해 본 결과를 공개했다. 2006년만 해도 0건에서 3건, 6건 등 한자리 수로 발견되던 종북이라는 단어가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인 2008년부터 803건으로 늘어나더니, 통합진보당 해산 논란이 있던 2013년과 2014년 각각 2만 4601건, 6만 8833건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종북의 효과는 정치적 배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종북담론은 빨갱이 담론의 연장선으로, 48년 반공국가체제를 기원으로 한다. 반공국가는 외부적으로는 반북한, 내부적으로는 국민/비국민의 분리를 통해 성립한다”며 “비국민을 빨갱이로 낙인찍고 찍힌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이다. 이런 빨갱이담론이 민주정부의 집권을 뜻하는 ‘잃어버린 10년’과 결합돼 종북담론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종북담론이 집권세력들의 영구적 집권을 보장하기 위한 통치술이라는 것이다.

한상희 교수는 종북 담론이 세 가지 측면에서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첫 번째 단계는 ‘대한민국에 적대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가정체성을 해치는 그 적은 원래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세력을 뜻했으나 그 사회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규정하지 않는다.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대한민국 반대세력의 범주를 무한정 확장할 수 있다. 이제 그 사회주의가 종북으로 대체됐다.

종북은 또한 ‘얘들이 정권 잡으면 나라 망한다’는 주장과 결부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다. 한 교수는 “중도가 포괄하는 좌측 세력이 언젠가 더 왼쪽에 있는 세력을 끌어들일 것이고, 또 그 세력이 극좌세력을 끌어들이는 통로가 될 것이므로 중도정부조차 만들어선 안 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며 “그래서 흔히 종북이라고 부르지 않고 ‘종북적’ ‘종북성향’이라는 더 넓은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세 번째는 진보진영을 이간질시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진보진영을 향해 ‘비종북진보세력은 조심해라’고 한다. 그래서 진보세력들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게 만든다”며 “진보세력 스스로 ‘우리 중에 종북이 없다’고 해명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북이 정치적 배제의 효과를 지닌다는 점은 보수언론과 종편, 여당에서 종북으로 찍힌 임수경 의원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임수경 의원은 “나 스스로도 자기검열에 시달렸던 것 같다. 사진 찍을 때도 주변 의원들을 살펴보게 된다. 혹시 이 의원 지역구에서 ‘왜 임수경하고 사진 찍었냐고 항의가 들어오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라며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거나 꽃을 보낼 때도 ‘임수경이라는 사람이 축하하는 걸 좋아할까’라는 생각에 불필요한 자기검열을 한다”고 밝혔다. 

   
▲ 11월 21일자 TV조선 뉴스9 갈무리.
 

한상희 교수는 이런 의미에서 ‘종북’이 혐오발언의 하나로 다뤄져야하며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혐오발언이 소수자를 배제하는 것이었다면, ‘종북’은 정치적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혐오발언이라는 것. 한 교수는 “종북으로 규정하는 것은 정치적 발언권을 배제함으로써 시민의 가장 고유한 속성인 자기결정권과 참여권, 주권자로서의 속성을 배제하는 성격을 지닌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낙인찍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명예훼손 소송 등 법적인 대응 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언론위원장을 지낸 류신환 변호사는 “누군가에 대하여 종북이라는 낙인을 찍으면 그 사람은 사회적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과연 법원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여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의 배상금을 받는 것으로 이와 같은 피해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으로 그와 같은 행위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류 변호사는 또한 “종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이익을 보는 자는 특정 개인만이 아니다. 동일한 이해관계로 암암리에 연결돼 있다”며 “이들은 특정시기에 종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이익을 볼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법원에 의해 선고되는 수백, 수천만 원의 경제적 부담이 종북 프레임이 주는 거대한 이익의 동기부여를 막을 수 없다”고 밝혔다.

종북이 사회적 낙인 효과를 지니는 이유는 그만큼 북한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보근 소장은 “누군가를 종미주의자라고 낙인찍는다 해서 그 사람이 벌벌 떨며 ‘난 아니야’라고 하진 않는다. 미국에 대한 이미지와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변 소속의 이광철 변호사는 종북 프레임을 누르기 위해 두 개의 전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한국전쟁을 경험한 노년층의 북한에 대한 정서는 공포감이고, 70년대 이후 민주주의를 교육받은 세대의 북한에 대한 정서는 혐오감이다. 북한에 대한 공포감, 혐오, 조롱의 정서가 실체가 없는 허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북한을 바로보고 북한에 대해 진보진영이 어떻게 발언할 지가 종북 프레임을 걷어낼 수 있는 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북한을 바로 볼 수 있는 도구로 ‘남북기본합의서’를 제시했다. 1991년 열린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채택된 합의문으로,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비방 중상을 하지 않는다’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파괴하려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이 변호사는 “남북기본합의서는 보수정권인 노태우 정부가 만든 것이다. 이걸 기초로 하여 보수 세력의 종북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돌파하고, 북한이 남북기본합의서를 지키지 않는 점에 대해 명확한 목소리를 내자”며 “이런 논의를 하지 않고 백날 ‘종북 프레임은 나빠, 합리적 토론을 못하게 한다’라고 백날 이야기한들 먹혀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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